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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307

(시) 돌 / 남상학 돌 돌이어라. 나는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가에 앉아 먼 수평을 향하여 영원을 꿈꾸는 외로운 돌이어라. 밤마다 홀로 눈을 뜨고 어린 별 눈을 가슴에 품었다가 새벽의 하얀 모래밭에 빛나는 기도의 말들을 쏟아내고 새벽이면 이슬 젖은 영혼 푸른 파도에 헹궈 썰물로 달아나는 하늘에 높다랗게 걸어 놓고 천 년 비밀의 바다 이야기를 읊조리며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한 개 돌이어라. 2 돌이어라. 나는 하늘을 향하여 열린 동공(瞳孔) 가득히 우주 속에 감춘 밀어를 출렁이다 더 출렁일 수 없는 최후의 울음 안고 일체(一切)를 안으로 삼킨 응어리진 마음 물소리에 감격하고 물소리에 울어보고 온몸을 뒤척이는 숙명의 바닷가 파도 따라 밀리는 물결에 환한 내일을 발돋움하다가 어느 날 태고의 침묵을 깨고 문득 아무도 몰래 눈이 뜨이는.. 2020. 1. 11.
(시) 바다를 향해 사는 사람들 / 남상학 (출처 : musim8319의 블로그 ) 바다를 향해 사는 사람들 남상학 바다로 나가는 어귀에는 어디서나 집들이 불을 켜고 푸른 생명을 키우고 있다. 갓 건져낸 미역 냄새 같은 풋풋한 가슴을 출렁이는 파도에 씻으며 언젠가는 떠나야 할 여정(旅程)이라 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없이 펼쳐진 시야에 한 점 티 없는 노래의 배를 띄우고 더 깊고 부드러운 품에 안겨 바람을 잠재우며 오직 서로 사랑하는 일뿐 별이 내리는 밤에는 포근한 꿈속에서 울어도 젖지 않는 무한의 바다에 사색의 닻을 내린다. 온 세상에 불이 꺼져 캄캄할 때도 별들은 불꽃이 되어 물결 위에 부서지고 부르는 소리 있어 달려 나가는 그리운 날이면 푸른 수평선 너머로 한가로이 바닷새를 날린다. 기다리며 사는 한평생 마음은 때로 썰물이 되고 혹은 때로.. 2020. 1. 11.
(시) 마지막 지상에서 / 남상학 마지막 지상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 그대 꿈꾸는 동안 주여, 충만한 바다를 숨을 쉬게 하소서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배가 없듯이 깨어 숨 쉬는 바다 위에 주여, 한 척의 배를 띄우게 하소서 큰 바다에 태풍이 일지라도 시작과 끝의 평행에 머무는 짙은 안개 저 너머 잔잔한 포구에 닿을 때까지 주여, 힘찬 파도로 출렁이게 하소서 지상에서 멀어질수록 시간은 드디어 영원에 이르고 바라다보이는 아득한 곳 그대 꿈꾸는 동안 오직 한 길, 생명의 길로 주여, 소망의 노를 젓게 하소서 이윽고 우렁찬 북소리 울리고 황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영원의 문을 들어서면 거기 내 배의 닻을 내리고 지상의 시간이 끝날 때 주여, 저 넓은 은혜의 바다 위에서 두 팔 벌려 찬란한 빛을 가슴 가득 안아 보게 하소서 그리.. 2020. 1. 11.
(시) 그때 당신은 / 남상학 그때 당신은 남상학 내가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의 노을에 취한 철부지 아이였을 때 당신은 수평선 넘어 출렁이는 파도를 거느리고 한 척의 하얀 돛단배로 오셨지요. 푸른 문을 열고 시원(始原)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느닷없이 찾아온 이방인 내가 그리움에 겨워 목 늘인 바닷새로 저무는 노을 속을 날고 있을 때 크고 작은 섬들을 거느리고 온몸으로 하프를 켜며 내게 시편을 나직이 읽어주셨지요. 그날로부터 당신은 내 속에 깊숙이 들어와 바다를 베고 누워 잠들 때까지 자장가를 불러주셨지요. 2020. 1. 11.
(시) 겨울밤 / 남상학 겨울밤 어둠이 내게로 와서 헐벗은 몸을 감싸더니 기어이 마른 살과 뼛속을 파고들어 혈관을 녹슬게 한다. 가장 날카로운 칼로 깎고 또 깎아 이제는 날 선 무기가 되어 마지막 양심을 시험한다. 작은 불빛 하나 없이 혼자 가는 들길엔 검은 그림자뿐 내 영혼의 씀바귀 메마른 잎에 바람이 스친다. 눈을 뜨고 있어도 마비된 몸은 일어서지도 한 발짝 나아가지도 못하는 엉겅퀴 거친 땅에 떨어진 운석(隕石) 한 조각 몇천 소절의 떨리는 노래로도 몇만 마디의 울음 섞인 기도로도 열리잖는 하늘 내 영혼은 천 길 낭떠러지 끝에 한 그루 나무로 서 있거니 채찍처럼 아픈 울음을 남기며 빈 가지에 새 한 마리 날아와 묵은 어둠을 털고 새벽잠을 깨우는 그날은 언제일까? 진실은 가쁜 숨결 속에서 싹이 트는 것 불씨는 수북한 잿더미 속.. 2020. 1. 11.
(시) 겨울비 / 남상학 겨울비 남상학 까마귀 표연히 울고 떠난 쓸쓸한 벌판 위로 겨울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엉겅퀴 어우러진 자갈밭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상처들 대지는 벌거숭이다. 앙상한 숲 사이로 붉은 핏자국이 어룽거린다. 사나운 발톱에 할퀸 채로 생살이 찢겨 말없이 엎드린 바위처럼 흐느끼는 빗줄기에 등걸이 돌아눕고 물안개 자욱한 땅을 미행하듯 겨울비가 내린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참고 살아야 하나 지척거리며 흐르는 겨울 강가에서 내가 두려워 떠는 것은 뼈를 저리게 하는 삭풍(朔風)이다 쩌렁쩌렁 울리는 얼음장이다 부르면 목이 감기는 어지러운 세상 아, 등걸처럼 엎디어 사는 목숨인데 안으로 뜨겁게 달구는 마지막 구원의 절규 같은 소리 없는 침묵이여 언 강이 풀리고 따스한 바람 부는 날에는 깊은 상처들이 아물고 흐르는 강물 위로 .. 2020. 1. 10.
(시) 눈이 내리네 / 남상학 눈이 내리네 눈이 오네 멀리, 하늘 꼭대기에서 천사의 옷깃인 양 눈이 내리네 빈 들판 잡목(雜木) 사이 너울너울 춤추며 눈이 오네. 목마른 긴 밤과 미명의 새벽길 걸으며 당신의 손안에 피는 한 송이 꽃이고자 다함 없는 노래와 이루 말 못 한 그리움 안고 이제껏 간망(懇望)의 눈으로 살아왔거니 이 밤 얼굴을 적시는 맑은 눈물 애태우는 영혼을 위무하듯 은총(恩寵)의 나래를 펴고 하늘 우러러 키 재기하는 나무 위로 순수의 얼음꽃 되어 눈이 오네 아침 이슬보다 영롱한 빛, 지상을 밝히는 복음(福音)이듯 살아서 반짝이는 눈이 내리네. 2020. 1. 10.
(시) 잎이 떠난 자리 / 남상학 잎이 떠난 자리 남상학 잎이 떠난 자리 늦가을 노을이 내린다.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와 머무는 아늑한 침잠(沈潛) 한여름의 흥분이 연기로 사라지고 분명하게 더욱 분명하게 생명의 근원으로 다가서면서 점점 눈이 뜨이고 영혼이 맑아 온다. 어떤 언어로도 꾸밀 수 없는 영혼의 노래가 끝없는 깊이, 그 심연에서 솟아오르고 깨어남에 의해 피어나는 천년의 고요, 그 무변 광대한 침묵 속에 살아 있음의 진수를 비로소 만끽한다. 늦가을 노을이 내려 앉은 잎이 떠난 자리 재스민보다 감미로운 향기가 남는다. 2020. 1. 10.
(시) 가을 여행 / 남상학 가을 여행 미련 없이 땅에 떨어져 구르는 낙엽처럼 살랑거리는 바람에 곱게 빗질하는 갈대처럼 단아한 모습으로 먼 길을 혼자 떠날 수 있다는 건 보석보다 더 빛나는 축복이다. 욕망의 옷자락은 푸른 하늘에 걸어 놓고 때 묻은 시름은 뜨락에 놓아두고 싱그런 바람 앞세워 빈손으로 떠나는 가을 여행 침묵의 깊은 산 속이라도 좋다 미지의 바다 끝이라도 좋다 순백(純白)의 치아를 닦듯 정갈한 이미지로 마음속 언어를 곱게 씻을 수만 있다면 태고(太古)의 속삭임, 영원의 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면 세찬 비바람, 일렁이는 파도가 입 벌리고 달려들지라도 가을엔 낙엽과 함께 빈 마음으로 먼 길을 떠나고 싶다. 2020. 1. 10.
(시) 가을은 낮은 음정으로 / 남상학 (시) 가을은 낮은 음정으로 - 남상학 가을바람은 방랑이네 낮은 음정(音程)으로 속삭이는 자연의 모음(母音) 풀벌레 소리 앞세우고 어느덧 산을 넘네. 구름 내려앉은 갈대밭 사이 휴식의 차 한 잔 들고 회한의 가슴 풀어 가벼운 차림으로 떠나는 외출 참새 날아간 햇빛 투명한 벌판 어디에 사유(思惟)의 닻을 내릴까 내 꿈이 실린 풍선은 저만치 연처럼 날아가고 두메산골 고향길 홀로 핀 코스모스의 미소 그 들길을 가로질러 가을바람은 제 가슴 쓸며 오네. 2020. 1. 10.
(시) 가을 풍경 / 남상학 가을 풍경 나직한 산 아래 초가집이 형제처럼 옹기종기 단잠에서 깨어난 듯 서로 얼굴 비비고 정답게 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새들의 지저귐에 아침 햇살이 눈을 뜨고 그 눈짓과 손짓의 약속으로 나뭇가지에 날아와 앉아 나누는 정겨운 대화(對話) 굴뚝 위로 뽀얀 연기 오르면 그 위로 고르게 쏟아지는 은총의 금빛 햇살 지붕마다 빨간 고추가 낮잠을 즐기며 뽐내고 있다. 높고 푸른 하늘 그 너머 빛 고운 감이 익고 주렁주렁 평화가 열리는 마을에 형제처럼 집들이 모여 산다. 2020. 1. 9.
(시) 가을날 / 남상학 가을날 - 남상학 당신은 가을 한복판에 들꽃을 무수히 뿌려 놓고 황금의 깃발을 흔들며 성숙의 기쁨을 즐기고 계십니다. 들판 가득한 낟가리 위로 힘차게 솟는 참새 떼가 허수아비의 머리 위에서 고운 음색(音色)으로 휘파람을 불고 교회당 골목에 핀 나팔꽃 한 송이 하늘 우러러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우렁찬 찬양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러러볼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하늘 빈 가슴 가득히 그리움이 영그는 늦가을 오후 햇빛 쏟아지는 정원에 주렁주렁 열린 햇과일처럼 가을 들판에서 당신과 함께 푸짐한 만찬을 즐기고 싶습니다. 2020. 1. 9.
(시) 별을 보며 / 남상학 별을 보며 옛날 팔레스타인 빈 들 별을 헤아리는 목자(牧者)처럼 풀밭에 누워 별을 세는 하늘 언저리 초롱초롱한 눈을 반짝이며 별들이 어깨에 살포시 내려와 앉아 나직한 목소리로 나를 흔들어 깨운다. 하나의 별은 사랑을 하나의 별은 소망을 하나의 별은 믿음을 또 하나의 별은 지혜를 그 나머지의 별들은 저마다 또 다른 꿈의 조각들을 지상(地上)의 구석구석에 보석처럼 쌓는다. 들판 가득 꽃씨를 뿌리듯 소중한 씨앗으로 내 가슴에 와 박히는 환한 빛살들 지상의 별자리에 하늘이 고이 내려와 앉아 그대와 함께 꿈꾸는 동안 나는 오늘 전혀 가난하지 않다. 아름답게 빛나는 별을 보며 밤이 깊어갈수록 초롱초롱 잠에서 깨어나는 영혼의 축복 천체를 만드신 이 그는 어디서나 꿈을 가꾸는 농부(農夫)시다. 2020. 1. 9.
(시) 우리들의 사월(四月) / 남상학 우리들의 사월 - 남상학 사월은 엘리엇의 시를 외우며 어린 풀잎들이 입 맞추는 들길을 흥얼거리며 건너오고 밀알 하나이 썩어 다시 사는 기적을 보여주는 언덕 넘어 반가이 손짓하며 오나이다. 가시덤불 무덤가 피 흘린 자리에선 진달래꽃 불타오르고 땅속 뿌리에서 솟구쳐 오른 사랑이 물오른 가지 끝에서 생명의 힘으로 영혼의 시와 합창이 되어 터지나이다 새로운 옷을 입고 사랑의 당신을 맞이하는사랑의 길목, 우리를 아프게 하는 기억들 우리를 갈라놓은 그 사상의 여울들 우리를 슬프게 만든 모진 싸움의 골짜기를 지나 낡은 영혼 위에 뉘우침의 눈물 뿌리며 갈라졌던 원수와 형제들이 이방과 선민들이 비로소 하나이 되나이다. 사월은 고난의 땅, 피 흘린 대지에도 새마음을 갈아입고 우리를 다시 피어나게 하나이다. 시들어 사라져도.. 2020. 1. 9.
(시) 봄은 시린 아픔에서 / 남상학 봄은 시린 아픔에서 봄은 시린 아픔에서 눈 뜬다. 잔설(殘雪)을 헤집는 바람에 껍질 벗는 소리 마른 살 터지는 아픔으로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흥얼거리며 건너오는 세월의 강물 그 강가에 얼굴을 간질이며 잠든 의식은 살아나고 움츠렸던 육신이 기지개 켜며 새삼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사춘기 나이에 솟는 사랑니처럼 언 땅을 헤집고 솟아나는 복수초 그 경이롭게 태어나는 생명 앞에서 진통의 긴 시간을 버티고 태어난 해산의 기쁨을 알겠구나! 노랗게 터지는 생기(生氣) 귀로 눈으로 집중되는 함성은 누구의 은혜인가? 물오른 나무의 흔들림으로 봄은 실의(失意)를 딛고 소생한다. 2020. 1. 9.
(시) 창으로 향한 연가 / 남상학 창(窓)으로 향한 연가 - 남상학 푸른 창가에서 맴돌다 사라지는 새여 달빛만큼 시린 사랑을 안고 어디쯤 밝아오는 아침의 종소리를 듣는가? 찢긴 부리로 꽃잎을 쪼으며 미학(美學)의 물결 위에 자유를 갈구하는 소망으로 바랜 나의 세월 밤을 대안(對岸)하여 차고 슬픈 비정(悲情)을 이야기해도 미소로 접은 약속을 놓고 회한과 눈물의 편지를 쓴다. 시방 어둠의 통로를 지나 기진한 나래로 돌아오는 새여 저만큼 세계의 창을 밝히는 흐뭇한 안부를 안고 오라 점화의 불씨를 물고 오라. 2020. 1. 9.
(시) 산정에서 / 남상학 산정(山頂)에서 심장에서 울리는 고동 소리가 우뚝 선 발끝에서 멎고 가슴 속 깊이 감춰 둔 환성이 일시에 터져 나온다. 멀리 회색의 지평으로부터 달리고 쓰러지고 다시 헐떡이며 오른 뜨거운 염원이 깃발 되어 펄럭이고 깃발은 다시 하늘에서 폭죽으로 터진다. 문득 눈이 멀고 귀 막히는 함성 바위틈에 꼭꼭 숨었던 언어들은 출렁이는 가슴 속에서 힘찬 노래가 되어 계곡으로 흐른다. 그리고 노래는 산모퉁이 안개를 걷어내고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빛을 뿌리며 온갖 꽃들을 피워내고 숲속에 초롱초롱한 생명을 키워낸다. 먼 데 산들이 기지개 켜는 소리 이 산정에 둥지 틀고 아, 오늘 눈부신 날개로 소망의 꿈이 살아 숨 쉬는 하늘 높이 날자꾸나. 2020. 1. 9.
(시) 당신을 만나는 날 / 남상학 당신을 만나는 날 - 남상학 당신을 만나는 날은 소풍날 유치원 아이처럼 하얀 목화밭에서 단잠을 깬다. 며칠 밤을 새우던 열병도 뭉게구름 걷히듯 어둠이 머뭇거리는 앞산을 넘어 살며시 숨어버린다. ‘여보세요―’ 아침 뜨락에 부서지는 햇살같이 금빛으로 번쩍이는 통화 낭랑한 음성은 투명한 이슬이 구르듯 덜덜 떨리는 소리로 가슴에 뚝뚝 떨어진다. ‘네! 오신다고요?’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풍선 위로 한 무리의 참새 떼가 합창하며 날아오르고 길가의 꽃은 새의 반짝이는 깃털을 향해 두 손 들고 흰 손수건을 흔든다. 저 하늘, 넘실거리며 춤추는 자유 그리고 충만한 감격을 보라 당신과 만나는 날은 나는 당신이 걸어오는 길목에서 바람 소리에도 귀가 뜨이는 한 그루 미루나무가 된다. 2020. 1. 9.
(시) 기어이 내게로 / 남상학 기어이 내게로 언제나 뒷짐을 지고 침묵하는 당신이 오늘은 뚜벅뚜벅 걸어오십니다.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하는 나무들은 새벽바람을 깨우며 일어서고 싱그런 바람은 꽃 한 송이 가슴에 달고 손짓하며 지나갑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 개의 작은 별빛 같은 것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긴 세월 고뇌의 울음들이 은총의 별 무리로 빛나느니 오늘은 굳게 닫은 빗장을 풀고 기어이 내게로 돌아와 눈물을 씻기시는 태산(泰山) 같은 당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황홀한 고백인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습니다. 2020. 1. 9.
(시) 촛불 앞에서 / 남상학 촛불 앞에서 - 남상학 그리운 밤이면 촛불을 켜고 열린 창을 향하여 숨죽여 조용히 눈을 뜬다.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사르고 활활 타오르는 마음으로 향(香)을 피우면 펄럭이는 촛불 사이로 눈부신 옷을 입고 두 팔 벌려 걸어오시는 그리운 사람 영원의 바다 위를 춤추는 파도처럼 달려가 당신의 넓은 가슴에 흰 빛살로 부서지고 싶어라 촛불 켜는 밤이면 새벽을 데리고 걸어오시는 이 당신을 향하여 달려간다. 2020. 1. 9.
(시) 사랑의 십자가 / 남상학 사랑의 십자가 남상학 태양이 빛을 잃은 죽음의 언저리에 피 흘리는 한 마리 양 높다란 십자가 꼭대기에 피와 물 흐를 때는 잔잔한 연민의 눈빛이더니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온몸으로 울리는 단 이 한 마디에 천지도 아득한 눈물이네 오직 목숨을 번제(燔祭) 하는 사랑으로만 이길 수 있는 순종의 쓴 잔(盞)이여 그 뜻 하나로 고개 숙이고 남은 기력 다하여 온 누리 어루만지는 크나큰 사랑이어라. 2020. 1. 9.
(시) 사랑연습 / 남상학 사랑연습 남상학 내 노래는 너무 작아 당신의 손안에 잡히지 않고 내 언어는 거칠어서 당신의 뜰에 머물지 않는다. 그냥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수십 년을 살아도 낯설어 보이는 얼굴 부르면 부를수록 까마득히 달아나는 이름 눈 감으면 보이고 눈 뜨면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잡히지 않는 것들을 눈물 고여오는 세월일지라도 단 하나뿐인 사랑을 위하여 피리 불며 시(詩)를 쓰며 오늘을 산다. 2020. 1. 9.
(시) 마니산에 올라 / 남상학 마니산에 올라 글 남상학 얇은 구름 한 자락 깔고 서해 관문을 막아선 강화도는 건강하다. 아득한 태고의 잠에서 깨어나 바람의 세월을 당신 그리며 우뚝 선 산정에 돌무더기 쌓으며 살아왔거니 눈 감으면 하얀 옷자락 눈에 어리고 역사가 숨 쉬는 골짜기마다 신명 나는 북소리가 요란하다. 파도가 높던 시절 피 멍든 상처들을 어루만지며 들꽃처럼 무성하게 피는 사랑 이야기 돌 틈에 핀 한 무더기 산나리꽃이 바람 속에 반긴다. 멀리 가까이 가물거리는 섬 둘레 자욱한 해무(海霧) 걷으며 바다는 출렁이고 지천으로 쏟아지는 햇살 아래 새롭게 깨어나는 산은 정기 더욱 푸르다. 햇빛으로 가득 메운 하늘과 땅 사이 우뚝 솟은 산, 그 정상에 올라 지척에 계실 듯한 당신을 위하여 제단을 고쳐 쌓고 무릎 꿇는 날 누가 이 언덕을 짓.. 2020. 1. 9.
(시) 그 겨울은 따뜻했네 / 남상학 그 겨울은 따뜻했네 남상학 그 겨울은 따뜻했네! 눈 내린 언덕배기만 보면 온몸으로 닦아 만드신 눈부신 빙판 썰매 끌고 오시는 산타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 같은 바람을 등 뒤로 날리면서 햇빛 혼자 놀고 있는 한적한 골목길을 신명 난 애들로 가득 메우는 낭만의 썰매 타기 어린이대공원도 서울랜드도 없던 시절 언 손끝을 입김으로 녹이며 맨살로 타고 내리는 날은 눈발 흩뿌리는 은빛 사랑이었네. 이제 오랜만에 돌아와 다시 선 벌판 누군들 알았으랴 내 집터 골목길에 추억을 깔고 누운 거대한 빌딩 사이 자동차의 행렬이 줄지어 달려 나가는 눈 녹은 땅 위엔 마른버짐뿐이로구나 추운 바람 속에 우두커니 서서 희미한 옛 친구의 안부를 물어보지만 알 수 없는 신호들이 어지럽게 눈발로 쏟아지고 꿈을 잃은 축 처진 어깨 위에 그 무.. 2020. 1. 9.
(시) 무너진 강가에서 / 남상학 무너진 강가에서 남상학 홍수가 휩쓸고 간 강가는 슬프다. 흐르는 물결 따라 일렁이며 헤살 짓는 바람결에 들꽃으로 피던 풋풋한 사랑은 어디 갔는가? 목이 부러진 나무들은 표정 없이 서서 간밤 머리를 쥐어뜯던 악몽을 지우지 못하고 무수히 할퀸 가슴을 사방에 드러낸 채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젊은 아내는 고개를 숙인 채 라일락 향기 같은 코피를 쏟으며 흐느끼고 황토색 물굽이에 겁먹은 소녀는 정신병원으로 가고 길게 늘어뜨린 하얀 목덜미 위로 슬픔의 강물이 죽음의 제방을 기웃거리며 핥고 있다. 애틋한 꿈과 사랑이 물거품 되어 씻겨 간 무너진 강가에서 넋을 잃은 어버이들이여! 오랜만에 겪는 천재라고만 말하지 말라 치마끈, 허리띠 풀린 세월 속에서 오랜 날이 지나서야 쓸쓸히 필 들꽃을 위하여.. 2020. 1. 9.
(시) 젊은 당신에게 / 남상학 젊은 당신에게 남상학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구멍 난 잎새 하나 흔들리는 저녁 낡은 벤치에 축 늘어진 어깨를 걸치고 너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 가판대 벼룩시장을 뒤적이며 신입사원 모집 안내에 눈알을 굴리다가 헤어진 사랑처럼 손바닥을 비비는 쉽게 늙어버린 계절의 끝 오히려 입영통지서를 받고서야 신바람 난 듯 어두컴컴한 카페에서 자축 파티를 연 엊저녁 몽롱한 취기에 젖어 입시도 취업도 진정한 사랑도 재수 삼수를 해야만 빛나는 것이라고 자못 핏대를 올리는 젊은 당신에게 어둠이 내리는 이 밤 차라리 지상의 모든 것을 감싸고 잠재우는 안식의 눈발을 주마 어깨에 묻은 찬 서리나 툭툭 털면서. 2020. 1. 8.
(시) 대숲 / 남상학 대숲 남상학 서로 모여 사는 대숲의 나무들은 잠 못 이루는 늦은 시간에도 손을 비비며 다만 서성거릴 뿐 결코 눕지 않는다. 아무도 잠 깨어 슬퍼하지 않는 밤 톱날 같은 바람이 우르르 여기저기 몰려다닐 때 숨소리를 죽이며 떨다가도 잠든 뿌리를 깨우며 일제히 일어서서 제 살을 깎아 창(槍)을 세운다.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위하여 시린 달빛에 번쩍이는 생명(生命)의 절규 큰바람 일어 잡목들이 눕고 가까운 이들 울며 떠나는 날에도 푸른 하늘 밝은 햇살 사람이 그리운 나무들은 등(燈) 내달아 길 밝히고 끝을 모르는 먼 길을 떠난다. 가파른 언덕을 땀 흘리며 오르는 나의 사람아, 그래도 하늘을 보자 설레는 별들 물 어린 눈을 뜨면 대숲의 나무들은 새벽안개를 걷어내고 기적을 기다리는 빛나는 눈동자로 영롱한 아침 .. 2020. 1. 8.
(시) 다람쥐 moneysavetip.tistory)  다람쥐   남상학  재빠른 다람쥐 한 마리가 한가한 시장 입구에서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씽씽 소리를 내며 쳇바퀴를 돌린다. 구경하는 사람 없는 날에도 왜 돌려야 하는지 생각할 필요조차 잊어버리고 그냥 돌리고 또 돌리는 것뿐이다.  오가는 사람이 뜸한 오후시장 사람들마저 더위 피해산과 바다로 떠난 날에는 한가한 시장 입구의 다람쥐는 구름 한 점 없는 빈 하늘만 쳐다보다가뒤늦게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이유를 알아챈 듯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푸른 숲속의 도토리만 한 기쁨을 주워다 나누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가르치면서 열 개나 되는 발톱으로 힘있게  씽씽 소리를 내며 쳇바퀴를 돌린다. 2020. 1. 8.
(시) 학 / 남상학 출처 :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   학(鶴)   남상학 초롱초롱 눈매는 살아 있다. 질펀한 진흙 속에 빠지는 때에도 푸른 하늘 속에 맑은 눈매는 살아 있다. 미처 고백하지 못한 사랑 그리워 긴 발자국 성큼성큼 걷다가도 햇살 눈부신 푸르른 날에는 흰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다가 빛살 고운 하늘 끝으로 날아오른다. 꺼윽꺼윽 가는 울음을 남기고 오랜 기다림의 세월을 침묵으로 다스린 심한 공복 더욱 경쾌해진 비상(飛翔)은 지상의 순간을 뛰어넘는 몸짓인가? 가슴에 작은 꿈을 새기고 높은 곳, 먼 곳의 모습 떠올리는 물빛 고운 눈매여, 빈 들에 바람 불고 검은 구름 솟는 날에도 초롱초롱 너의 눈매는 살아 있다. 2020. 1. 8.
(시) 교정(校庭)에서 / 남상학 교정(校庭)에서 남상학 햇살 가득한 교정 재잘거리며 밀물로 몰려오고 시간마다 단잠을 깨우는 바람에 다정한 눈빛으로 예쁜 꽃망울이 벙근다. 목멱산* 허리 개나리, 진달래, 목련 라일락 그리고 빨간 장미… 철 따라 이름을 부르면 저마다 고운 잇속 드러내는 귀여운 얼굴 네가 꽃을 피워 나에겐 사랑이 되고 기쁨이 되고 어우러지는 꽃무리 속 교정 가득히 빠알간 석류(石榴)로 터지는 너와 나의 악수(握手) * 목멱산(木覓山) : 서울 중심부에 우뚝 선 남산(南山)의 옛 이름, 필자가 남산 중턱에 있는 숭의여중·고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쓴 시 2020.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