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또 하나의 길
- 갈두리
남상학
버릴 건 다 버리고 왔습니다.
애지중지 늘 곁에 끼고 있던 것까지
죄다 버리고 왔습니다.
아침저녁 반갑게 인사하던
아파트 입구의 패랭이꽃도
해거름 벤치 옆 후박나무 그림자 한 자락도
그대로 놓아두고 왔습니다.
새들이 둥지 튼 숲속 오솔길 지나
거대한 욕망이 입을 벌린 터널과
뜨거운 불길이 달아오르는 아스팔트길
사막의 한복판을 지나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달려왔습니다.
때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고 부서지고
두 발에 굳은살 못이 박히고
여기저기 생채기 무성한 채로
만신창이가 되어
여정의 마지막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여행자의 짐이 가벼워진 걸까요?
버릴 것 죄다 버린 홀가분한 지금에서야
저 멀리 희미한 등불처럼
내가 가야 할 또 하나의 길이
안개 속에 보이는 듯합니다.
*내륙으로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국토의 남단, 이름 하여 땅끝마을 해남 갈두리. 이곳은 ‘국토의 끝’이란 이유로 동경과 그리움의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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