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나의 사랑 영흥도(永興島)*
-남상학
1
누나야, 영흥도 부두의
파도는 늘 우리를 들뜨게 했지.
인천으로 통하는 뱃길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를
한 뼘 손끝으로 재면서
우린 진두 선착창에 서 있었지.
뚜, 뚜우, 뚜우우
뱃고동 소리 섬 모퉁이를 돌아오면
흐르는 물살은 더욱 더 빨라지고
우린 하늘 위를 갈매기 되어 날면서
물살 위에 아버지 얼굴을 그리곤 했지.
꿈길 따라 가뭇없이 떠오는 배는
황진호일까, 은하호일까?
우린 부푼 가슴 안고 마중하여
돛대의 맨 꼭대기에 앉아 지켜보았지.
그러나 뭍으로 간 아버지는 영영 오지 않았다.
꽃신 싣는 설날에도
보름달 환한 추석에도
엄마의 생일에도 오지 않았다.
2
누나야, 영흥도 내리의 물살은
늘 우리를 슬프게 했지.
물결 소리 바람 소리 행여 그 음성인가
썰물 따라 달려가다 바다 끝에서 주저앉고
질퍽한 갯벌에 빠져 울다가
밀물 따라 힘없이 돌아오곤 했지.
작은 눈으로는 잴 수 없는
넓이의 갯벌 위에서
형형색색 무늬의 바지락을 캐며
이랑이랑 아픈 삶을 일궜지.
한나절 뙤약볕이 허기로 쏟아지고
긴 강둑에 앉아 잡풀처럼 흐느끼다가
먼 곳에서 울리는 포성(砲聲)을 들으며
비릿한 바다 내음에 잠들곤 했지.
누가 아버지의 귀향을 막았을까?
어머니의 눈가에 소금기가 쌓여
마른 모래 언덕을 이루고
파도는 영문 모르고 기슭을 핥고 있었지.
3
누나야, 영흥도 외리의 바람은
늘 우리를 부풀게 했지.
주일 아침마다 꿈길에서 듣는
교회당의 새벽 종소리
청아한 소리 따라 손잡고 가는 길
이슬 맺힌 언덕길 걸으며
뽀얀 한숨을 흰 구름으로 날렸지.
높다란 십자가 종탑 위로
우리 마음은 운동회 날 만국기로 펄럭이고
몰려든 참새떼들이 목청 높여 부르는
‘예수님 사랑'
양치는 목자의 성화 앞에 앉아
우린 꿈꾸듯 아버지 얼굴을 그리곤 했지.
빈 하늘 우러르는
홀로 그때 쓸쓸함을 누가 알까?
아파도 아깝잖은 세월
오랜 날 바닷바람에 씻기며
추억의 물살 위에 흔들리는
나의 사랑 영흥도
누나야,
영흥도 내리의 물살 되어
영흥도 외리의 바람 되어
아버지 그리며 영흥도에 살자.
<주> 영흥도는 필자가 11살 무렵,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았을 때 육지로 떠난 아버지와의 사별의 아픔을 겪었던 섬. 당시에는 인천에서 여객선을 타고 왕래했으나 지금은 영흥대교가 건설되어 대부도, 선재도를 거쳐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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