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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307

(시) 유산(遺産) / 남상학 유산(遺産) -석우ㆍ경우에게 남상학 얘들아 일 년에 두어 번 온양 선영에 들르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추모 예배를 드릴 때면 나는 입이 닳도록 너희에게 말해 왔지. 남겨주신 유산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오직 믿음과 성실뿐이었다는 것을 그럴 때마다 너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라고 철없는 나이에 눈빛으로 말했었지. 그런데 얘들아 먼발치 어버이 마음 헤아리며 고맙게도 너희는 성년(成年)이 되고 백발을 만지작거리며 남은 날을 세는 나의 열 손가락엔 잡히는 것 하나 없이 너희들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온전한 믿음과 성실 그 어느 것 하나도 물려줄 것 없는 어버이인 것을 용서해라 그리고 유언처럼 남기고픈 한 마디 진심으로 사랑과 축복을 너희에게 빈다는 말뿐인 것을 마지막으로 용서해라 2020. 1. 8.
(시) 식탁 / 남상학 식탁 남상학 아침마다 가을날의 햇볕 같은 행복의 부스러기를 주워 모은다. 네 사람이 앉는 사각(四角)의 식탁 모락모락 김이 오르듯 둘레에 피는 사랑 그 행복과 사랑을 보석(寶石)처럼 꿰어 아내의 목에 걸어 주고 나머지는 똑같이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두 아이의 빈 밥그릇에 담아 준다. 아침마다 우리들의 식탁에는 호박죽 냄새와 숭늉 냄새가 도란도란 피어오른다. 2020. 1. 8.
(시) 새해의 기도 2 / 남상학 새해의 기도 - 남상학 언제나 우리의 시간은 당신이 주시는 햇살로 눈부십니다. 빛은 영원 안에 있고 그 빛 속에 소중한 생명은 사계(四季)를 거듭하며 성장합니다. 어느 하루도 따스한 사랑 끊인 적 없었지만 처음인 듯 새롭게 가슴 가득 안아 보는 은혜로운 햇살 새해 아침 떠오르는 아침 해가 투명한 빛살 속에 퍼지는 자애로운 어루만짐으로 불덩이 같은 사랑을 쏟아 냅니다.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 죽지 않는 생명이 되듯이 눈부시어 눈뜰 수 없는 나 소담스러운 꽃을 피우며 옷깃 여미며 살아가겠습니다. 삼백예순다섯 날 영혼의 충일(充溢)을 염원하며 생명의 텃밭을 일구는 성실한 농부이게 하십시오. 그래서 당신 안의 하루하루가 풋풋한 청과일로 익어 당신 제단에 바치는 단맛 나는 기쁨이게 하십시오. 2020. 1. 8.
(시) 빌라도의 기도 / 남상학 빌라도의 기도 -벌(罰)하지 마옵소서 남상학 주여, 벌하지 마옵소서 손은 대야 속 물에 씻을 수 있었지만 마음속 깊이 흐르는 핏속의 죄는 끝내 씻을 수 없었나이다. 광명(光明)한 대낮의 잘못된 판결이 이 밤 악몽(惡夢)이 되어 눈앞을 맴돕니다. 생명을 버리어 생명 안에 참 생명을 가꾸시는 이 당신의 크신 사랑 알지 못한 무지(無知)를 가슴앓이 밤새워 한탄하지만 소름 끼치는 아우성 귓전에 맴돌 뿐 ‘그를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으라’ 타오르는 분노를 불 지르던 저들의 외침 내 가슴에 번뇌의 불덩이로 타오르고 소금밭보다 더 쓰리게 졸아드는 아픔으로 곤고(困苦)한 영혼이 어둠 속에 흐느끼는 촛불처럼 어지러이 흔들립니다. 진실로 나이대로 영원한 어둠 속에 벌 받고 죽어야 옳음일 것을 마땅히 알건마는 한 생명이라.. 2020. 1. 7.
(시) 나목(裸木) / 남상학 나목(裸木) 남상학 주여, 지금 저는 늦은 겨울 빈 들에 서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햇볕이 앙상한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시간을 줍고 있는데 겨울을 채 건너지 못한 새들이 얼어붙은 하늘을 기웃거리며 어디론가 황급히 길을 떠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찬 바람 불어 배고픈 영혼(靈魂)이 길게 흐느끼고 나목(裸木)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마른 갈대밭에서 처량하게 웁니다. 그 소리에 부딪히며 떠밀리며 살아온 삶의 자국이 투명한 하늘에 선명하고 칼날 같은 빙판(氷板) 위에 전신을 몰아세우는 바람이 오히려 나를 귀 뜨이게 함은 웬일입니까. 주여, 이 시간 먼 곳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침묵(沈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눈물 뒤에 빛나는 보석(寶石)을 보게 하소서. 2020. 1. 7.
(시) 주일 아침 / 남상학 주일 아침 남상학 창문 넘어 온 상큼한 새벽 바람 푸짐한 단잠 깨어 이마에서 떨어지는 별을 빈 두 손에 모으는 시간 창가에 기웃거리던 햇살이 은빛으로 번쩍이고 날마다의 일상(日常)이 이리도 눈부신 날은 금빛 새 한 마리 한 소절(小節)의 음악을 날리는 당신의 축일(祝日)이어라. 겸손히 무릎 꿇어 발에 향유(香油) 붓고 검은 모발로 적시는 소박한 봉헌 드리울 제 정한 물 길어 올리는 우물가에 깨끗이 씻어 헹구는 영혼 당신 우러러 해맑은 간망(懇望)의 눈을 적시옵거니 생금(生金)보다 더 귀한 눈뜸의 은총 달콤한 과즙으로 용해되는 넘치는 충만이여 감사의 식탁에 모여 앉아 빛나는 사랑과 꿈 찻잔에 풀어 한 모금씩 나누는 기쁨을 비로소 알겠구나 2020. 1. 7.
(시) 당신은 / 남상학 당신은 남상학 당신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 눈이다 당신의 기침 소리는 새벽을 깨우는 찬란한 햇살이다 당신의 얼굴은 하늘 향해 발돋움하는 대낮의 해바라기다 당신의 웃음은 옹달샘 물가에 흐르는 샘물줄기다 당신의 기도는 이 세상 저녁 시간에 피어나는 향기이다 당신의 침묵(沈默)은 수면 위에 번지는 달빛 여운(餘韻)이다 그리고 당신의 부재(不在)는 어느 날 구름 위에서 순금(純金)의 꽃가루로 빛날 위대한 내일이다. 2020. 1. 7.
(시) 나는 / 남상학 나는 남상학 내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나는 이미 죄인이었네. 서른세 살 당신이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숨을 거두던 날 나는 당신과 함께 죽었네. 그날 나의 죄는 죽고 당신이 무덤의 문(門)을 열었을 때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살았네. 내가 산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산 것 주여, 이 몸은 영원히 당신의 것이옵니다. 2020. 1. 7.
(시) 저녁강 / 남상학 저녁강 -양수리에서 남상학 강물이 주름살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늙은 어미가 칭얼거리는 어린것을 달래듯 주변 산들을 가슴에 품고 저무는 하루를 못내 아쉬워하면서 긴 그림자를 끌고 앉아 시름에 잠겨 요령을 흔들고 있다. 하얀 목덜미를 감싸고 뽀얀 물안개를 피워내던 한여름 축제의 시간도 끝나고 종일 물살을 가르며 물장구치던 바람도 사랑의 숨결을 갈대숲에 남겨두고 하루살이처럼 어디론가 쓸쓸히 사라져 갔다. 텅 빈 들판을 가로질러 성긴 빗살로 부서지던 저물녘 햇살 속으로 추억을 가득 실은 중앙선 열차가 지나가고 일몰의 무게가 힘겨운 듯 허리 휜 노인이 허허로운 들판에 홀로 서서 흐르는 강물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있다. 이 무렵 부산하게 울어대던 떼까치들은 앙상한 가지 끝에 머문 적막을 쪼며 삶이란 마침내 흐르는 .. 2020. 1. 6.
(시) 유월의 뻐꾸기 / 남상학 유월의 뻐꾸기 남상학 낮게 엎드린 새벽 산을 깨우며 오늘도 뻐꾸기가 운다. 새벽. 안개 속 부옇게 묻어나는 그리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서로 화답하며 피를 토하듯 슬피 운다. 그리운 산하(山河) 그 품에 애틋한 젊음을 묻어두고 강물처럼 흘러간 사랑 그리워 정처 없이 헤맨 유월의 넋들 아름다운 죽음 긴 밤 숲속에 알을 까는 새가 되어 어둠 밝히는 별이 되어 마침내 소리하는 넋이 되어서 밤꽃 피는 유월이면 숨 막히는 골짜기를 헤매다 적막한 산허리 외딴 마을에 와서 운다. 구순(九旬)을 넘긴 노모의 응어리진 가슴 위에 잿빛 납덩이 진혼의 나팔처럼 한숨 한 자락 치마폭에 질펀히 쏟아 놓고 밤꽃 피는 숲속에서 유월의 뻐꾸기가 하늘을 쪼개며 구슬피 운다. 2020. 1. 6.
(시) 복사꽃 추억 / 남상학 복사꽃 추억 - 세검정에서 남상학 만원버스를 타고 자하문 밖 고개를 넘으면 봄 아지랑이 춤추는 언덕 너머 물오른 나무들이 새빨갛게 불타고 있었네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 가지 뒤에 숨어 얼굴을 붉히던 그대 버스 뒤 창문의 글귀*를 바라보며 '우린 몇이나 낳을까?' 말해 놓고 당황하던 얼굴처럼 꽃가지 그늘 사이 출렁이며 넘실거리던 햇살 속으로 ‘러브 미 텐더 러브 미 트루’ 감미로운 선율이 어느새 잘 익은 복숭아 단물이 되어 뜨거운 가슴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네 겉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은밀한 내면을 기웃거리면서 복사꽃으로 피우던 자잘한 사랑 이야기 티 없이 맑은 눈은 하늘의 푸른 샘물을 종일토록 퍼 올리고 있었네 복사꽃 화사하게 만건곤한 봄날 세검정에서 *글귀 : 60년대 초반에는 산아제한을 홍보하는 라는 .. 2020. 1. 6.
(시) 오늘은 기쁜 날(성탄) 오늘은 기쁜 날 - 성탄 남상학 얘들아, 우리 모두 성탄을 보러 가자 어둠을 몰아내는 빛 되어 겨울 나라에 오신 손님께 별따라 수만 리 길 박사처럼 정성껏 예물 받쳐 들고 아기 예수를 맞으러 가자 기쁨의 캐럴 부르며.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12월의 시 2020. 1. 5.
(시) 하늘과 새(비상) 하늘과 새 - 비상 남상학 하늘 보이는 곳에 작은 창을 내고 창공으로 솟구치는 새를 보네 영원의 끝을 만지고 싶어 끝없이 퍼덕이는 날갯짓 만남의 가슴 떨림으로 우러러보는 하늘 향해 새처럼 훨훨 날고 싶어라.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11월의 시 2020. 1. 5.
(시) 끝 없는 노래(감사) 끝 없는 노래 - 감사 남상학 어떻게 감사할까 이 큰 은혜 가장 좋은 열매로 제단을 쌓고 눈 감고 두 손 모아 부르는 다함 없는 노래 우러러 기쁜 날은 말문 막혀라.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10월의 시 2020. 1. 5.
(시) 과원에서(성숙) 과원에서 - 성숙 남상학 여름의 이마 위에 입맞춤하는 햇살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눈부신 햇과일 열렸구나 하늘 베개 삼고 누운 내 뜨락 당신 나무에 단맛 나는 열매로 내가 열리는 날은 그 언제일까?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9월의 시 2020. 1. 4.
(시) 포도(은혜) 포도 - 은혜 남상학 하늘 청아한 소리 여름 뜨락에 주렁주렁 열렸네 갈맷빛 하늘에 목축이고 따스한 햇볕 받아 알알이 영근 포도송이 오랜 날 기도의 샘물 퍼 올려 상큼한 바람으로 빚어낸 단맛이여!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8월의 시 2020. 1. 4.
(시) 갈릴리 어부(순종) 갈릴리 어부 - 순종 남상학 물고기 떼 펄펄 그분과 함께하는 만선(滿船)의 기쁨이라면 “사람 낚는 어부 되라” 정든 것을 버리고도 기쁠 수 있는 우린 순명(順命)의 사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자.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7월의 시 2020. 1. 4.
(시) 서로 손 잡고(부부) 서로 손 잡고 - 부부 남상학 산 넘고 바다 건너 숨 가쁜 길을 서로 손 잡고 뜻을 모으는 재미 해 뜨고 달 지는 꿈길에 아, 가도가도 정겨운 물보라 빛 세월 은혜의 텃밭에 꽃을 가꾸네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7월의 시 2020. 1. 4.
(시) 새해 / 남상학 새 해 - 남상학 둥근 해를 보아라 창을 열면 온 누리 눈 뜨는 아침 출발의 이 자리 우리들 설레는 가슴에도 커다란 동그라미 하나 부푼 꿈 소망을 실어 하늘 높이 연(鳶)을 띄운다.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1월의 시 2020. 1. 4.
(시) 사랑의 서사시(십자가) 사랑의 서사시 - 십자가 남상학 어둠 깔린 산등성이 쓴잔(盞)을 마시고도 얼굴에는 빛나는 광채 그건 창조 이래 최대의 서사시 아픔의 무게만큼 환한 그 사랑, 그 은혜 없었다면… 나는 다만, 무릎 꿇고 눈물로 바라볼 뿐이네!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4월의 시 2020. 1. 4.
(시) 3월의 환희 (개화) 3월의 환희 - 개화(開花) 남상학 싱그런 봄 뜨락에 하늘 꿈 담아다가 인고의 땅에서 기도로 피운 눈물인가 신생하는 천지에 천사들의 고운 합창 온통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반가운 복음이네.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3월의 시 2020. 1. 4.
(시) 하늘 꿈꾸는 사람 (돌베개) 하늘 꿈꾸는 사람 - 돌베개 남상학 돌베개 베고 누워 하늘에 닿은 꿈속 사다리를 보네 천상을 오르내리는 눈부신 옷깃 하늘 꿈꾸는 사람아 어디를 가나 너를 축복하시리. ※ 시가 있는 크리스챤 카렌다 제작을 위해 쓴 2월의 시 2020. 1. 4.
(시) 꽃밭 / 남상학 (시) 꽃밭 남상학 깊은 잠에서 눈 뜬 온갖 생명이 일제히 얼굴을 씻고 환호한다. 얼어붙은 땅 오랜 기도의 씨앗들이 맑은 이슬 머금고 천의 만의 꽃으로 피어 사랑하는 이를 향해 두 손 받쳐 들고 고운 잇속 들어내 활짝 웃는다 불면의 밤을 새우며 피눈물로 뜨겁게 피워 올린 아픈 사랑의 이야기들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 고백인가 안으로 속삭이며 애태우던 비밀스런 가슴 이제야 열어 놓고 환한 얼굴로 당신의 뜨락에서 숨 쉬는 기쁨 언제 그이는 오실까 은총의 햇살로 빚은 향기 가득 드리고 싶어 밤낮없이 발돋움하는 마음인데 싱그런 바람 불면 곱게 머리 빗고 한나절 찬미의 꽃술 흔들며 춤을 추다가 푸른 옷자락 내걸린 그리운 하늘가로 너울너울 수천 마리 나비 떼를 날린다. 2020. 1. 3.
(시) 어느 아침 / 남상학 (시) 어느 아침 남상학 먼동 트기 전 이른 아침 젖은 길섶에 가늘게 눈 뜨는 풀꽃들의 미소 눈 부신 햇살이 긴 목을 빼고 나뭇가지의 새 둥지 앞에서 잔칫집에 초대된 손님처럼 기웃거린다 순간 번쩍이는 금화를 흩뿌리며 빈 하늘 가득 솟구치는 날갯짓 푸르고 싱싱한 복음이듯 들려오는 청아한 생명의 노랫소리 푸른 소나무 언덕 넘어오는 싱그런 바람에 앞산 위로 흘러가는 뭉게구름처럼 맑은 정신이 되살아 온다 감당할 길 없는 눈부심 속에 두고두고 마음으로 익힌 얼굴이 부서지는 햇살 사이로 선명하게 다가오고 나는 풀꽃들이 반기는 냇가 길섶에 앉아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는다. 2020. 1. 3.
(시) 사냥개 / 남상학 (출처 : pxhere) (시) 사냥개 남상학 어둠이 휘장을 내리는 밤이면 골목에 숨어 엿보던 사냥개가 음모를 품고 내게 다가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계엄을 선포한다 온몸에 야광처럼 와 박히는 비수 번쩍이는 푸른빛에 손발 묶인 나는 더 도망칠 수가 없다 경계를 풀 때마다 달려들어 사정없이 내 지친 육체를 물고 늘어진다 묻어나는 살점, 선연한 핏자국 부끄러운 삶의 비린내가 사방으로 퍼진다 육신을 얽어매는 덫의 가시여, 끝내 영혼마저 탈진하여 쓰러지고 막다른 골목에서 나는 항복한다 풀어낼 수 없는 가위눌림 나는 좀처럼 일어설 수가 없다. 2020. 1. 3.
(시) 추억 · 3 -겨울 햇살 / 남상학 (시) 추억 · 3 - 겨울 햇살 남상학 그해 겨울 서울 변두리 응봉동 비탈진 언덕에 둥지 틀고 푸른 하늘 우러르며 칼을 베는 바람 등지고 살았네. 참새가 떼 지어 날아와 기웃거리는 가난한 빈방 창가에 소록소록 눈이 쌓이고 오로지 언 몸 녹이는 불씨 하나 살아 그 타오르는 불꽃으로 피워낸 우리들의 사랑 긴 밤을 밝히는 마음 하나로 새 생명을 길러내고 때 묻지 않은 하얀 손수건에 따스한 겨울 햇살 받아 하늘을 베개 삼고 살았네 전신주에 바람이 울고 있는데…. 2020. 1. 3.
(시) 추억2 -젖은 안개꽃 / 남상학 (시) 추억 · 2 - 젖은 안개꽃 남상학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수동리 장대비 사정없이 두드리던 날 물안골을 휩쓴 흙탕물이 입석 수련장을 끼고 휘돌아 나갔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각처에서 모여 무릎 꿇고 앉은 자리 밤이 깊어가며 마음은 비워지고 뜬눈으로 밤을 밝힐 때 어둠을 한 꺼풀씩 벗기며 먼동 트는 새벽 아침 안개를 거느리고 한 다발 물기 젖은 안개꽃으로 아아, 기적처럼 너는 왔다 한여름의 반란 먼 산이 허물어지는 소리 산사태 혹은 개벽 과거 일체의 어두운 기억들을 씻어 버리는 이 엄청난 소용돌이 초록의 숲은 더욱 푸르고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더욱 빨라지고 하늘 문이 열리는 소리 그것이 평생 끊지 못할 사랑일 줄이야! 뜨겁게 흐르는 은혜의 강 건너 초록 숲에 맑은 빗방울 소리 없이 듣는 은총에의 감사를.. 2020. 1. 3.
(시) 추억 1 - 유년의 추억 / 남상학 추억1 - 내 유년의 기억 남상학 1 무릇 둥굴레 고아 먹고 어지러워 멀미하는 세월이었네. 돌쩌귀에 살점이 쩍쩍 달라붙는 겨울 진물 흐르는 부어터진 손마디로 꺼져 가는 화톳불 불씨를 뒤적거리다 한기에 지친 몸 깊은 잠에 빠져들었지. 2 언 땅에 팽이를 돌리던 친구야 토시 끝에 매어 달린 가난의 흔적 양잿물 잘못 먹고 뒤집힌 너의 눈동자 그 악몽의 기억에 놀라 잠을 깨면 눈가에는 땟국 같은 눈물이 흐르고 하얗게 바랜 얼굴을 하고 핏방울 엉킨 젖은기침 소리를 목젖에 삼키곤 했지. 3 허기져 쓰린 배 움켜잡으며 꽁꽁 언 땅, 비탈진 언덕배기 채소밭을 오르내린 지 몇 번인가? 호미 끝에 걸리는 생존의 무게 손가락 크기의 고구마나 배추 꼬리 주우며 칼로 베어내는 아픈 살점을 우적우적 씹고 있었지. 4 누이 따라 .. 2020. 1. 3.
(시) 무덤 앞에서 / 남상학 (시) 무덤 앞에서 남상학 다시는 죽지 않아 외롭지 않으리. 꿈꾸어 온 꽃자리에 영원히 살아 그대 외롭지 않으리. 고향 마을 양지바른 언덕 한 무더기 바람으로, 한 떨기 꽃으로 한 무리 날아가는 새들 벗 삼고 울음의 강 건너 죽음의 강 건너 생명 나무 우거진 숲속에 아련히 화답하는 찬미 소리 들으며 더 이상의 가슴졸임도 없는 더 이상의 두려움도 없는 목 늘여 기다리는 애태움도 없는 피눈물 한 방울도 없는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고 그래서 어제가 내일인 영원 속에 사는 자여 한평생 믿음으로 살아 그 넓은 품에 안기는 빛으로 둘러싸인 영광 그 감격의 내력을 일깨우며 양지바른 언덕 지금 그대 얼굴 오래오래 내 가슴에 살아 영원히 외롭지 않으리. 2020. 1. 3.
(시) 성묘 / 남상학 (시) 성묘 남상학 충청남도 아산시 기산동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 달려와서 양지바른 곳 아버님 어머님 뜰에 불효자식들이 나란히 섭니다 얼굴 한 번 보신 적 없는 사위 자부들까지 옛날 집 앞의 미류나무처럼 서서 뜨거운 사랑 가슴 뭉클하여 두 손 모아 넙죽 큰절을 올립니다. 외딴 섬 큰 바위 얼굴로 사신 아버님 긴 겨울밤 촛불 밝혀 새우시던 어머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으로 우리를 품으셨지만 우리는 늘 부끄러움인 채로 그 문밖에서 하염없이 눈물 같은 비에 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어주신 고귀한 사랑 여기 잔디밭에 피어나는 들꽃처럼 아버님 어머님 뜰에 한 떨기 아름다운 꽃으로 피우겠습니다. 하늘보다 높으신 그 모습 우러러 불효자식 사남매가 짝하여 서서 오늘은 아버님, 어머님 뜰에 한 아름 카네이션 붉은 꽃을 바.. 2020.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