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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307

(시) 은혜의 빛 둘레에서 / 남상학 축시(祝詩) 은혜의 빛 둘레에서 -꽃재교회 창립 80주년 기념 축시 남상학 하늘의 큰 별빛이 베들레헴 말구유에 쏟아지듯이 새벽 미명 어둠을 헤치고 하늘의 햇살이 머문 축복의 자리, 꽃재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귀 있어도 귀먹은 불쌍한 이들을 위하여 눈 있어도 앞 못보는 어리석은 이들을 위하여 깨우며 가르치며 외쳐 온 80년 세월 한 번 소리내어 외쳐보기엔 너무도 은혜로운 절실한 이야기 그로 하여 있게 된 오늘의 아름다운 이야기 은혜의 빛 둘레에서 소중한 형제자매들과 함께 눈물로 쏟아내는 끝없는 감사와 가슴 깊이 새겨보는 생생한 의미들 오늘 이 자리는 눈부시게 빛나는 기쁨의 축제이게 하소서 다시 빛을 향해 눈뜨는 위대한 다메섹 언덕이게 하소서. 2020. 1. 18.
(시) 누님, 감사해야지요 / 남상학 누님, 감사해야지요 - 남상학 바람 차가운 겨울밤에는 누님, 영흥도 앞바다의 검푸른 물결이 환하게 떠오릅니다 바다 위로 보름달 떠오른 밤 하늘가에 반짝이는 별들을 가슴에 쓸쓸히 묻으면서 우린 굳게 약속했지요 세월이 지난 뒤 그 언젠가 별들이 꽃으로 피는 날 어떻게 눈물이 햇살이 되는가? 어떻게 상처가 잎새가 되는가? 야무지게 손을 잡았지요. 세월이 흘러 눈물겹게 화사한 봄이 오고 환하게 열린 하늘에서 별들이 내려와 아버지 어머니 무덤 곁에 반가운 할미꽃이 무더기로 피고 눈물은 햇살이 되고 상처는 잎새가 되어 사남매 뜨락 가지마다 주렁주렁 소담스런 열매가 열린 것을 누님, 오늘 우리 두 손 받쳐 들고 눈물로 감사해야지요. *부친의 47주기 추모일(2000. 5. 24)에 쓰다. 2020. 1. 18.
(시) 귀여운 아가야 / 남상학 시(詩) 귀여운 아가야 남상학 저것 좀 봐 아침 마당에 부챗살로 퍼지는 질 고운 햇살 천상의 문을 열어젖히고 까르르 건반 위를 굴러오는 맨발의 옥피리 소리 저것 좀 봐 어느새 거센 바람이 검은 구름 몰고 오면 인정사정없이 자진모리 지나 휘모리로 꺾이는 수천 년 묵은 장대비 슬픔 저것 좀 봐 순간 궂은 비 그치고 구름이 몰려가는 하늘 다시 말갛게 씻은 화사한 얼굴에 오색 빛깔의 무지개가 걸리고 온 누리 꽃씨를 뿌리는 빛나는 하늘 귀여운 아가야 아가야 2020. 1. 18.
(시) 그 무엇이 되렴-서연에게 / 남상학 그 무엇이 되렴 - 서연(瑞娟)에게 - 남상학 환한 아침 뜨락에 함초롬히 이슬 먹은 백목련(白木蓮) 꽃봉오리 보오얀 얼굴에 상그레 웃음 벙글면 꽃사태처럼 쏟아지는 고운 햇살 초롱초롱한 눈 맞추어 구슬을 굴리듯 입가에 옹알옹알 열리는 천상의 말 새근새근 숨 고르다 고운 눈썹 살포시 감고 꿈길에서도 웃음 짓는 고운 아가야 출렁이는 요람(搖籃)은 사랑으로 넘실거리는 평화의 꽃자리 단아(端雅)한 모습의 하늘 향한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온 누리 밝히는 그 무엇이 되렴 *손녀 남서연의 백일(百日)에 할아버지가 쓰다. 2020. 1. 18.
(시) 근황 / 남상학 시(詩) 근황 남상학 요즘엔 칡꽃 차를 마시며 물 흐르는 강가에서 아이처럼 살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과하게 분주하고 과하게 슬퍼하고 과하게 속을 끓이며 살았습니다 출구를 찾지 못하는 미로의 길을 거미줄로 얽매여 온 시간 그 시간의 언덕에 매달려 익지 않은 열매처럼 떫은맛으로 살았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사랑하기에도 아주 부족한 시간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허허롭게 흐르는 물가에 앉아 가뭇없이 사라지는 꽃잎의 마음을 아끼며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2020. 1. 18.
(시) 용서 / 남상학 시(詩) 용서 남상학 그럴듯한 이유로 변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엷은 속살을 보이며 나 자신을 환히 열어 보이는 것입니다 제 살 터뜨려 깊은 속울음 울듯 나를 삭이며 흔적 없이 태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까맣게 타고 남은 자리에 빛 고운 새살을 돋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투명하게 시간이 맑아질 때를 기다려 미련 없이 나를 떠나는 것입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사그라지는 것입니다. 2020. 1. 18.
(시) 참회·4 / 남상학 시(詩) 참회·4 남상학 한 밤을 새우고 나서 머리 조아려 어제 일을 뉘우칠 줄 알았으면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을 후회스럽게 살고 있지요. 한 치 앞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 필요 없이 흥분하고 혈기를 부리고 다시는 보지 않을 사람처럼 형제의 가슴에 무수히 칼을 꽂았지요 남에게 손 한 번 펴지 못하고 혼자만 올바르고 혼자만 깨끗한 체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흰색을 검정으로 우기는 이 뻔뻔스러움 만물의 영장인 나는 오늘도 여전히 미련하게 후회하며 살고 있지요. 2020. 1. 18.
(시) 참회·3 / 남상학 참회·3 남상학 당신은 나에게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가 되고 당신은 나에게 그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가 된다고 하셨지요.* 남의 허물을 덮지 못할 바에야 총명한 말로 깨우칠 줄 모를 바에야 하늘 우러러 거룩한 노래 부르지 못할 바에야 침묵이 최대의 약(藥)인 것을 내 미련한 혀는 독버섯이 되고 내 미련한 말은 가시가 되고 내 마련한 입술은 나를 옥죄는 영혼의 그물이 되어** 당신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 부끄러움 내 가슴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후회만 남겼지요. 그리고 그것은 공기 중에 떠도는 독소가 되어 남의 생명을 빼앗는 무기가 되었지요. * 잠언 17장 28절 * 잠언 18장 7절 2020. 1. 18.
(시) 참회·1 / 남상학 시(詩) 참회·1 남상학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수없이 말하고 혀끝으로 수없이 거짓을 보태면서 작은 진실 하나에도 끝내 깃발을 들지 못하면서 비굴하게 살았습니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스럽게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태연스럽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듯한 이 거룩한 초연함 내 잘못을 남의 탓으로 여기면서 모른 척 눈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입을 열 때마다 거룩 거룩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기도는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얼굴은 여전히 경건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혀끝으로 수없이 배반하며 혀끝으로 수없이 맹세하며 2020. 1. 18.
(시) 삼청공원에서 / 남상학 시(詩) 삼청공원에서 남상학 저녁 햇살이 흰 가루로 부서져 빈 벤치에 사뿐히 내려앉을 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한 무리의 참새 떼가 햇살 한 줌 작은 부리로 물고 와서 저마다 사랑을 클릭한다. 부산한 날갯짓으로 공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분주하게 이메일과 전자폰으로 띄우는 사랑의 암호들 숲 너머로 바람결에 젊음의 발랄한 웃음소리 나긋나긋한 사랑의 밀어들이 분절되지 않은 웅얼거림의 형태로 나뭇가지 사이로 밀려든다. 높아진 하늘만큼 한결 느슨해진 여유로움이 저무는 가을 햇살 속으로 느릿느릿 축복처럼 내리는 시간 나는 사랑 찾아 짙은 노을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집으로 가벼운 발길을 옮긴다. 2020. 1. 18.
(시) 난(蘭)을 보며 / 남상학 시(詩) 난(蘭)을 보며 남상학 모두가 떠나고 나 혼자일 때 내 지병이 도져 밤새워 앓고 있을 때 아무도 없는 적막을 위하여 내 빈방을 지키고 앉아 창가에 홀로 존재를 과시하며 불면(不眠)을 깨우는 그대 바람 부는 밤 어둠 속에 마주 앉아 정적 속에서 절벽을 타고 오르듯 뜬 눈 밝혀 대적하는 힘 명백한 외침을 듣는다 뿌리로부터 진액을 뽑아 올려 푸른 잎새 끝에 이슬방울을 매달듯 긴 밤 제 살 찢는 아픔으로 무릎 꿇어 가지 끝에 영롱한 진주를 가꾸는 새벽 날이 밝기 전, 드디어 생명의 진수(眞髓) 순수 절정의 환희를 바라보노라면 허둥거리며 살아온 부질없는 세월이 보이고 얼룩진 내 부끄러운 모습도 보이고 가끔은 잊으며 잊히며 사는 지혜도 보이고 마음까지도 가릴 수 있는 무상이 나부낀다. 모두가 떠나고 나 혼.. 2020. 1. 18.
(시) 덕현리 녹수계곡에서 / 남상학 시(詩) 덕현리 녹수계곡에서 남상학 큰물 지나간 자리 새살 돋듯 고개를 쳐들고 다시 일어서는 풀포기를 보아라 욕망과 탐욕으로 얼룩진 눈물 자국 지우고 낮은 몸짓으로 겸허하게 무릎 꿇는 뉘우침 산 넘어 향기 뿌리며 건너오는 상큼한 바람 따스한 햇살의 눈 부심 이름 모를 풀꽃들의 눈짓들 여울져 흐르는 청아한 시냇물 소리 새들이 젖은 날개를 털고 눈 부신 햇살 속으로 솟아오르고 싱그런 하늘을 이고 갈맷빛 등성이를 드러내는 늠름한 여름 산 푸른 하늘은 언제나 먹구름 속에서 빛나듯 부활의 진리를 새롭게 깨우치는 상큼한 아침이여! 청청한 나무에 기대어 오색 무지개 옷을 갈아입고 나직이 다윗의 시편(詩篇)을 읽는다. *가평군 상면 덕현리 녹수계곡에는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시설이 많아 자주 찾던 곳이다. 2020. 1. 18.
(시) 숲에 비가 내린다 / 남상학 시(詩) 숲에 비가 내린다 남상학 숲에 비가 내린다. 그리운 가슴들을 새록새록 적시면서 봄비가 숲을 깨운다 뒤흔든다. 나무들은 하나씩 가슴을 쓸고 일어서고 여기저기 흘린 꿈을 주워 담기 위해 가슴을 열고 심호흡을 한다. 심연의 깊은 곳으로부터 뽑아 올린 생명의 물줄기 치솟아 올라 갈증의 대지를 다시 덮는 것인가? 잎에서 잎으로 빗방울 듣는 소리, 소리 척추가 휜 나무들은 깊은 상처들을 싸매고 수척한 가지마다 수혈을 끝낼 즈음 숲은 일제히 제 가슴에 귀를 세워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듣는다 그때 한 무리의 새 떼들은 숲속에서 길게 누운 무거운 그림자를 털어 내고 순결한 눈짓으로 힘차게 솟아올라 피리 불며 어둠의 숲을 떠난다. 나는 그 곁에서 함초롬히 비에 젖어 촉촉한 대지에 입을 맞추고 발가락 사이.. 2020. 1. 18.
(시) 나에겐 숲이 있었네 / 남상학 시(詩) 나에겐 숲이 있었네 남상학 이름 모를 풀꽃들이 이슬에 젖어 눈을 뜨는 풋풋한 아침이거나 눈부신 하늘이 햇살 한 자락 끌고 내려와 자갈밭에 질펀히 누워 사랑니를 앓고 있는 대낮이거나 나에겐 숲이 있었네. 그리고 어둠이 잘름잘름 기진한 몸을 이끌고 와서 토방(土房)에 아픈 다리를 걸치는 해 늦은 저녁 무렵에도 나에겐 숲이 있었네. 아늑한 숲에 안식이 내리고 정적이 감도는 시간이면 나뭇가지에 둥지 틀어 밤이면 밤마다 별들이 알을 까는 숲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생명의 진액(津液)을 빨아올려 무성한 잎을 피워 그늘을 드리우는 숲 그 숲속에 한 그루 나무 되어 사시사철 한 몸으로 하늘 향해 키를 재며 살고 있음을 오늘 새롭게 우러러 감사하네. 2020. 1. 18.
(시) 또 하나의 길 -갈두리 / 남상학 시(詩) 또 하나의 길 - 갈두리 남상학 버릴 건 다 버리고 왔습니다. 애지중지 늘 곁에 끼고 있던 것까지 죄다 버리고 왔습니다. 아침저녁 반갑게 인사하던 아파트 입구의 패랭이꽃도 해거름 벤치 옆 후박나무 그림자 한 자락도 그대로 놓아두고 왔습니다. 새들이 둥지 튼 숲속 오솔길 지나 거대한 욕망이 입을 벌린 터널과 뜨거운 불길이 달아오르는 아스팔트길 사막의 한복판을 지나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달려왔습니다. 때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고 부서지고 두 발에 굳은살 못이 박히고 여기저기 생채기 무성한 채로 만신창이가 되어 여정의 마지막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여행자의 짐이 가벼워진 걸까요? 버릴 것 죄다 버린 홀가분한 지금에서야 저 멀리 희미한 등불처럼 내가 가야 할 또 하나의 길이 안개 속에 보이는 듯합니다... 2020. 1. 18.
(시) 망향가 -백령도에서 / 남상학 망향가(望鄕歌) - 백령도에서 남상학 섬은 울고 있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잠을 못 이루고 물길을 따라 몇 번씩 고달픈 몸을 뒤척이다가 온몸에 안개를 휘감고 북으로북으로 노를 젖고 있었다. 두고 온 형제 그리운 얼굴 지척에 두고 우리의 사랑이 언젠가는 다시 이어질 것을 믿으며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 소용돌이 물길을 건너 장산곶을 향해 거친 파도에 흔들리며 가고 있었다. 바람을 곱게 빗질하던 하얀 갈대머리도 북으로 따라 가고 뜨거운 사랑 안고 숨진 넋인 듯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도 마치 열병식(閱兵式)을 하듯 오직 한 방향으로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금강산의 총석정을 옮겨놓았다는 두무진의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촛대바위 형제바위 신선대 사자바위 등 기암괴석들도 후려치는 해풍에 머리를 감으며 북으로북으로.. 2020. 1. 17.
(시) 백령도 -섬은 잠들지 않았다./ 남상학 시(詩) 백령도 -섬은 잠들지 않았다 남상학 섬은 잠들지 않았다. 낮에도 밤에도 결코 잠들 수 없었다. 안개 덮인 새벽 미명 마을을 깨우는 전령처럼 어둠을 걷어 올리는 새벽닭 울고 낯선 사람의 그림자를 쫓아 숨죽이며 뜬눈으로 밤을 새운 개들이 경계의 시선을 풀지 않은 채 컹컹 아침 점호를 시작한다. 쩌렁쩌렁 야성(野性)의 소리로 골짜기를 흔들어 깨우는 흑룡 사나이들의 구령 소리가 낮은 산언덕을 넘으면 어느새 깃발이 산등성이에 내걸리고 햇살이 파편처럼 덮이는 대지는 나른한 낮잠에 취할 새도 없이 온통 콩 볶는 소리로 자욱하다. 어느덧 땅거미 지고 낮은 포복으로 어둠이 기어들어 암흑의 바다 해안선을 따라 게, 고둥, 까나리 들이 떼 지어 몰려들어 손에 손잡고 철책을 치고, 온갖 풀벌레들이 두 눈에 서치라이트.. 2020. 1. 17.
(시) 울릉도 / 남상학 詩 울릉도 남상학 일만 년일까? 이만 년일까? 아니면 천만년의 천만년일까? 오랜 세월 떠밀려 이 바다에 쫓기운 눈물 방울 추산(錐山)* 봉우리에 뚫린 구멍 같은 삶 모진 바람 휩쓸리며 너는 용케도 살아 있었구나! 올려다본 하늘은 앞을 막아서는 바위 같은 절망 거센 바람은 허구한 날 가파른 구릉을 지나 맨발로 성인봉을 넘었다. 담 너머론 우두커니 출렁이는 물빛 슬픔뿐 집어등(集魚燈) 불빛이 환한 날에도 밤바다의 어둠은 좀처럼 가실 줄 몰랐다. 하지만 거친 풍파에 몸을 던져 다시 호흡을 가누며 오늘도 의연하게 살아 가장 순수한 목숨으로 살아 바람이 불 때마다 내 영혼의 불빛처럼 푸르게 출렁이는 섬 나의 사랑 울릉도 *추산(錐山)은 울릉도에 높이 치솟은 바위로 된 봉우리로 구멍이 뚫려 있다. 2020. 1. 17.
(시) 도동항에서 / 남상학 시(詩) 도동항에서 남상학 젖먹이 어린것이 턱받이를 하얗게 걸치고 앉아 세월을 토닥거리고 있었다 칠흑 같은 밤 이 밤이 새면 어미젖을 찾아 칭얼거리는 그 소리 그칠까 바람 부는 날 오징어 배 거친 파도를 타듯 젖은 눈에 조마롭게 피워 올리는 꿈 어느 날 이 바람 그치면 붉은 살점 같은 한 송이 붉은 동백꽃으로 그리움 피어날까 ※도동항은 울릉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항구로, 포항에서 카페리호로 7~8시간, 쾌속선(Sea Flower)으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또한 후포항·묵호항에서도 관광성수기에는 1일 2회 왕복 운항하지만 기상관계로 인해 비정기적으로 운항되고 있다. 2020. 1. 17.
(시) 제부도로 오시오 / 남상학 시(詩) 제부도로 오시오 - 남상학 살다가 이유 없이 답답하거든 토라진 마음을 돌리고 싶거든 이곳으로 오시오 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직 하나 섬에서 나오는 길도 오직 하나 바다를 가르고 열리는 갯벌 사잇길 시원스레 뚫린 바닷길 따라 출렁이는 가슴 열고 달려오시오. 물살은 잡은 손 뿌리치고 거센 기세로 달아나지만 열 번 백 번 어김없이 처음인 듯 새롭게 손을 잡듯이 갯벌에 난 제각각의 발자국도 물결에 쓸려 자취 없이 녹아 사라지듯이 서로 팔짱을 끼고 걸어오시오. 한 쌍의 바닷새 우뚝 솟은 매바위 휘휘 돌아 날개 접고 둥지 틀어 뾰족한 주둥이로 한 몸임을 확인하듯이 우린 서로 한 몸인 것을 사랑인 것을 살다가 이유 없이 답답하거든 토라진 마음을 되돌리고 싶거든 갯벌 사이 바닷길 건너 가슴 활짝 열고 제부도로.. 2020. 1. 16.
(시) 아버님 생각 / 남상학 시(詩) 아버님 생각 남상학 몇 년 전 30년만에 이작도(伊作島)*에 간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분교 앞마당, 운동장 곁의 느티나무는 푸르름이 짙었는데 그리운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진 속에 본, 먹으로 쓴 낯익은 글씨체의 ‘便所’라고 써 붙인 뒷간도 없어졌다. 이것들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옛날 추억을 더듬는 강동산 할아버지의 얼굴에 잠시 회한이 스쳐 지나갔다. 건너편 언덕 위로 새로 페인트를 칠한 양철지붕의 교회당, 그 첨탑(尖塔) 위 십자가가 유난히 선명했다. 그날 밤, 나는 만조(滿潮)가 된 방파제에 앉아 오랜 시간 큰아들과 할아버지 이야기를 꽃피우다가 달빛이 내린 밤바다에 무시로 뛰어오르는 은빛 물고기와 맑은 하늘을 쳐다보며 유난히 반짝이는 별들의 눈을 보았다. 다음 날 나.. 2020. 1. 16.
(시) 고향 생각 / 남상학 시(詩) 고향 생각 남상학 고향을 떠나온 후 나는 바다만을 생각하며 살았다. 고향이 그리운 날 바다는 아예 내 눈썹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사계(四季) 중 여름이 더욱 그랬다. 바람 부는 날은 창밖 흔들리는 미루나무에서 넘실거리는 물결과 파도 소리를 보고 듣곤 했다. 때로 집채만 한 파도가 덮치면 신열(身熱)이 오른 맨발의 아이는 해안을 따라 정처 없이 달렸다. 그리고 바람이 자면 수평선 위에 가물가물 꿈의 돛배를 띄웠다. 팔미도를 지나 영흥도로, 자월도를 지나 이작도 승봉도로, 아니면 덕적도를 거쳐 문갑도 백아도 울도로, 그 너머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또 다른 섬으로. 그 아련한 물길 따라 나는 가끔 물새 우는 소리를 듣곤 했다. 이제 지명(知命)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지도책을 펴들고 눈을 끔벅이며, .. 2020. 1. 16.
(시) 두륜산에서 / 남상학 시(詩) 두륜산에서 남상학 두륜산에 오르면 눈이 커진다. 귀가 커진다. 바다로 향하여 촉수(觸手)를 내민 저 생동하는 낙지발 침봉암봉(針峰岩峰)의 바위는 바다를 그리워하다가 돌이 되었다던가 아련하게 출렁이는 그리움의 끝에서 점점이 피어나 어느새 밀물처럼 달려와 품에 안기는 섬들 두 손으로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숨소리 저 멀리서 산이, 섬이 손짓하며 날 오라 한다. *두륜산은 소백산맥의 서남단(해남)에 자리한 산으로, 해발 703m의 정상 가련봉에 오르면 영암 월출산과 강진만, 신안 앞바다, 진도 완도 등 다도해의 절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2020. 1. 16.
(시) 보문사의 가을 / 남상학 詩 보문사의 가을 남상학 깔끔한 절 마당으로 가을 낙엽처럼 목탁 소리 뚝뚝 떨어지고 우람한 불당 앞 하늘이 성큼 내려와 좌정한 자리 바다로 숨는 저녁 해가 약수(藥水) 물을 퍼 올리듯 뻔질나게 붉은 가을을 실어 나르네. *보문사는 강화 석모도에 있는 조계종 3대 기도 사찰의 하나. 이곳에서 보는 서해 일몰은 장관이었다. 2020. 1. 16.
(시) 진주 남강 / 남상학 시(詩) 진주 남강 남상학 도도한 물줄기 흐르는 남강 기슭 푸른 대숲에 서서 깊고 넓은 침묵 안고 출렁이며 넘실거리는 강물을 본다. 역사의 물굽이 높아 저마다의 가슴에 분노 들끓어 오랜 날 겨레의 가슴에 차오르던 의분(義憤)이었거니, 벼랑 끝에 핀 처연한 한 떨기 꽃 푸른 물결에 입 맞추던 오, 아리따운 넋이여! 그 사랑, 그 의기(義氣) 도도하게 흐르는 물결처럼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가슴에 샘솟는 힘으로 살아 오늘 강물에 띄우는 그리움의 쪽배가 되고 물결을 다스리는 바람이 되고 산천을 수놓는 춤이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마침내는 겨레의 영혼을 적시는 노래가 되어 나를 향해 손짓하며 뒤척이며 보채며 그리움의 강물은 오늘도 도도하게 흐른다. *1593년 6월 29일 논개(論介).. 2020. 1. 16.
(시) 알 수 없어요 -향일암에서 / 남상학 알 수 없어요 -향일암에서 남상학 평범한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는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높이 솟은 바닷가 벼랑 새 둥지 같은 암자를 짓고 허리 굽혀 거북 등을 하고 수만 번 부처님 앞에 합장하여 엎드려도 모진 해풍에 온몸 내맡겨 피멍을 터뜨리는 동백(冬柏)의 그 아픔을 알지 못한다. 여유롭게 날개를 편 한 마리 솔개 절벽을 타고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고 바다는 허구한 날 떠밀리며 보채며 가파른 세월의 발끝을 물고 하염없이 출렁이지만 누구도 푸른 바다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한다. 어느덧 널브러진 푸른 물결 위로 천하일품 노을이 지고 백팔염주(百八念珠)를 굴리는 불자의 손끝에서 마침내 광란하듯 다시 새로운 태양이 솟는다고 해도 모진 풍상에 시달려 온 시린 가슴은 절망의 참뜻이 무엇인지 모르듯 그것이 희망이라.. 2020. 1. 16.
(시) 정도리 구계등에서 / 남상학 시(詩) 정도리 구계등에서 남상학 달빛 서러운 밤 여름 꿈속에서나 보는 꿈의 바닷가 질펀하게 누운 크고 작은 청환석(靑環石) 위로 짙푸른 파도가 달려와 달빛 아래 하얗게 풍화된다. 바위 위에 사정없이 태고의 신비 쏟아붓는 푸른빛들 얼음덩이 같은 공포가 몰려들어 일시에 해안 주변을 휩싼다. 오싹 소름이 돋는 여름 한기에 등줄기가 흥건히 젖어 들고, 몸을 내던져 울부짖는 저 괴괴한 소리는 무엇일까?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원시의 울음 아니면 무거운 원죄를 안고 신음하는 뭇 중생의 흐느낌인가? 평생 지은 죄가 많아 내게 내리는 형벌인 듯하여 푸른 물살에 온몸을 씻어내고 바윗돌을 돌베개 삼아 그 옛날 야곱처럼 뜬눈으로 온밤을 하얗게 새웠다. *정도리 구계등 : 완도 섬 서쪽에 있는 갯돌밭 해안인데, 어느 여름 이.. 2020. 1. 14.
(시) 추암 일출 / 남상학 추암 일출 남상학 수만 마리의 조랑말들이 말갈기를 세운 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무수히 쏟아지는 화살에 말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사위는 삽시간에 흥건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여기저기 독전(督戰)을 알리는 북소리, 아우성소리 거센 바람을 타고 사정없이 맨발로 달리는 벌판으로 말갈기에 빛나던 햇살이 온 천지에 꽃가루로 부서져 쏟아진다 승전을 축하하는 팡파르 흩어지는 금빛 실타래 속 이윽고 환한 웃음 머금고 바다의 맨 끝에서 열리는 붉은 석류(石榴) 박수소리 판을 깐 물결 위로 장군(將軍)의 위용처럼 하늘로 솟구치는 촛대바위 그 주변으로 졸병들이 몰려와 빛 부신 아침을 열면 모래 해변에선 갈매기가 후두두둑 부산하게 비상(飛翔)한다. *추암은 동해시 일출로 이름난 곳이며 촛대바위로 유명하다. 2020. 1. 14.
(시) 남해 금산 / 남상학 시(詩) 남해 금산 -그곳에 살고 싶네 남상학 남해 금산에 오르니 산줄기가 뚜벅뚜벅 바다로 걸어 들어가네 한 줄기 바람이 말갛게 얼굴 씻고 하얀 비단 한 자락 끌고 와서 맨발로 달려가고 아늑한 물안개 살금살금 발목에 차오르면 홀로 고고한 바위섬은 지상에서 영원히 함몰하듯 순간 자취를 감춘다. 구름 속에 아득히 묻히는 이 현기증, 먼 우주로의 유영(遊泳) 모든 것 쓸어간 자리에 난생처음 경험하는 무중력 상태 낯선 나라의 백성이 된 듯 스멀거리는 안개 떼 속에서의 이 신묘한 변신(變身) 영혼마저 투명해지는 것일까? 나이대로 청청한 나무에 기대어 금산에 묻혀 영원히 살고 싶네 안개처럼 바람처럼 2020. 1. 14.
(시) 비조봉에서 / 남상학 비조봉에서 남상학 아침 안개 자욱한 골짜기 풀향기 그윽한 숲속을 오른다. 지천으로 피어난 섬풀과 잎새들이 이슬 머금고 육지의 나들이객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옛 추억의 실타래에 숨겨둔 으름덩굴, 둥굴레, 키재기 하는 참나리들 너도나도 앞다투어 손짓한다. 나는 숨 가쁘게 세월의 고개를 뛰어넘어 아름다운 꽃 울타리 속으로 유년 시절 추억 여행길에 오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비로봉 정자에 오르니 순간 바람결에 짙은 안개 사이로 얼굴을 내민 크고 작은 섬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안개 바람 속으로 다시 숨는다. 기다림은 언제나 아름다운 것 기약 없이 망연히 기다리는 눈앞에 비로소 성찬(盛饌)이 차려지고 내 품에 달려와 안기는 올망졸망한 귀여운 자식들 무성한 소나무 가지 사이로 말끔히 눈을 씻으며 나는 발밑에서.. 2020.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