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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307

(시) 부활의 그리스도 / 남상학 부활의 그리스도 - 남상학 빛으로 오신 이는 캄캄한 무덤 속에서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더니라 마르지 않는 눈물 마지막 연민을 담으신 고운 눈매에 촉촉이 한 줄기 여명(黎明)이 비추이더니 곤히 주무시던 어둠의 머리맡에 시름의 세마포 훌훌 벗고 눈부신 광채로 일어나셨느니라. 사르어 봉헌하는 한목숨 불꽃으로 단숨에 무덤 문 열어젖히고 해골 골짜기 어둠의 계곡에 우뚝 서신 부활(復活)의 그리스도!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 어둠이 어둠으로 끝나지 않는 빛 둘레에 다시 솟는 태양 눈 부신 빛을 뿌리며 오시는 이를 보라. 천하보다 귀한 목숨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고 죽지 않고는 영원히 살 수 없는 오직 한 길, 생명의 길 사랑의 산 불꽃이여 피 흘리는 아픔 속에 피어난 한 떨기 꽃 진달래 핏물 들이는 사월의 .. 2023. 4. 9.
(시) 크리스마스 송가(頌歌) / 남상학 (시) 크리스마스 송가(頌歌) - 남상학 이천 년 전 유대 고을 작은 베들레헴 말구유에 한 아기 탄생하였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도 아닌 유대왕 헤롯의 아들도 아닌 대제사장의 아들도 아닌 다윗의 자손 이름 없는 비천한 목수의 아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겸비하신 분 온유하신 분 숨은 곳에서 은밀히 선을 행하려 하시는 분 가난한 자 병든 자 억눌린 자 절망한 자 죄로 얽매인 자의 친구로서 해방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하늘과 땅의 권세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버리고 너와 나의 구원을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친히 찾아오신 분 가난한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평화 병든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위로 억눌린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평등 절망한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소망 죄로 얽매인 자가 누려야 할 진정.. 2022. 12. 24.
(시) 그 분이 어디 계십니까? / 남상학 (시) 그분이 어디 계십니까? - 남상학 별을 헤아리며 진리를 분별하던 동방의 예지자(叡智者) 어느 날, 무심히 쳐다본 하늘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큰 별을 보았네. 예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서(詳瑞)로운 빛 줄기 그건 예사로운 별이 아닌 메시아 탄생의 징조임을 알았네. '오, 하늘의 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서둘러 세 사람이 무리 지어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사막의 고된 길 멀고 먼 길을 낙타에 몸을 실어 단숨에 달려가 나직이 물었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1) 여기저기 위험이 도사린 험란한 길 진리는 별만이 알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별을 따라 발길을 재촉했네. 어느 덧 별빛이 머문 초라한 집 술람미 여인이 사랑하는 이를 만나듯 광채로 빛나는 아기 얼굴을 뵈었네 평생을 찾던 바로.. 2022. 12. 24.
(시) 아기예수 / 남상학 (시) 아기예수 - 남상학 태초의 말씀이 생명으로 잉태하여 땅으로 이어진 한 줄기 빛 베들레헴 작은 마을 초라한 집, 고요한 밤 마리아의 빈 방에 거룩한 천사의 합창 소리 들으며 살포시 잠드신 고운 님이여. 초라한 말구유는 사랑의 올로 새로이 엮어 빛으로 출렁이는 요람(搖籃)인데 영혼의 샘터에 고요히 파문 일듯 어진 눈길 잔잔한 얼굴에 상그레 미소가 어리우네 온 누리 햇살 퍼지듯 그 언저리 등불 밝히고 기도의 향(香)을 피워 올리는 밤 아기 예수여, 장차 이루실 원대한 꿈을 그리며 이 밤에는 고이 쉬소서. 2022. 12. 24.
(시) 그날, 별이 빛나는 밤에 / 남상학 (시) 그날, 별이 빛나는 밤에 -남상학 베들레헴 성 밖 들판에 어둠이 내리고 유난하게 별빛이 찬란한 밤 졸음에 겨운 목자들 어린 양떼 지킬 때 적막을 깨뜨리는, 장엄한 소리 들었네 "두려워말라, 내가 만민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 구주가 나셨으니, 그가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 순간, 한 줄기 빛이 하늘에서 땅으로 이어져 찬연히 빛나고 수많은 천군과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탄생을 축하하였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는 평화, 사람에게는 은혜로다" 2) 거룩하게 장엄하게 어둠의 대지에 울려퍼진 합창의 물결 목자들은 한동안 어리둥절 서 있다가 벅찬 감격 안고 베들레헴으로 통하는 길을 단숨에 달려 아기예수 탄생을 보았네. 하.. 2022. 12. 24.
(시) 마리아 찬가 / 남상학 (시) 마리아 찬가(讚歌) - 남상학 호젓한 산골마을 달빛 내리는 지붕 위에 수줍게 피어난 설백(雪白)의 박꽃인가 임 그리워 잠 못 이루는 밤에 순백의 처녀 마리아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네. "은혜를 입은 이여 기뻐하라, 주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1) 부르는 소리에 다소곳 옷깃 여미며 지긋이 명상의 눈을 감을 때 하늘로부터 은혜의 별빛 쏟아지고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2) '이 무슨 소리인가' 놀라 두려움에 떨었네.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3) 자상한 음성에 숨죽이며 "저는 주의 종이오니 당신의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 4) 여린 손 가슴 보듬어 두 손 모아 숨명(順命)의 불을 켜던 여인 하연 손가락으로 우주를 색칠하듯 비밀의 씨앗을 홀로 가.. 2022. 12. 24.
(시) 메시아를 기다리며 / 남상학 (시) 메시아를 기다리며 - 남상학 하나님은 사랑이어라 구름 사이 헤집고 쏟아지는 햇살처럼 마음 속 어둠을 걷어내고 가시덤불 엉겅퀴 돌밭 일궈 꽃씨를 뿌리네 하나님은 사랑이어라 긴 홍수 뒤에 찬연히 입곱 색깔 무지개를 세우고 갈대아 우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언약을 세우시니 자자손손 이스라엘 긴 역사를 통하여 부드럽게 펴시는 섭리의 손길 택함 받은 백성 선민의 언약은 역사의 가시밭 길 광야에서 죄를 일깨우는 채찍이 되고, 고난을 헤치는 용기가 되고,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1) 기나긴 역사의 밤이 깊어갈 때마다 이스라엘의 갈급한 기다림은 언제나 세상을 다스릴 왕, 메시아 오심이었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2022. 12. 24.
(시) 강설(降雪) / 남상학 (시) 강설(降雪) - 남상학 그 날 저녁 별빛이 빛나듯 헐벗은 대지 위에 눈이 내린다. 하이얀 옷깃을 펴고 한 무리의 양무리가 와서 눕고 별들이 종종걸음으로 내려와 눕고 하늘이 다시 포개어 눕고 아낌없이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심으로 죽으실 일 하나로 소리없는 갈채로 고요하게 그 날의 당신처럼 오신다. 해마다 이맘때면 불 밝힌 뜰을 밟고 와서 영혼의 장지문 열고 천상의 수분으로 나의 마음 포근히 적셔주노니 칭얼거리는 아기 잠 재우듯 잠자는 머리맡에 자애롭게 솜이불을 덮는 하늘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 오늘 밤, 나는 흰 옷 입고 꿈에 그리던 당신 나라 백성이 되어 당신을 맞이하듯 강설을 본다. 2022. 12. 24.
(시) 거듭나기 시(詩) 거듭나기 - 남 상 학 내가 몸을 낮춰 엎드리면 당신은 내게로 와 손을 내민다. 내가 은밀히 당신을 부르면 당신은 내 어둠의 골방에 찾아와 환한 불을 켠다. 부르면 빛이 되는 존재의 끝, 당신의 환한 불꽃 속에서 오늘 밤 나는 새롭게 태어난다. 2022. 6. 9.
(시) 나의 사랑 영흥도(永興島) / 남상학 시(詩) 나의 사랑 영흥도(永興島)* -남상학 1 누나야, 영흥도 부두의 파도는 늘 우리를 들뜨게 했지. 인천으로 통하는 뱃길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를 한 뼘 손끝으로 재면서 우린 진두 선착창에 서 있었지. 뚜, 뚜우, 뚜우우 뱃고동 소리 섬 모퉁이를 돌아오면 흐르는 물살은 더욱 더 빨라지고 우린 하늘 위를 갈매기 되어 날면서 물살 위에 아버지 얼굴을 그리곤 했지. 꿈길 따라 가뭇없이 떠오는 배는 황진호일까, 은하호일까? 우린 부푼 가슴 안고 마중하여 돛대의 맨 꼭대기에 앉아 지켜보았지. 그러나 뭍으로 간 아버지는 영영 오지 않았다. 꽃신 싣는 설날에도 보름달 환한 추석에도 엄마의 생일에도 오지 않았다. 2 누나야, 영흥도 내리의 물살은 늘 우리를 슬프게 했지. 물결 소리 바람 소리 행여 그 음성인.. 2020. 2. 1.
(시) 파도(波濤) / 남상학 시(詩) 파도(波濤) - 남상학 날이 새도록 허연 이빨로 영원을 깨우며 뒤척이던 파도는 어디로 달려갔는가. 깊은 주름살 드러낸 갯벌은 죽음이 엎드린 묘지 먼 방황의 끝에서 돌아온 영혼이 아픈 생명의 무게로 길게 눕는다. 아직 슬픔을 못다 토했을까? 신열(身熱)을 앓는 내 육체는 좀처럼 일어설 줄 모르고 바다 끝에서 곤두박질한다. 먼 바다는 언제쯤 출렁이며 달려와 그리움에 굳어진 바위를 흔들며 잠자는 영혼을 깨우며 아낌없이 부서질 것인가. 육지가 바다가 되고 바다가 하늘이 되어 누웠던 육체가 일어서고 비로소 영혼은 자유가 되어 파도여, 나의 파도여 생동하는 물줄기로 솟아오르라. 2020. 2. 1.
(시) 밤 바다 / 남상학 시(詩) 밤 바다 - 남상학 밤마다 나는 섬에 가 본다. 서슬 푸른 이빨로 사정없이 부서지는 파도는 영원을 핥으며 밤새 울어대고 지상에서 방황하던 내 영혼 거친 풍랑에 떠밀려 짙은 안개 속을 표류하다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착륙한다. 별마저 숨어버린 하늘을 박쥐처럼 떠돌다가 방향을 잃은 나는 결국 어둠의 바다에 몸을 던진다. 모든 살아있는 것을 삼키고 시원(始原)의 기슭에서 울부짖는 파도여, 어느 해안에 나를 실어 올려다오. 칠흑 같은 어둠을 울던 요나처럼 나를 어둠 속에서 토해다오. 밤마다 나는 섬을 돌며 미친 사람처럼 그대 이름 불러본다. 2020. 2. 1.
(시) 갯벌·1 / 남상학 시(詩) 갯벌·1 - 남상학 비릿한 소금기로 나른한 공복을 채우는 한나절 갯벌은 가난이 한이 되어 고깃배 중선을 탄 남편의 등가죽처럼 누워 있고 그리움 썰물로 씻겨 간 포구 언저리 언제부턴가 깊은 도랑이 패였다. 만선의 깃발 기다리며 움푹 팬 아낙의 눈가에 시름이 쌓이는 세월 가무락 빈 망태기엔 허기가 넘친다. 푸른 하늘로 띄우는 그리움 늙은 능쟁이는 열 손가락을 꼽아가며 아직도 오실 날을 세고 있는데 갯벌은 배를 깔고 엎드려 지상의 권태를 즐긴다. 2020. 2. 1.
(시) 가을이야기 / 남상학 시(詩) 가을 이야기 - 남상학 바람 스치고 간 거리 노란 은행잎 떨어져 밟힐 때 콩알만 한 저녁 햇볕을 광주리 담아 이고 저만큼 앞장서서 걸어오는 아내여 흩어졌던 영혼의 비둘기 떼 모아 떠나온 집으로 돌아가자. 한 생애 오랜 날 비워 둔 자리 내 육체의 상처를 싸매듯 반나절 남은 햇볕으로 흙벽돌 만들어 무너진 담을 쌓고 창을 바르고 부서진 울타리를 매만져 사립문을 세우자. 갈 바람결 차가운 날씨에 불 지피고 밤에는 덧문 닫아 등불 켜고 심지 다독여 가난한 마음에 향을 피우면 단비처럼 내리는 평화 물살처럼 흘러넘치는 우리들의 안식 빈방 사랑의 둥지에서 나누는 체온을 누가 알까, 끓는 물 한 주전자에 어리는 행복의 입김을 누가 알까, 아내여. 긴 밤 고독을 즐기며 지새는 가을이 겨울 지난 새벽 한 잎 동백.. 2020. 2. 1.
(시) 주여, 돌을 던지라 하소서 / 남상학 시(詩) 주여, 돌을 던지라 하소서 - 남상학 주여, 돌을 던지라 하소서. 바람에 밀려 장밋빛 거리를 헤매다 늦은 밤길 어둠 속에 돌아오는 헝클어진 마음 어둡고 습한 내 마음에 색색으로 피어나는 죄의 풀꽃 혈관에 불순한 피가 돌아 오열(嗚咽)하는 나에게 주여, 돌을 던지라 하소서. 추운 날 당신 홀로 휘청거리는 골목 어귀에 세워 두고 숨바꼭질하는 어리석음 번쩍이는 불빛에 눈이 멀어 천 길 낭떠러지 수렁으로 추락하는 상처 난 육신에 열꽃이 솟아 신음하는 나에게 주여, 돌을 던지라 하소서. 십자가 그늘 밑에 쉬라시던 말씀 휴지처럼 던져두고, 꽃뱀의 뒤안길 허망한 불꽃 따라 맨발로 현기증 앓으며 영혼의 누더기 하나 걸치고 돌아와 다시 당신 발아래 엎드려 무릎 꿇는 나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주여, 돌을 .. 2020. 2. 1.
(시) 내가 그 안에 / 남상학 시(詩) 내가 그 안에 - 남상학 얼마 만인가 이 해후(邂逅) 어둠 속에 앉아 그대 얼굴 그려보는 공들인 나날 머릿속 안개 걷어내고 이제야 두 팔 벌려 웃음 띠고 달려오는 당신 이 얼마 만인가. 슬픈 골목 빠져나와 한숨을 날리고, 백합 한 송이 꺾어 들고 그대 열린 가슴으로 달려가 뜨거운 입김에 봄눈처럼 스러져도 좋으리. 내가 그 안에 그가 내 안에 있음은 실로 얼마 만인가. 2020. 2. 1.
(시) 어둠이 몰려와서 / 남상학 시(詩) 어둠이 몰려와서 - 남상학 어둠이 몰려와서 창가에 밤이 내리면 나는 온종일 울면서 거리를 헤매다 둥지 찾는 한 마리 새가 된다. 하늘 꼭대기에 이르고 싶어 높은 산정(山頂) 오르다 찢어진 나래는 비에 젖고 욕망의 가쁜 숨을 끝없이 몰아 쉬며 오한(惡寒)을 앓는다. 긴 밤 뜬눈으로 뒤척이며 지척의 거리도 분간할 수 없는 캄캄한 하늘 가 벼랑 끝에 서면 나는 언제나 방향을 잃고 떠도는 외로운 이방인(異邦人) 육체를 떠난 영혼은 싸늘한 겨울 하늘을 받쳐 이고 길 없는 허공을 까마귀 되어 비상(飛翔)한다. 칠흑의 어둠 속으로 하얗게 영원을 울고 가는가? 천 길 늪 속으로 가라앉아 후드득후드득 다시 솟구치는 소리 새벽하늘을 흔들어 깨우는 목이 쉰 내 기도는 언제쯤 눈을 뜰까. 2020. 2. 1.
(시) 기다림 / 남상학 시(詩) 기다림 - 남상학 당신이 내게 주신 텃밭에 씨앗 하나 심어 소중히 싹을 키웁니다. 얼어붙은 인고(忍苦)의 깊은 땅을 눈물로 녹이는 세월 원시의 어둠 속에 기다리는 하루는 목 늘이는 산맥 같은 그리움입니다. 윤삼월 철 이른 한나절 따스한 햇볕에 내민 얼굴은 경이로운 영혼의 기쁨 같은 것. 빈 언덕에 사나운 바람 불고 목 타는 여름 홍역을 앓을 때 심장에 떨어지는 잎새는 캄캄한 벼랑을 헛디디는 악몽입니다. 바람 따라 뒹구는 낙엽은 부끄러움과 아픔으로 비에 젖고 한천(寒天)에 손을 벌린 나목의 가지 끝으로 열매를 달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요? 사랑의 원정(園丁)이신 당신이여. 2020. 2. 1.
(시) 돌항아리 / 남상학 시(詩) 돌항아리 - 남상학 텅 빈 마음 열고 짙푸른 하늘 향해 앉아 있구나 그 많은 날을 철철 넘치는 꿈을 그려 간절한 기다림에 가슴 크는 세월 가나 혼인 잔치에 드디어 임은 귀빈으로 오시어 큰 입 가득히 샘물을 채워 진한 포도주를 빚으시고 기쁨을 나누듯 퍼내는 행복 길어도 길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되어 생명이 되어 어느 땐가 신랑(新郞)으로 임이 다시 오시는 날 기다리며 산다. 2020. 2. 1.
(시) 기도 / 남상학 시(詩) 기도 - 남상학 검은 그림자를 몰아내었습니다. 간밤 내 흘린 눈물이 영롱한 이슬로 맺혔습니다. 이 허전한 들판에 화사한 햇빛을 부어 주십시오. 연기처럼 보드라운 푸른 옷깃을 주십시오. 산천을 떠들썩하게 울리는 새들의 지저귐과 벌레의 새파란 울음소리를 자즈러이 놓아 주십시오. 마음에 정한 그릇을 마련하였습니다. 투박한 작은 질그릇일지라도 향기로운 꽃의 향내를 듬뿍 고이게 하십시오. 붉은 꽃, 흰 꽃, 노란 꽃… 그래서 나붓이 절하는 나비를 닮게 해 주십시오. 부지런한 꿀벌의 생활을 배우게 하십시오. 오, 기쁨과 즐거움의 아름다운 비단 폭을 푸른 하늘 높이 들고 독수리처럼 활개 치며 올라가는 찬미와 신앙을 주십시오. 2020. 2. 1.
(시) 회색의 크리스마스 / 남상학 시(詩) 회색의 크리스마스 - 남상학 언제나 다름없이 그때 그 거리에 캐럴이 흐르고 하얗게 눈이 내려 쌓이는데 당신 누우실 말구유에 회색빛 바람 이는 것은 깊고 어둑한 골목의 낯선 그림자가 발목을 잡은 탓입니까? 아니면 깊숙한 골목 즐비하게 늘어선 여인숙 그 방의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 그 현기증 때문입니까? 오늘은 성탄전야 지난밤 꿈속으로 잠시 찾아왔던 당신 그 발소리 점점 멀어지는 것은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쾅, 꽝 굳게 못질한 때문입니까? 아니면 찬바람 맞으며 어두운 밤길 이리저리 방황하다 공들여 불을 지피지 못한 나의 방(房) 싸늘하게 식은 체온의 그 잠자리 때문입니까? 지친 몸 편히 쉴 곳 찾아 느릿느릿 낯선 그림자 서성거리는 거리 회색빛 바람 일고 있는데 … 2020. 1. 30.
(시) 부활절 아침 / 남상학 부활절 아침 - 남상학 봄이 오는 길목 청람(靑藍) 빛 하늘 아래 하얀 목련꽃으로 주님은 오십니다 봄 아지랑이 흐르는 아트막한 산 허리께 사월 햇살 같은 따스함으로 화안한 미소 안고 오십니다 내 안에 빛으로 오시어 어둠을 몰아내고 사랑을 물들이는 진달래 꽃물로 주님은 그렇게 오십니다 모든 것 내어주고도 아깝지 않은 내 빈 가슴에 조용히 좌정(坐定)하신 주님 그 자리에 펑펑 쏟는 눈물로 빚은 한 무더기 소담스런 장미꽃을 향기롭게 피우고 싶습니다 봄 햇살 같은 따스함으로 아련한 그리움으로 그 향기 드높이 두루 전하고 싶습니다 2020. 1. 30.
(시) 그날은 언제일까? / 남상학 그날은 언제일까? - 남상학 낮은 목소리로 알 듯 모를 듯 중얼거리며 하늘 향해 발돋움하며 꿈꾸던 한 마리 새가 있었네. 투명한 유리 거울처럼 빛나는 곳 늘 하던 버릇대로 그렇게 높은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욕망의 날개 퍼덕이며 마음껏 날고 있었네. 바람 찬 어느 날 비상하던 날개 무참히 꺾이고 어둠의 바다에 추락 밤마다 홀로 가슴 뜯는 외로운 섬이 되어 영원의 바다 위에 피리 부는 넋이 출렁거리는 파도가 되었다네. 어제나 오늘이나 제 가슴 갉아내는 눈물로 온몸 씻으며 부서지며 깨어지며 하늘 우러러 꿈꾸는 세월 아득히 바래 가는데 저만치 보이는 그리움 찾아 새로움의 포말(泡沫)로 달려갈 그날은 언제일까? 2020. 1. 30.
(시) 출항 / 남상학 시(詩) 출항(出港) - 남상학 낮게 깔린 구름 말끔히 걷히니 바다 끝자락에 섬이 보인다 저만치 거리에서 나를 애태우던 한 뼘도 안 되는 한 나절 뱃길 눈을 씻고 또 씻으며 그리움 찾아 힘차게 노(櫓)를 젖는다 어두운 시절의 애절한 노래와 꿈을 파도에 두둥실 실어보내고 출렁거리는 물결 따라 가 닿고 싶어한 곳 무한 영원의 기슭에 피곤한 몸 기댈 수 있기를 바람 부는 날이면 풍선처럼 오늘도 내 몸 두둥실 돛을 올린다 끝이 없이 행복한 나의 출항이여. 2020. 1. 30.
(시) 못 / 남상학 시(詩) 못 - 남상학 어둠 속에 앉아 남몰래 못을 뽑습니다. 오래되어 살 속 깊숙이 박힌 것은 찾아내기도 힘이 듭니다. 갈고리처럼 꼬부라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무릎 꿇고 눈물로 매달려보지만 정말 나 혼자는 어렵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의 도움으로 뽑아내고 싶지만 뽑혀 나온 자리에 보기 흉한 자국 남을까 봐 아직도 뽑아내지 못한 못 하나 아슬아슬 근심 걱정 속에 가슴에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2020. 1. 29.
(시) 가을 아침 / 남상학 시(詩) 가을 아침 - 남상학 넓은 유리창 너머 투명한 하늘이 저벅저벅 걸어오고 아침 치약 냄새가 상큼하게 공중 높이 걸린다. 그 사이로 '치카치카' 상긋 이를 닦은 귀여운 서연이가 '할아버지, 좋은 아침' 한 마디 던지고서 손 흔들며 방긋 인사를 한다. 그러면 나는 이불을 털고 일어나 하얀 양파껍질을 한 겹씩 벗겨내듯 맵고 신 상큼한 냄새로 눈물로 얼룩진 창을 닦는다 멀리 북한산 계곡 물소리가 내 귓전에 와서 '쏴아' 아침 창문을 열면 이 가을, 내 참회의 기도는 너무도 산뜻하여 투명하고 새콤하다 남대천 물결 거슬러 솟구치는 빙어 떼 하얀 은빛이 유리창에서 부서진다. 2020. 1. 29.
(시) 저무는 강가에서 / 남상학 시(詩) 저무는 강가에서 - 남상학 밤낮으로 출렁이며 여울지는 끝없는 강물 따라 지는 해가 노역의 하루를 끌고 느릿느릿 돌아옵니다. 모진 바람에 흔들려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소용돌이 이 세상 낯선 거리 한없이 쏘다니다 찢어진 욕심의 돛을 내리고 지친 발길을 옮깁니다. 한낮 까마득히 잃었던 나를 겨우 수습하고 헐벗고 배고픈 영혼의 물새처럼 저무는 강가에서 침묵으로 흐르는 강물의 깊이를 조용히 응시하는 시간입니다. 언제나 내력을 전혀 묻지 않고 말없이 굽이쳐 여울지는 강물은 내 마음 포근하게 안아주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그 품에 안겨 흐르며 흰 포말(泡沫)로 영원히 잠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2020. 1. 28.
(시) 외도, 명상의 언덕에서 / 남상학 시(詩) 외도, 명상의 언덕에서 - 남상학 어릴 적 동화책에서나 보던 언덕 위 그림 같은 집 명상의 탁자 위에 두툼한 성경을 펼쳐 놓고 무릎 꿇고 앉아 통유리창 너머 아련히 바다 풍경을 바라본다. 눈을 감으면 시편의 행간(行間)이 아니더라도 저절로 열리는 혜안(慧眼) 심상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광활한 우주(宇宙) 어디선가 산 새 한 마리 짧은 울음을 남기고 이내 사라진다. 2020. 1. 28.
(시) 물수제비 / 남상학 시(詩) 물수제비 - 남상학 징검다리 건너뛰는 아이처럼 언제라도 좋아라. 솟구치고 또 솟구치는 그리움이야. 늘 꿈꾸어 오던 아득한 물길 건너 그리운 님의 옷깃 스치듯 그 언저리에 닿고 싶어 온몸을 용틀임하면서도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허망의 덫에 걸려 숨을 거둘지 몰라 방울방울 떨구는 눈물 속절없이 바람 불고 온몸 휩싸고 도는 성난 물결에 잠길 듯 잠길 듯하다가도 다시 떠오르는 몸짓 그리움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줄 타는 광대처럼 하늘 향해 솟구치고 또 솟구치며 영원의 끝을 향해 오늘도 힘차 솟아오른다. 2020. 1. 28.
(시) 아침의 노래 / 남상학 시(詩) 아침의 노래 - 남상학 마음에 숨은 은밀한 죄 죄다 태운 어둠의 끝 찬란하게 타오르는 광휘(光輝)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더 눈부시게 열망 속에 침묵하다가 깊은 어둠과 싸우고 나서야 고뇌의 용광로에서 솟아나는 생명 제 몸 살라 불 밝히는 찬란한 순간이거니 빛을 찾는 광부의 부싯돌처럼 눈물 떨구지 않고는 점화되지 않는 불꽃이여! 아침 해야 솟아라. 그렇게 솟아라. 2020.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