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307

(시) 어둠 속에 앉아 / 남상학 어둠 속에 앉아 남상학 간밤엔 뜬눈으로 새웠다. 서슬 푸른 이빨로 갈갈이 찢긴 푯대 욕망을 실은 거선(巨船)이 드디어 침몰했다. 배신자가 당하는 고문과 매질 목 타는 갈증상처 입은, 젖은 목숨 쓸쓸히 풍화하는 영혼의 통곡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앉자 예인(曳引)을 기다리며 밤새 목쉰 소리, 통성기도로 눈을 떴다. 2020. 1. 1.
(시) 상실의 아픔 / 남상학 상실의 아픔 남상학 모진 꽃샘추위 속에 두꺼운 얼음장이 녹아 꺼져내라는 소리를 듣는다 세찬 폭풍우에 나무들이 꺾이고 밤새워 내린 빗물에 강물이 넘쳐 온갖 것들을 쓸어가고 내 명상의 감나무 그늘엔 선명한 핏자국 아픈 상처뿐이다 어떤 유혹과 허욕일지라도 견디어 내겠다는 신념도 오기도 꺾이고 강변을 휘감는 모진 바람에 새들은 둥지를 잃고 억새 줄기만이 앙상하다 힘찬 기세로 달려오는 홍수 흙탕물의 범람 속에 마지막 보루마저 함락되는 슬픔 그 혼돈의 안개 속에서 이제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초췌한 모습이 부끄럽고 나 이대로 살아 있음이 죄스러워 겨울 벌판의 허수아비처럼 두 손 들고 서 있다. 2020. 1. 1.
(시) 바위산 / 남상학 (시) 바위산 남상학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대면할 수 있는 바위산이었으면 좋겠네 종가집 맏형처럼 위엄 있는 자세로 앉아 식솔들을 어루만지는 넓고 큰 가슴이면 좋겠네 잦은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눈사태 몰아쳐도 눈 멀지 않고 마을 건너오는 들바람소리 그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자연 속에 귀를 세워 영원의 끝에 닿아 있는 영겁의 소리, 그 쩡쩡한 소리를 명징한 귀에 들을 수만 있다면 미움과 싸움의 나날 세상과 결별하고, 빛 바랜 한 조각 꿈일랑 산허리를 둘러친 구름에 흘러보내고 삼백 예순 날 태고 속에 앉아 내면을 다스리는 때묻지 않은, 순수 그대로의 바위산이었으면 좋겠네. 2019. 12. 31.
(시) 하늘의 파수꾼 / 남상학 (시) 하늘의 파수꾼 남상학 나는 그로부터 도망한다 할 수만 있으면 멀리 도망친다 나를 옥죄어 얽어매는 얽히고설킨 마음의 거미줄 그 미궁에서 필사적으로 달아나는 끝없는 질주 사슬을 끊고 자유를 구가하기 위하여 상처 난 영혼 이끌고 나는 그로부터 멀리 숨는다 그러나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서두르지 않고 신중한 걸음걸이로 의연하게 당당하게 다가서는 발걸음 소리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따라와 미세한 소리로 나를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 나는 그를 떠나 그 어디에도 몰래 숨을 곳이 없다. 2019. 12. 31.
(시) 싸움 / 남상학 (시) 싸움 -두 개의 칼 남상학 내가 있는 곳에는 어디나 나를 엿보는 눈이 있다. 내가 길을 걸어가면 일정한 거리로 따라붙고 내가 자리를 잡고 누우면 침상에 먼저 와 함께 눕는다 어둠 속 번뜩이는 너를 향해 경계의 불을 켜면 어디엔가 잠시 숨었다가 철조망을 걷는 날에는 이내 내게로 달려들어 한 입 마디마디 와작와작 씹어 나를 삼킨다. 너와 나는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칼 내 마음속 은밀한 곳에선 처절한 싸움 멈출 날이 없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 속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고,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다 나를 사로잡는 것을 봅니다." (로마서 7장 22~23절) 2019. 12. 31.
(시) 목선 / 남상학 (시) 목선(木船) 남상학 멀리서 바라보는 것은 아름다웠다 저편 바다 건너 대안(對岸)을 향하여 떠 있는 나의 목선 장난감 배를 부둣가 물길에 띄우고 환호작약하는 섬 아이같이 미지의 나라를 향하여 부푼 돛을 올린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떠밀리며 흘러가는 꿈 바람의 향방을 예견하는 불안함 길은 언제나 희미한 안개 속이다. 때로 풍랑의 바다를 표류하며 마음의 방주는 잠길 듯 잠길 듯 많은 날 눈물로 출렁거리며 나침판도 해도(海圖)도 잃어버리고 잿빛 일몰의 아름다운 피곤이 수면 위에 잘길 때 떠 가는 구름의 형상 따라 문득 미지의 섬으로 가는 길이 보일듯 말듯 흐르는 물결에 흔들리는 나의 꿈, 나의 소망 섬과 섬 사이 파도에 누워 영원히 출렁이는 목선이여! 2019. 12. 31.
(시) 연날리기 / 남상학 (시) 연날리기 남상학 민들레꽃 하얗게 머리 푸는 푸른 언덕 너머 방패연이 힘있게 솟는다 흐르며 솟구치며 영원한 나라로 띄우는 내 불치의 그리움은 은하계 어드메쯤 닻을 내릴까 세찬 바람 몰아칠 때마다 끊일 듯 이어질 듯 모아 쥔 손끝에서 흐느끼는 유일 통신 (唯一通信) 가느다란 목숨 버릴 수 없어 숙명의 외줄을 거머쥐고 팽팽한 줄을 튕기며 먼 하늘을 향하여 귀를 기울인다 흔들리는 외로움 하얀 손수건을 흔들어 보이듯 가뭇없이 사라져 가는 애타는 순간에도 언젠가 내가 다다라야 할 곳 미지의 세계로 부푸는 소망을 실어 나의 마지막 사랑을 타전한다. 2019. 12. 31.
(시) 동행1 / 남상학 (시) 동행 1 남상학 풀더미 속에 숨어 핀 예쁜 풀꽃 하나 가슴에 피어 앉고 서는 곳 어디서나 먼발치 지켜보는 눈길이 되네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손에 잡히지는 않아도 철없는 젊은 날 허둥거리는 나에게 내일을 기약하는 별빛이 되고 해 지는 저문 날 터벅터벅 혼자 걷는 밤길에도 흔들리지 않게 어둠 속 두렵지 않게 앞길 밝히는 한 줌 넉넉한 하얀 달빛이 되네. 2019. 12. 31.
(시) 해바라기 / 남상학 (시) 해바라기 남상학 피 흘리는 영토에 주체할 수 없는 그리움이 빈혈로 도지는 걸까 들끓는 정열을 수혈하고서야 피어나는 생명의 꽃 넓은 가슴 한복판에 하늘의 꿈 키우는 소망 하나로 숱한 사랑의 씨앗 품고 키 재기 하는 숙명의 아들 쾌청한 날 당신 우러르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산다. 2019. 12. 31.
(시) 달맞이꽃 / 남상학 (시) 달맞이꽃 남상학 대낮이 부끄러워 고개 숙인 얼굴 왈칵 차오르는 눈물 남몰래 참았다가 그대 향한 사랑 저녁노을로 타오를 때 노랗게 터지는 그리움이야 전신으로 달빛 휘감고 밤새워 몸살 앓는 영혼의 꽃 2019. 12. 31.
(시) 나의 기도, 나의 노래 / 남상학 (시) 나의 기도, 나의 노래 남상학 보랏빛 여명에 앉아 꿈에 젖은 눈으로 아침을 여는 슬기를 주십시오 해맑은 눈을 뜨고 경건하게 그리움 하나로 살아가게 하십시오. 시든 나무 위로 붉게 물들이는 들녘 부서지는 햇살 같은 눈부신 언어로 마음 깊이 사려 둔 올곧은 사연을 풀어 싱싱한 기도의 시를 쓰게 하십시오. 나의 모든 손짓은 칠흑 같은 고뇌의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생명의 나무 그 나무에 매달린 햇과일 같은 싱그러움을 온 누리에 흩는 바람이게 하십시오. 그리고 이 세상 마지막 시간에는 우뚝 솟은 산허리에 안개 잠기듯 꿈으로 사랑으로 채색한 저녁 하늘에 무구한 신앙을 받쳐 들고 고운 노을로 잠기게 하십시오. 2019. 12. 31.
(시) 그대와의 거리 / 남상학 (시) 그대와의 거리 남상학 어제는 더 넓은 보폭으로 너를 따라가다가 잠이 깼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눈물로 따라갔지만 나의 발길은 마냥 그 자리 텅 빈 벌판에 홀로 서고 말았다 온몸으로 파고드는 섬뜩한 한기 (寒氣) 넘어지고 깨어진 무릎의 혈흔이 어수선한 악몽의 기억 속에 얼룩지고 가슴에 우수수 낙엽이 지고 있다 쫓고 쫓기며 거듭되는 숨바꼭질은 어디쯤에서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저만치 거리에서 속절없이 애태우는 당신 너를 향한 사랑은 수십 년을 살아도 이대로 슬픔뿐인데 아아, 꿈속에서도 부둥켜안고 불러보는 이름 너와의 거리는 좀처럼 좁힐 수가 없다. 2019. 12. 31.
(시) 그리움 / 남상학 (시) 그리움 남상학 우리는 그리움의 바닷가에서 너는 발 빠르게 달려오는 밀물로 나는 발 빠르게 달려가는 썰물로 서로 뜨겁게 만난다 한 번은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젖은 눈물로 만나고 한 번은 육지와 맞닿은 곳에서 만월(滿月)의 가슴으로 만난다 하늘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육지가 되고 우리는 비로소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밀물과 썰물이 서로 만나듯 너와 나는 그리움의 바닷가에서 뜨거운 입맞춤으로 다시 만난다. 2019. 12. 31.
(시) 사랑의 등불 켜들고 / 남상학 사랑의 등불 켜 들고 남상학 친구여, 격정으로 타오르던 불빛이 어두운 바다에 잠들고 잠들면서 불빛이 긴 여운을 남기는 걸 보았는가 지금은 지상의 그 어떤 꽃도 어둠 속에 자기의 살을 감추고 온종일 날개 퍼덕이던 물새도 보금자리 찾아 날아드는데 친구여, 맨발로 달려온 하루를 여기 해둥지에 내려놓고 사라져 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스한 눈빛 반짝여 마주 볼 시간이네 지나간 그리운 날들 그리운 이름들 보석처럼 갈고 닦아 걸어놓고 노을 지는 아름다움처럼 눈시울에 적시면서 친구여, 비록 우리네 삶이 흔들리고 흔들리는 절망이라 해도 한 빛 사랑의 등불 켜 들고 서로를 위로하며 껴안으며 희망을 또 밝혀야 하네 2019. 12. 31.
(시) 부활의 그리스도 / 남상학 부활의 그리스도 -남상학 빛으로 오신 이는 캄캄한 무덤 속에서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더니라 마르지 않는 눈물 마지막 연민을 담으신 고운 눈매에 촉촉히 한 줄기 여명(黎明)이 비추이더니 곤히 주무시던 어둠의 머리맡에 시름의 세마포(細麻布) 훌훌 벗고 눈부신 광채로 일어나셨느니라 사르어 봉헌(奉獻)하는 한 목숨 불꽃으로 단숨에 무덤 문 열어 젖히고 해골 골짜기 어둠의 계곡에 우뚝 서신 부활(復活)의 그리스도!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는 어둠이 어둠으로 끝나지 않는 빛 둘레에 다시 솟는 태양(太陽) 눈부신 빛을 뿌리며 오시는 이를 보라. 천하(天下)보다 귀한 목숨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고 죽지 않고는 영원히 살 수 없는 오직 한 길, 생명(生命)의 길, 사랑의 산 불꽃이여 피 흘리는 아픔 속에 피어난한 .. 2018. 3. 31.
(시) 자화상 / 남상학 자화상 - 남상학 하늘 우러러 물빛 눈매를 닮은 학(鶴)이 운다. 아득한 간구(懇求)만이 표적 위에 나부끼기엔 이제 힘이 겨워 목을 흔들어 학이 운다. 다가갈수록 초조해지고 우러러 볼수록 달아나는 얼굴 빈 공간(空間)을 휩싸고 도는 바람 소리에 아픈 울음을 삼키다가도 태어날 때 이미 배운 습성(習性) 때문에 행여나 기다림에 가슴 조이며 하늘에 목을 올려 오늘도 학이 운다. 2018. 3. 31.
(시) 우리에게 당신은 / 남상학 우리에게 당신은 남상학 당신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눈이다 당신의 기침 소리는 새벽을 깨우는 찬란한 햇살이다 당신의 얼굴은 하늘 향해 발돋음하는 대낮의 해바라기다 당신의 웃음은 옹달샘 물가에 흐르는 샘물 줄기다 당신의 기도는 이 세상 저녁 시간에 피어나는 향기이다 당신의 침묵(沈默)은 수면 위에 번지는 달빛 여운(餘韻)이다 그리고 당신의 부재(不在)는 어느 날 구름 위에서 순금(純金)의 꽃가루로 빛날 우리들 모두의 위대한 내일이다. 시집 2018. 3. 31.
(시) 나는 / 남상학 나는 - 남상학 내 어머니가 나를 낳았을 때 나는 이미 죄인이었네. 서른 세 살 당신이 십자가(十字架) 위에서 숨을 거두던 날 나는 당신과 함께 죽었네. 그 날 나의 죄는 죽고 당신이 무덤의 문(門)을 열었을 때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살았네. 내가 산 것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산 것 주여, 이 몸은 영원히 당신의 것이옵니다. -시집 2018. 3. 31.
(시) 신두리 사구 / 남상학 신두리*사구(砂丘) - 남 상 학 넘실거리는 물결이 끊임없이 달려와 바다의 잔등에 선명한 연흔을 새기는 널따란 사구(砂丘) 질탕질하는 바람은 제 멋대로 모래언덕을 만들고 부수고 또 구릉(丘陵)을 만들고 하루 밤사이 과거의 족적을 말끔히 지우는 창조의 땅 때로는 중무장한 세력으로 집중 공략하기도 하면서 광활한 땅에 무자비하게 풍진 켜켜이 새로운 흔적을 선명히 남기는 무한 시간의 끝 오늘도 신두리 사구는 잠들지 않고 쉬임 없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 태안반도 위쪽에 있는 세계 최대의 해안 사구로 '한국의 사막'으로 불리기도 한다. 2016. 12. 14.
(시) 소래포구 / 남상학 소래포구 남상학 왁자지껄 새벽을 깨우는 소리에 생기로 눈을 뜨는 땅 이내 포구의 아침 햇살은 금빛 번쩍이는 비늘을 세우고 노역(勞役)을 건져 올리는 아낙의 함지박엔 펄펄 뛰는 숭어와 각(角)을 세우고 덤벼드는 꽃게들이 저마다 향연을 베푼다 어수선한 행렬 끝나는 곳에서 사리 때 밀물처럼 몰려오는 통통배의 기관음 소리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실려 삶을 흥정하는 근육질 사내의 건장한 가슴에 흥건히 어느 덧 포구 위로 먼 바다의 넘실거리는 파도소리가 올라오고 요란한 갈매기 소리가 덤으로 올라오고 식탁 위에 벌어지는 왕성한 식욕처럼 시끌벅적한 포구는 언제나 힘찬 의욕이 솟구친다 -시집 '그리움 불꽃이 되어' 2016. 12. 12.
(시) 영흥도 / 남상학 영흥도(永興島) - 추억의 섬 - 남 상 학 대부도 선재도 지나 해무(海霧) 자욱한 다리를 가로질러 단숨에 바다를 건넜다 영흥대교 너머 오랜 세월 가슴에 짙게 밴 묵은 바다향(香)의 진두 선착장 먼지 풀풀 나는 길가 그 옛날 어릴 적 허기를 자극하던 빵 굽는 아줌마는 간데 없고 파리 날리는 좌판만 즐비하다 바람맞이 척박한 땅을 지켜온 십리포 사구(砂丘)의 서어나무처럼 너는 오랜 세월 모진 비바람을 용케도 버텨왔구나 출렁거리는 물결 벗삼아 썰물 따라가며 바지락을 캐던 의지(意志)의 땅, 내게 생존의 방식을 가르쳐준 뽀얗게 흙먼지 덮인 날들 그것이 가슴 저린 내 그리움일 줄이야 홀로 외롭게 가슴 뜯는 노래일 줄이야 단숨에 안개 걷히듯 내 어린 시절로 옷을 벗는 벌거숭이 추억의 섬 영흥도 나는 영흥도에서 어린.. 2016. 5. 13.
(시) 다시 제부도에 와서 / 남상학 다시 제부도에 와서 - 시인 공석하, 이충섭, 유화웅씨에게 남상학 파도가 웃는다 파도가 낄낄거리며 우리를 따라오며 그냥 웃고 살자고 손을 비비며 웃는다 발을 비비며 웃는다 공자가 어떻고, 장자가 어떻고 침 마르게 긴긴 사설 읊어봐도 석구네 횟집* 한 접시 횟감 정도도 안 되는 덜 익은 인생일 뿐이라고 파도가 우릴 쳐다보고 웃는다 거추장스런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살자고 파도가 속삭이며 웃는다 파도가 이끄는 대로 물결 따라 막무가내 시인 공형(孔兄)은 그냥 그렇게 개펄 헹궈낸 물에 텀벙 젖고 싶었을까 항상 어린애 티없는 웃음으로 파도 벗삼아 알몸으로 살고 싶었을까 벌거벗은 매바위 돌고 도는 갈매기처럼 하늘 훨훨 날고 싶었을까 딸 사위 사랑 찾아간 머나먼 삼천포 그 푸른 바다에 미치도록 심취했다는 이충섭 시.. 2016. 5. 13.
(시) 대천 바다 / 남상학 대천 바다 -파도여, 파도여 남상학 그대는 내게 가슴 한편으로 저며오는 전율을 아느냐고 귓속말로 물었지요 영원히 가슴에 묻고 살아갈 줄 알았는데 세월의 물굽이 넘고 또 넘어 가슴 열어 그 사랑 보여줄 수 있다는 감격으로 수천 수만 굽이 넘실거리는 몸짓으로 그대는 전신을 떨었지요 마음은 항상 바다를 거닐고 파도 소리 그리워 소라껍질 귀에 대고 있는 그대 그대 들뜬 몸은 지금도 출렁이는 파도와 뒹굴며 사랑을 한창 부화중인가요? 2016. 5. 13.
(시) 안개꽃 / 남상학 안개꽃 남 상 학 미리내 별밭 아스라이 무량한 그리움에 앓다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잔잔한 숨 고르다가 밤새 소곤대던 수많은 이야기 한꺼번에 쏟아놓는 이 아침 순백(純白)의 가슴으로 와락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가 그 옛날 안개 차오르던 물골 안 이른 새벽 사뿐히 찾아와서 앓던 속내 감추지 못한 채 내 가슴에 아낌없이 포말(泡沫)처럼 부서지던 여인 이슬 맺힌 눈썹에 화사한 햇살 내려앉을 무렵이면 아이 좋아라 뜨거운 가슴에 불길 타올라 자취 없이 스러지겠네 시집 「그리움 불꽃이 되어」 2016. 5. 12.
(시) 발자국 / 남상학 발자국 -만리포에서 남상학 겨울 만리포 모래밭을 혼자 걸었다 길게 찍힌 연인들의 발자국이 밀려오는 파도에 자취 없이 지워진다 모든 것 쓸려간 자리에 추억들만 남아 희희낙락한다 세월이 얼마간 흘러간 뒤에는 모래 위의 발자국처럼 추억도 그렇게 지워지리라 세월마저 그렇게 잊혀지리라. 2016. 5. 12.
(시) 가벼워지는 연습 / 남상학 가벼워지는 연습 남상학 아침저녁으로 짐을 정리하면서 버리는 연습을 한다 낡은 옷가지와 신발 사진과 때묻은 수첩까지 한 가지씩 버리면서 가벼워지는 연습을 한다 가벼워지면서 나는 깨닫는다 더 가지고 싶어 허둥대던 지난 일들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허둥대면서 상처로 남긴 삶의 자국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버림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지금 마지막 허망함과 부끄러움마저도 버리고, 또 버리면서 홀가분한 몸으로 구겨진 나의 일상(日常)을 다림질한다 그리고 먼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직 가벼운 영혼(靈魂) 하나 소중히 챙긴다. 2016. 5. 12.
(시) 새해의 기도 / 남상학 새해의 기도 - 남상학 언제나 우리들의 시간은 당신이 주시는 햇빛으로 눈부십니다. 빛은 영원(永遠) 안에 있고 그 빛 속에 소중한 생명은 사계(四季)를 거듭하며 성장합니다. 어느 하루도 따스한 사랑 끊인 적 없었지만 처음인 듯 새롭게 가슴 가득 안아 보는 은혜로운 햇살 새해 아침 떠오르는 아침 해가 불덩이 같은 사랑을 쏟아 냅니다 투명한 빛살 속에 퍼지는 자애로운 어루만짐 당신의 손길 말씀의 씨앗이 떨어져 죽지 않는 생명이 되듯이 눈부시어 눈뜰 수 없는 나 소담스런 꽃을 피우며 달아 오르는 마음으로 옷깃 여미며 살아가겠습니다. 삼백 예순 다섯 날 영혼의 충일(充溢)을 염원하며 생명의 텃밭을 일구는 성실한 농부이게 하십시오. 그래서 당신 안의 매일매일이 풋풋한 청(靑)과일로 익어 당신 제단(祭壇)에 바치는.. 2014. 1. 9.
(시) 꽃재 / 남상학 꽃재 - 남상학 동대문 밖 왕십리 홍익동 언덕은 갖가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예부터 ‘꽃재’라 불렀다. 가시떨기 우거진 돌밭 눈물로 일궈 예쁜 꽃씨 뿌린 머나먼 세월 당신 사모하는 애절한 마음이 봄 뜨락에 하이얀 목련으로 피기도 하고 여름날 햇볕에선 해바라기로 피기도 하고 추운 날 빨간 동백 송이로 벌기도 하고 저마다 아름다움을 다투어 피는 꽃숲에 우리는 날마다 신나는 나비와 꿀벌 되어 홍익동(弘益洞)* 이름 그대로 하늘과 땅, 사람을 두루 아우르며 조화롭게 살았다. 새벽에는 푸른 종소리에 어둠의 날개 털고 맑은 이슬 머금어 미역을 감았지. 낮에는 훨훨 날아 단꿀을 여기저기 나누어 주다가 진액(津液)에 취하여 낮잠을 자고 깊은 밤엔 임 그리워 편지를 쓰다가 긴 밤 단꿈에 들기도 했지. 얼마나 아름다운가.. 2013. 1. 4.
(시) 졸업(卒業) / 남상학 졸업(卒業) - 남상학 눈이 내린 교정(校庭)을 가로 질러 너를 보낸다. 기적을 울리며 장정(長征)에 오르는 무한의 흐름 시간의 강물에 손을 씻으며 물 흐르듯 너는 가고 나는 홀로 플랫폼에 남는다. 네가 떠나고 난 자리 세월의 생채기가 무성하고 새삼스러이 아픈 나의 지난 무지(無知)와 무관심이 잿빛 하늘에 펄럭인다. 더 머물 수 없는 시간 네가 은하계(銀河界) 눈부신 언덕 위로 새롭게 출발할 때 나는 말과 음악이 실종된 빈 교실에서 보옥(寶玉)처럼 네가 떨어뜨린 미소를 줍는다. 졸업의 계절이다. 35년간 나는 제자들을 품안에서 떠나보내면서 깊은 상념에 젖곤 했다. 그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휩싸는 감정은 기쁨도 설움도 아니고, 최선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멍한 기분이 되었고, 제자들이 홀연히 떠나는.. 2011. 2. 10.
(시) 겨울나무 / 남상학 겨울나무 - 남상학 모든 것 다 버리고 난 겨울나무는 아름답습니다. 애두름에 홀로 서있는 나무 그 우듬지에 잠시 머물던 바람에 마지막 잎새를 실어보내고 애지중지 옆구리에 끼고 살던 연줄마저 놓아버린 그 모습이 오히려 당당합니다. 악몽으로 시달린 지난 날 생의 끈적한 수분을 토해내고 마안한 하늘을 바라보며 그 빈자리에 투명으로 채워 가는 헐벗은 겨울나무는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답습니다.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넉넉해지는 비밀을 이젠 나도 좀 알 것 같습니다. 애두름 : 낮은 언덕 우듬지 : 나무의 맨 꼭대기 줄기 마안한 : 끝이 없이 아득하게 먼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9.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