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767 가는 길 / 김소월 가는 길 - 김소월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개벽》(1923) 수록 ◎시어 풀이 *연달.. 2020. 4. 27. 진달래꽃 / 김소월 진달래꽃 - 김소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2020. 4. 26. 갈대의 시 / 김선태 <시> 갈대의 시 - 김선태 황량하다*고 너는 소리칠래 버릴 것도 추스를 것도 없는 빈 들녘 바람이 불면 외곬으로* 쓰러져 눕고 다시 하얗게 흔들다 일어서는 몸짓으로 자꾸만 무엇이 그립다 쉰 목소리로 오늘도 그렇게 황량하다고 너는 소리칠래 소리쳐 울래 외롭다고 너는 흐느낄래 .. 2020. 4. 26. 빌려줄 몸 한 채 / 김선우 빌려줄 몸 한 채 ― 김선우 속이 꽉 찬 배추가 본디 속부터 단단하게 옹이 지며 자라는 줄 알았는데 겉잎 속잎이랄 것 없이 저 벌어지고 싶은 마음대로 벌어져 자라다가 그중 땅에 가까운 잎 몇 장이 스스로 겉잎 되어 나비에게도 몸을 주고 벌레에게도 몸을 주고 즐거이 자기 몸을 빌려주는 사이 결구(結球)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라 알불을 달듯 속이 차오는 거라 마음이 이미 길 떠나 있어 몸도 곧 길 위에 있게 될 늦은 계절에 채마밭 조금 빌려 무심코 배추 모종 심어 본 후에 알게 된 것이다 빌려줄 몸 없이는 저녁이 없다는 걸 내 몸으로 짓는 공양간 없이는 등불 하나 오지 않는다는 걸 처음 자리에 길은 없는 거였다 -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2003) ◎시어 풀이 *결구(結球) : 야채의 잎이 여러 겹으로 겹.. 2020. 4. 26. 감자 먹는 사람들 / 김선우 감자 먹는 사람들 - 김선우 어느 집 담장을 넘어 달겨드는* 이것은, 치명적인* 냄새 식은 감자알 갉작거리며* 평상에 엎드려 산수 숙제를 하던, 엄마 내 친구들은 내가 감자가 좋아서 감자밥 도시락만 먹는 줄 알아. 열한 식구 때꺼리*를 감자 없이 무슨 수로 밥을 해대냐고, 귀밝은 .. 2020. 4. 26. 단단한 고요 / 김선우 단단한 고요 - 김선우 마른 잎사귀 도토리 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 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 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채머리* 떠는 소리 맷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 것들 물 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 인사 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주는 소리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 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2003) 수록 ◎시어 풀이.. 2020. 4. 25. 낙화, 첫사랑 / 김선우 낙화, 첫사랑 김선우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 2020. 4. 25. 촉촉한 눈길 / 김상옥 촉촉한 눈길 - 김상옥 어느 먼 창가에서 누가 손을 흔들기에 초여름 나무 잎새들 저렇게도 간들거리나 이런 때 촉촉한 눈길 내게 아직 남았던가. - 시집 《촉촉한 눈길》(2001) 수록 ◎시어 풀이 *눈길 : 눈이 가는 곳. 또는 눈으로 보는 방향. *간들거리다 : 작은 물체가 이리저리 가볍게 자.. 2020. 4. 25. 지상의 방 한 칸 / 김사인 지상의 방 한 칸 - 박영한 님의 제(題)를 빌려 김사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은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 2020. 4. 25. 그 나무 / 김명인 그 나무 - 김명인 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 그 나무 시멘트 개울 한구석으로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2020. 4. 24. 그대의 말뚝 / 김명인 그대의 말뚝 - 김명인 그대가 병을 이기지 못하였다, 병한테 손들어버린 그대를 하직하고 돌아오는 십일월 길은 보도마다 빈손으로 허공을 어루만지며 낙엽이 한꺼번에 져 내렸다 나는, 문상에서 이미 젖어 저 길 어디에 오래도록 축축할 그대의 집을 바라보았다, 거리 모퉁이에는 낙엽.. 2020. 4. 24. 동두천 1 / 김명인 동두천 1 - 김명인 기차가 멎고 눈이 내렸다 그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신호등 불이 켜지자 기차는 서둘러 다시 떠나고 내 급한 생각으로는 대체로 우리들도 어디론가 가고 있는 중이리라 혹은 떨어져 남게 되더라도 저렇게 내리면서 녹는 춘삼월 눈에 파묻혀 흐려지면서 우리가 내리는 .. 2020. 4. 24. 밑그림 / 김명수 밑그림 - 김명수 봉천동 산허리 슬레이트 집에 남편은 집 짓는 데 막일을 갔다 오고 아내는 난전에서 푸새를 팔았다 늦저녁을 지어 먹고 단칸방에 앉아 아내는 불빛 아래 양말을 기우고 남편은 꽁초를 피워 물었다.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가지요‘ 서울 온 지 벌써 십오 년이니…… ” 흐린 눈 가누어 실파람 꿰며 아내가 혼잣말로 말문을 열자 남편이 말없이 턱수염을 비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갔구나 봉천동 산허리 슬레이트 집 자리에 거대한 재개발 아파트가 들어섰다 여기 살던 가족들 어디로 갔나 그 소식 아는 자 아무도 없고 재개발 아파트 낙성식 자리 둥그런 애드벌룬 높이 떴는데 서울 하늘은 황사로 흐려 있다 - 시집 《하급반 교과서》(1983) 수록 ◎시어 풀이 *밑그림 : 시험적으로 대강 초 잡아 그린 그림. .. 2020. 4. 24. 하급반 교과서 / 김명수 <사진 : 획일화된 북한 수업 장면) 하급반 교과서 - 김명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 2020. 4. 23. 국경(國境)의 밤 / 김동환 국경(國境)의 밤 - 김동환 제 1 부 1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사가 왔다― 갔다―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密輸出) 마차를 띄.. 2020. 4. 23. 웃은 죄 / 김동환 웃은 죄 - 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래기에 샘물 떠주고 그리고는 인사하고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 《신세기》 (1938. 3)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에는 남녀의 구별이 엄격한 사회에서 이성에 대한 순박한 감정을 재치 있게 표.. 2020. 4. 23. 산 너머 남촌에는 / 김동환 산 너머 남촌에는 - 김동환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南風) 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를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 《조선 문단》 18호(1927.1) 발표 ▲이해와 감상 1927년 1월 《조선 문단》 18호에 발표된 .. 2020. 4. 22. 야초(野草) / 김대규 야초(野草) - 김대규 돈 없으면 서울 가선 용변도 못 본다 오줌통이 퉁퉁 뿔어 가지고 시골로 내려오자마자 아무도 없는 들판에 서서 그걸 냅다 꺼내 들고 서울 쪽에다 한 바탕 싸댔다 이런 일로 해서 들판의 잡초들은 썩 잘 자란다 서울 가서 오줌 못 눈 시골 사람의 오줌통 뿔리는 그 힘 덕분으로 어떤 사람들은 앉아서 밥통만 탱탱 뿔린다 가끔씩 밥통이 터져나는 소리에 들판의 온갖 잡초들이 귀를 곤두세우곤 했다 - 시집 《흙의 노래》(1995) 수록 ◎시어 풀이 *용변(用便) : 대변이나 소변을 봄. *싸댔다 : ’똥이나 오줌을 눴다‘는 뜻의 속된 말 *뿔리는 : ’불리는‘의 사투리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서울이라는 비정한 공간을 대상으로 하여 사회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작품으로, 농촌의 생명력.. 2020. 4. 22. 어린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다 / 김기택 <시> 어린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다 - 김기택 창문이 모두 아파트로 되어 있는 전철을 타고 오늘도 상계동을 지나간다. 이것은 32평, 저것은 24평, 저것은 48평, 일하지 않는 시간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나는 또 창문에 있는 아파트 크기나 재본다. 전철을 타고 가는 사이 내 어릴 적 모.. 2020. 4. 22. 다리 저는 사람 / 김기택 <사진 출처 : 네이버블로그 'w wow w89'> 다리 저는 사람 - 김기택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 2020. 4. 22. 사무원 / 김기택 사무원 - 김기택 이른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그는 의자 고행을 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할 때까지 그는 자기 책상 자기 의자에만 앉아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가 서 있는 모습을 여간해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점심시간에도 의자에 단단히 .. 2020. 4. 22.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김기택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김기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 2020. 4. 21. 바퀴벌레는 진화 중 / 김기택 바퀴벌레는 진화 중 - 김기택 믿을 수 없다, 저것들도 먼지와 수분으로 된 사람 같은 생물이란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시멘트와 살충제 속에서만 살면서도 저렇게 비대해질 수 있단 말인가. 살덩이를 녹이는 살충제를 어떻게 가는 혈관으로 흘려보내며 딱딱하고 거친 시멘트를 똥으.. 2020. 4. 21. 멸치 / 김기택 멸치 - 김기택 굳어지기 전까지 저 딱딱한 것들은 물결이었다 파도와 해일이 쉬고 있는 바닷속 지느러미의 물결 사이에 끼어 유유히 흘러다니던 무수한 갈래의 길이었다 그물이 물결 속에서 멸치들을 떼어냈던 것이다 햇빛의 꼿꼿한 직선들 틈에 끼이자마자 부드러운 물결은 팔딱거리다 길을 잃었을 것이다 바람과 햇볕이 달라붙어 물기를 빨아들이는 동안 바다의 무늬는 뼈다귀처럼 남아 멸치의 등과 지느러미 위에서 딱딱하게 굳어갔던 것이다 모래더미처럼 길거리에 쌓이고 건어물집의 푸석한 공기에 풀리다가 기름에 튀겨지고 접시에 담겨졌던 것이다 지금 젓가락 끝에 깍두기처럼 딱딱하게 잡히는 이 멸치에는 바다가 있다 그 바다에는 아직도 지느러미가 있고 지느러미를 흔드는 물결이 있다 이 작은 물결이 지금도 멸치의 몸통을 뒤틀고 있는 이.. 2020. 4. 21. 두물머리 / 김남주 두물머리 - 김남주 만나면 금방 하나가 된다 물은 천봉만학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골짜기로 흐르다가도 만나면 만나기만 하면 물은 금방 하나가 된다 어디서고 웅덩이에서고 강에서고 바다에서고 나 오늘 경기도 양평 땅에 와서 두 물이 머리를 맞대고 만난다는 두물머리란 데에 와.. 2020. 4. 21. 고목(古木) / 김남주 고목(古木) -김남주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 주고 싶다. - 시집 《조국.. 2020. 4. 20. 시인(詩人) / 김광섭 시인(詩人) -김광섭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 팍 안아 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篇)에 2천 원 아니면 3천 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시집 《성북동 비둘기》(1969) 수록 ◎시어 풀이 *천직(天職) : 타고난 직업이나 직분. *어릿궂은 : ‘어리궂은’의 잘못. 매우 어리광스러운 ▲이.. 2020. 4. 20. 생의 감각 / 김광섭 생의 감각 - 김광섭 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성북동비둘기》(1969) 수록 ◎시어 풀이 *여명(黎明) : ① 희미하게 밝아 오는 빛. 그런 무렵. ② 희망의 빛. *황야(荒野) : 거친 들판. 황원(荒原). ▲이해와 감상 이 시 ‘생의 감각’은 생의 자각, 즉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화자는 자신의 병고.. 2020. 4. 19. 산(山) / 김광섭 산(山) - 김광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 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 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2020. 4. 19. 광장 / 김광균 광장 - 김광균 비인 방에 호올로 대낮에 체경(體鏡)을 대하여 앉다. 슬픈 도시엔 일몰이 오고 시계점 지붕 위에 청동 비둘기 바람이 부는 날은 구구 울었다 늘어선 고층 위에 서걱이는 갈대밭 열없는 표목(標木) 되어 조으는 가등(街燈) 소리도 없이 모색(暮色)에 젖어 엷은 베옷에 바람이 차다 마음 한구석에 벌레가 운다 황혼을 쫓아 네거리에 달음질치다 모자도 없이 광장에 서다 - 《와사등》(1939) 수록 ◎시어 풀이 *체경(體鏡) : 온몸이 비치는 큰 거울. 몸거울. *서걱이는 : 무엇이 스치거나 밟히는 소리가 잇따라 나는 *열없는 : 어설프고 짜임새가 없는. *표목(標木) : 푯말. *가등(街燈) : ‘가로등(街路燈)’의 준말. *모색(暮色) : 날이 저물어 가는 무렵의 어스레한 빛. ▲이해와 감상 이 .. 2020. 4. 19.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