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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307

(시) 해인사의 새벽 / 남상학 시(詩) 해인사의 새벽 남상학 푸른 숲에 머물던 어둠이 숨 고르며 먼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지나가던 바람도 곱게 빗질한 뜰에 좌정하여 옷매무새를 고치는데 텅 빈 댓돌에 뚝뚝 떨어지는 청아한 물소리, 새소리, 목탁 소리 그 소리에 섞여 간간이 묻어오는 큰스님의 염불 소리 깨어나는 풍경 속에서 지나는 길손이 발을 멈추고 합장한 자세로 빈 하늘을 바라본다. 2020. 1. 23.
(시) 산수유 꽃길 / 남상학 시(詩) 산수유 꽃길 - 산동마을에서 남상학 당신은 산수유꽃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지요. 산골 물소리 차고 거친 바람소리 살을 에워도 봄이 사립문의 빗장을 풀었나 봅니다. 산길을 돌아 아지랑이 어른거리는 들길 멍하게 바라보는 시야에 그리움이 하얀 입김으로 서립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산수유꽃이 피었다고 노란 꽃가지를 꺾어 들고 야단법석입니다. 그 속 어디선가 그리운 당신이 산수유꽃 가지 사이로 달려올 것 같습니다. 나 이대로 마을 어귀 외딴집 앞에 서서 봄이 지나가는 길목을 막고 노오란 등불 밝힌 채 미루나무처럼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2020. 1. 22.
(시) 안개꽃 / 남상학 시(詩) 안개꽃 남상학 미리내 별밭 아스라이 무량한 그리움에 앓다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잔잔한 숨 고르다가 밤새 소곤대던 수많은 이야기 한꺼번에 쏟아놓는 아침 순백(純白)의 가슴으로 와락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가! 그 옛날 안개 차오르던 물 안골 이른 새벽 사뿐히 찾아와서 앓던 속내 감추지 못한 채 내 가슴에 아낌없이 포말(泡沫)처럼 부서지던 여인 이슬 맺힌 눈썹에 화사한 햇살 내려앉으면 아이 좋아라! 뜨거운 가슴에 불길 타올라 자취 없이 스러지겠네. 2020. 1. 22.
(시) 유채꽃 / 남상학 시(詩) 유채꽃 남상학 무엇이 저토록 인생을 환호하게 하는가? 겨우내 현무암 가슴 같은 몸살을 앓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서게 하는 힘 아스라이 먼 하늘 향해 기도로 쏘아 올린 간절한 염원이 익어 자비로운 큰 손길로 지상에 차려낸 잔칫상인가? 가슴 속 불씨로 온몸을 담금질하다가 노오란 심지에 일제히 불을 켜듯 속삭이는 봄바람에 화답하는 저 무한생명의 손짓 내 마음 이처럼 들뜨게 하는 저 힘은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 2020. 1. 22.
(시) 섬진강의 봄 / 남상학 시(詩) 섬진강의 봄 남상학 꽃소식 따라 남도 길에 오르니 아프도록 눈이 부시네 미소로 벙그는 매화꽃 가지 하얀 눈발 위로 길은 또 몇천 리인지 그리워서 살포시 눈 감으면 일백 리 꽃 터널 사이로 방긋이 미소 머금고 걸어오는 봄 처녀의 콧노랫 소리. 산자락 질펀하게 꺾이는 판소리 한자락 반가움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뜨면 저 멀리 푸른 보리밭 너머 몸 풀고 누운 섬진강이 보이네 2020. 1. 22.
(시) 복수초 / 남상학 시(詩) 복수초* 남상학 차가운 바위 틈새로 인동(忍冬)의 얼굴 내민 노란 꿈 하나 세상을 향해 방긋 웃습니다 칼끝 스친 겨울바람 차가운 얼음 조각 박힌 자리 그리움에 애태우던 넋이 아픈 사연 감추고 내지르는 탄성입니다. 눈가에 어리는 찬연한 눈물일랑 상큼한 바람에 씻어 말리고 조심스레 기웃거리며 불안한 이마로 말갛게 여는 세상 '정말 봄이 맞지요?'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불러내어 황금빛 술잔 치켜들고 기쁨의 축배(祝杯)를 듭니다. 산그늘에도 어김없이 찬란한 봄이 온다고 말하면서 *2월 초 산그늘에 피는 다년초. 얼음 속에서 피기 때문에 눈꽃, 빙랑화(氷郞花). 황금색 술잔 모양을 하고 있다 하여 금잔화(金盞花)라고도 한다. 2020. 1. 22.
(시) 삼월 / 남상학 시(詩) 삼월 - 남상학 삼월의 아침은 온갖 시름 털고 마른 나뭇가지를 흔드는 하이얀 까치 소리로 오시는가 그 누구보다 일찍 잠 깨어 수정같이 맑은 유리창 넘어 상큼한 치약 냄새 풍기는 한 줄기 바람으로 오시는가 낮은 음성으로 그립다, 그립다, 그립다 고백하는 하얀 입김 서린 엽서 한 장으로 소리 없이 오시는가 설레임으로 눈부심으로 그렇게 오시는가 2020. 1. 22.
(시) 그리움 불꽃이 되어 / 남상학 시(詩) 그리움 불꽃이 되어 남상학 모든 것 다 털어 버려도 또다시 남은 삶이 있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길이 시작되듯이 바다가 끝나는 수평선에 다시 피어오르는 것들 맑고 청명한 바람 타고 끝없이 출렁이는 파도 타고 바닷가 소년의 가슴처럼 구름은 더 높이 부풀어 오르네! 유리 저편 풍경들 뒤로 어른거리는 시간의 무늬 그리움은 여전히 내 존재의 몸짓 의식의 바다 빈터에서 울리는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 아직 살아 꿈꾸는 동안 그리움은 내 생명의 불꽃이 되어 발자국마다 따라와 출렁거리는 물결처럼 내 영혼의 깊은 바다 위에 활활 불 지피며 타오르네. 2020. 1. 22.
(시) 겨울 긴 잠 속으로 / 남상학 시(詩) 겨울 긴 잠 속으로 - 미시령을 넘으며 남상학 나는 가리라 겨울 긴 잠 속으로 가리라 눈 덮인 산허리의 달빛 푸른빛으로 흘러내릴 때 멀리 보이는 항구의 불빛이 어둠에 잠기누나 늘 아슬아슬한 세상 지상의 거만한 삶이 버텨 선 계곡 가파른 길 숨 가쁘게 올라온 내 고달픈 여정의 끝 작은 등불 하나로도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는 겨울밤, 땅과 하늘이 맞닿은 곳에서 그리움으로 부를 수 있는 불빛 하나 걸어놓고 시린 무릎 감싸 안고 나지막이 그대 이름 부르며 이 밤, 나는 가리라 겨울 긴 잠 속으로. 2020. 1. 22.
(시) 겨울산 / 남상학 시(詩) 겨울산 남상학 가지에 잎 떨어지니 산속이 열린다. 멧새 날아간 가지가 가는 여운으로 가볍게 흔들릴 때 조심스레 제 가슴 열어 보이는 빈 산 발길에 채이는 가랑잎이 깊은 곳으로, 낮게 더 낮게 흘러가고 눈부신 고요 속으로 발길 옮기면 빈 산이 다가와 와락 나를 껴안는다 산과 나 사이가 갑자기 투명하게 빛난다. 시공을 뛰어넘어 무한 쪽으로 내가 열린다, 하늘이 열린다. 2020. 1. 22.
(시) 단풍 / 남상학 시(詩) 단풍 남상학 별이 분신 낙하하는 아, 저 섬광(閃光) 그립고 아득한 품에 안겨 제 몸 저리 불태우는가? 그대 향한 열애 불꽃처럼 타올라 이승을 밝히는 혼(魂)불이거니 미처 다 사르지 못한 사랑 그대 가슴 뜨겁게 달궈 그 어느 날 부활의 기약으로 한 잎 두 잎 그대 가슴에 아낌없이 스러지리라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 2020. 1. 22.
(시) 안개 바다-한계령에서 / 남상학 시(詩) 안개 바다 - 한계령에서 남상학 한계령에 올라서니 이쪽과 저쪽 세상이 전혀 딴판이다. 우뚝 솟은 봉우리를 두른 자욱한 안개 바다는 포근한 엄마 품이다. 바람 부는 방향 따라 굽이쳐 흘러 사뭇 여유로운 저 거역할 수 없는 유영(遊泳) 먼지의 도시에서 달려온 내 승용차가 속절없이 안개의 심연, 그 깊은 늪으로 서서히 빨려들 때 나는 순간 억겁의 무중력 상태를 경험한다. 모든 산천이 귀먹고, 또 내가 귀먹고 살아 있음의 의식이 앞차의 경고등처럼 끔벅거려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한다. 이 혼미 속에 때 묻은 육신 벗고 미망(迷妄)의 깊은 잠이 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까운 거리의 저 아득함 속에 내 영혼 잠들 수만 있다면 2020. 1. 22.
(시) 발자국 / 남상학 시(詩) 발자국 -만리포에서 남상학 겨울 만리포 모래밭을 혼자 걸었다. 길게 찍힌 연인들의 발자국이 밀려오는 파도에 자취 없이 지워진다. 모든 것 쓸려간 자리에 추억들만 남아 희희낙락한다. 세월이 얼마간 흘러간 뒤에는 모래 위의 발자국처럼 추억도 그렇게 지워지리라 세월마저 그렇게 잊혀지리라. 2020. 1. 22.
(시) 석모도 일몰 / 남상학 석모도 일몰 남상학 사라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건 어둠 속에 자신을 사르고 불 밝히는 촛불만이 아니다. 오랜 칩거(蟄居)를 뚫고 나와 환한 세상에 희망의 불 잠시 밝히고 바람에 몸 맡기는 낙화만이 아니다. 가난하고 허전한 영혼의 뜰에 복음으로 내려 아낌없이 스러지는 유순한 눈꽃만이 아니다. 사라지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건 불붙는 바다, 그 낙조 속으로 한평생 당신을 향한 젖은 눈으로 그리움 찾아 유유히 사라지는 배 한 척, 그 돛대 위에 빛날 내일의 깃발이 있기 때문이다. 2020. 1. 22.
(시) 일몰 / 남상학 시(詩) 일몰(日沒) -신노루에서* 남상학 어떤 목숨이 저토록 장렬하게 산화할 수 있다 하던가? 세상의 헛된 욕망 불사르고 끓어오르는 의분을 삼키듯 어떤 생명이 저토록 처절하게 임종(臨終)을 맞이할 수 있다 하던가? 하늘 한 귀퉁이 낮게 깔린 무채색의 구름 사이 붉은 살덩어리 몇 번의 용틀임으로 마침내 우뚝 선 성불(成佛) 온몸으로 뒹굴던 파도 소리 이제 무념(無念)의 기도로 잦아들고 바다와 맞닿은 들녘 누리에 마지막 빛나는 일몰의 햇살 떠나는 길은 누구나 장엄해야 한다며 신노루 마을 작은 들녘을 가로질러 엄숙한 정적이 내린다. 고요한 평화가 깃든다. *영흥도 장경리에서 서해 일몰을 볼 수 있는 낮은 언덕 2020. 1. 22.
(시) 적석사 낙조대에서 / 남상학 적석사 낙조대에서* 남상학 얇은 구름 사이로 붉은 낙조 물들고 금빛 햇살에 반짝이는 섬들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그림자를 헤치고 고깃배 한 척 물살을 가르며 여운처럼 하루의 잔영(殘影)을 고물에 끌고 온다.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 했던가? 하루의 고단한 다리를 끌며 고만고만한 기대와 아쉬움을 떠나보낸 빈 하늘에 외로움 절로 깊어갈 때 아름다움으로 채색하는 소멸의 눈부심같이 바다가 끝난 자리에 언젠가 물살 환한 그리움으로 꿈은 다시 피어날까? 나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낙조대에 망연히 서 있었다. 손수건 한 장만큼 노을이 남을 때까지 섬들이 흔적 없이 바다를 품을 때까지. * 적석사 : 강화 내가면에 있는 사찰로, 사찰 위의 언덕에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도록 낙조대를 만들어 놓았다. 2020. 1. 22.
(시) 떠나야 할 시간 / 남상학 (시) 떠나야 할 시간 남상학 숲 사이 부산하게 수런대며 넘나들던 새들도 하루의 날갯짓을 멈추고 돌아가는 시간 아이들 뛰놀다 돌아간 쓸쓸한 빈집 텅 빈 운동장 한구석 은행나무 한 그루 긴 그림자 끌고 서 있는데 이제 어느 길손에게 잃어버린 노래를 물으랴 투명한 세월의 유리창 너머 종(鐘) 울고 해 기울어 나 길 떠날 채비 이제야 하느니 우거진 숲속 나무 잎새들 비끼는 노을 속에 아련히 잠기고 휘파람 불던 사랑도 빈 복도에서 점점 멀어질 때 삶은 가끔 눈물겨웠어도 그것은 아름다웠노라 여기며 저 낙조의 황홀함까지 그것은 사랑이었노라 속삭이며 빈손일지언정 평화롭게 잠기는 노을 벗 삼아 이제는 떠나야 하리 쓸쓸해도 자유로운 그 고요한 웃음으로 2020. 1. 21.
(시) 고별 / 남상학 시(詩) 고별(告別) - 2002년 8월, 교직 생활을 마치며 남상학 내 어설픈 35년의 길 고마운 손길들, 얼굴들 있어 마냥 행복하였더니라 환한 내일을 꿈꾸는 영혼 위해 꽃망울을 틔우는 아픔의 길이었지만 나의 '가갸거겨고교'는 빈 하늘처럼 걸려 있는데 새는 새소리로 노래하고 바위는 침묵으로 말한다지만 나는 무엇으로 노래하고 무엇을 말해 왔는가? 내 숲은 여전히 새 한 마리 깃들 그늘도 없이 앙상한 가지만 남아 뽀얀 먼지뿐 물 없는 모래밭 길 돌아보면 내 노래는 산을 넘는 구름처럼 한때의 무슨 잠꼬대 같기도 하고 때론 누군가의 가슴 후비는 비수(匕首) 같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 길 쓸고 닦아 꽃길로 장식하는 예쁜 마음들 티끌 한 점 없는 사랑하는 그대들아, 너그러이 용서하라 그대들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 2020. 1. 21.
(시) 사랑하는 나의 사람 / 남상학 시(詩) 사랑하는 나의 사람 남상학 어둠이 슬금슬금 떠나고 별들도 빛을 거두는 시간 잠에서 깨어난 목멱(木覓)이 몸을 뒤척이며 눈을 뜰 때 가쁜 숨 몰아쉬며 우린 함께 언덕 길을 올랐지 산정에 올라 높은 음정으로 웅지(雄志)의 나래 펴던 수많은 날들 그 기상(氣象), 그 열정(熱情)으로 온 누리 불 밝힌 우리들 세상 풍상(風霜) 섞어 치고 눈보라 살을 에는 차가운 날에도 다부진 얼굴엔 언제나 눈동자 반짝이고 있었지! 변치 않는 사랑으로 영원한 내일을 갈고 닦으며 의(義)의 깃발 높이 들고 작은 일에도 최선을 가르치던 사랑하는 나의 사람 함께 있을 땐 무심히 보아 넘긴 한 줄기 햇빛이 이토록 어여쁜 그리움으로 노래하게 될 줄이야 그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목청껏 불러본다 우리는 정말 사랑했노라고. .. 2020. 1. 21.
(시) 우리는 / 남상학 시(詩) 우리는 남상학 그때 우리는 햇빛 쏟아지는 목멱(木覓)* 푸른 숲에 둥지 틀고 있었지. 아침 햇살에 이마를 닦으며 빛나는 순은(純銀)의 언어로 지지배배 불씨 물고 하늘로 한 음계씩 비상하곤 했지. 봄에는 온갖 꽃들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 가을엔 저마다 예쁜 옷 갈아입기도 하고 다시 축복처럼 눈사태가 되기도 하고 넘치는 기쁨으로, 청청함으로 우렁찬 함성(喊聲)이 산등성이마다 불을 켜기도 하고 비가 내려 궂은날에는 날개 젖은 새 새끼들을 품속에 불러모아 지펴 놓은 모닥불 둘레 커다란 원을 그려놓고 살뜰한 정 나누어주기도 하고 해 저물어 어둠이 짙어진 뒤에야 우린 늘 하던 버릇처럼 휘황한 명동의 불빛 받으며 둥지에 찾아들곤 했지. 산이 좋아 산에서 살던 사람아 그날 우리는 캄캄한 밤에도 잠자지 않고 불을.. 2020. 1. 21.
(시) 남산 꽃길 / 남상학 시(詩) 남산 꽃길 - 남산의 벚꽃을 아시나요? 남상학 그대와 함께 걷던 길 일시에 팝콘처럼 터지던 울음이 환한 꽃으로 피었지요 그대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수많은 말들이 눈물로 그렁그렁 가지마다 꽃망울로 맺혔지요 바람 불어 꽃잎 흩어지고 그대 가슴 위로 무거운 발길 무수히 지나치는 날에는 온몸이 전율(戰慄)로 달아올랐지요.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한 순간의 가슴 저림 같은 것 아니, 모든 사랑은 그렇게 눈물 그렁그렁 아픈 길 위에서만 완성되는 것 남산 꽃길을 함께 걷던 사랑하는 그대여 그 날, 살뜰한 이야기꽃 피우며 눈사태로 화사하게 장식하던 남산의 벚꽃을 아시나요? 2020. 1. 21.
(시) 목련 / 남상학 시(詩) 목련(木蓮) 남상학 어느 해 봄이던가 하얀 목련이 피었다는 엽서 한 장 받은 날부터 내 마음에 활짝 핀 목련은 쉽게 지지 않았습니다. 가슴에 넘치지 않게 젖어 드는 만만치 않은 품새와 빛깔로 내 곁에 조용히 다가와서 가슴 가득 출렁이며 은은한 눈빛으로 나를 떠받들고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워하면서도 그립다 선뜻 말하지 않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 전혀 내색하지 않는 의연함으로 그대는 항상 내 곁에 있었습니다. 세월이 까마득히 흐른 뒤에도 내 마음 봄 언덕에 사무친 그리움으로 피어날 하얀 목련꽃 목련꽃 한 아름 안고 돌아가는 내 발길은 큰 축복입니다. 2020. 1. 21.
(시) 그 이름 보석이 되어 / 남상학 시(詩) 그 이름 보석이 되어 남상학 오월 햇살처럼 세월 따라 흐르는 강물에 반짝이며 떠오르는 고운 이름 하나 있습니다. 꿈으로 출렁이며 비상하다 환희의 절정에서 환호하기도 하고 때로 가슴 가득 와락 눈물 솟구쳐 가슴에 묻은 바위 같은 절망에 흐느끼기도 하고 지난 세월 아름아름 헤아려 보는 내 눈가에 출렁이는 강물 따라 은파(銀波)처럼 밀려오는 얼굴 당신은 나를 잘 알지 못하고 때로 나를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했지만 그 이름 새삼스레 부르지 않아도 내 가슴에 오롯이 뜨는 별 하나 당신은 내 안에 있습니다. 지금은 못다 한 손길 부끄러워 온몸을 휘감아 도는 아픔이 자욱한 한숨이 되어 내 가슴에 저려오지만 세월이 지난 먼 훗날 아련한 꿈속의 그 이름 내 가슴에 눈부신 보석이 되어 오월 햇살처럼 빛날 것입니다. 2020. 1. 21.
(시) 꽃밭에 서면 / 남상학 시(詩) 꽃밭에 서면 남상학 꽃밭에 서면 왜 이리 떨릴까? 이 세상 어느 목소리나 은유(隱喩)로도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거리, 까르르까르르 '나 잡으면 요옹치?' 손가락을 세우며 끝없이 달아나는 저 철없는 아이들 웃음소리 따라가다가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속내를 한치도 가늠하지 못하고 이 봄볕에 나는 몹시 부끄럽고 아리다. 아니 뻐근하고 저리다. 이 꽃 저 꽃, 꽃자리를 옮기며 꽃술을 더듬는 한 마리 나비는 세찬 바람에 날개가 찢기고 가슴에 금이 몇 개, 심장 판막 하나가 지금 꽃잎처럼 파닥거리며 떨고 있다. 유난히 어지러운 봄을 타는 것일까 나는. 2020. 1. 21.
(시) 장미 / 남상학 시(詩) 장미 남상학 너를 보는 내 눈빛이 늘 예사롭지 않아 뜨거운 숨결로 달궈낸 잉걸불 같은 사랑인 것을 촛불 켜고 너를 기다리는 깊은 밤 멀찌감치 나를 바라만 볼 뿐 꺾지 못하는 너를 보며 난 가슴이 더욱더 아파 내 눈에 이슬이 맺히고 때로 전의(戰意)가 번뜩인다는 걸 내가 떠난 뒤에야 넌 비로소 알 거야 그때 너의 가슴에도 고스란히 남은 아픔의 흔적을! 2020. 1. 21.
(시) 염원 / 남상학 시 염원 남상학 내가 살아가는 동안 작은 소망이 소명의 불꽃으로 피어 활활 타오를 수 있다면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가난한 빈방에 촛불을 켜듯 그 불꽃, 하나의 기도가 되어 어두운 밤 밝힐 수 있다면 시커먼 숯덩이에서 쉰 목소리로 빚어내는 노래일지라도 아픔 속에 키워내는 진주처럼 찬연한 눈물 꽃 하나 피워내고 싶었네! 애써 이름 부르지 않아도 눈짓 한 번에 달려와서 감당 못 할 기쁨으로 내 가슴에 아낌없이 부서지는 소담한 꽃 한 송이 세월이 아득히 흐른 뒤에도 가슴 속 깊은 곳에 은은한 향기로 묻어나는 혼(魂)을 담은 꽃을 내 거친 손길로 피워내고 싶었네. 2020. 1. 19.
(시) 개나리 / 남상학 시(詩) 개나리 남상학 그대 위하여 목놓아 울던 청춘이 꽃 되어 아지랑이 언덕에 이처럼 피었나니 그날 한 소절로 꺾이던 내 젊은 절규는 불붙는 열정(熱情)으로 뽑아낸 진액처럼 해마다 이 남산 언덕에 노랗게 노랗게 겹겹이 피기로 그대 위해선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아, 나의 청춘이 피워낸 꽃! 2020. 1. 19.
(시) 하늘 꽃 만발한 꽃재에서 / 남상학 (사진 : 새성전 입당감사예배 장면) 축시(祝詩) 하늘 꽃 만발한 꽃재에서 - 『110년 꽃재교회 이야기』 간행 축시 남상학 동대문 밖 왕십리 홍익동 언덕은 갖가지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예로부터 ‘꽃재’라 불렀다. 가시덤불 무성한 돌밭 눈물로 일궈 예쁜 꽃씨 뿌려온 110년 세월 당신 사모하는 애절한 마음이 봄 뜨락에 하얀 목련으로 피기도 하고 타는 여름 볕에선 해바라기로 피기도 하고 살을 에는 엄동엔 붉은 동백으로 피기도 하고 저마다 아름다움을 다투어 피는 꽃 숲 언저리 우리는 날마다 신나는 나비와 꿀벌 되어 날개 퍼덕이며 하늘을 맴돌곤 했지. 맑은 이슬 구르는 새벽이면 푸른 종소리에 다소곳이 미역을 감고 온종일 훨훨 단 꿀을 나누어 주다가 진액(津液)에 취하면 혼곤히 낮잠에 들고 임 그리워 편지쓰는.. 2020. 1. 18.
(시) 꽃재, 하나님의 집 / 남상학 꽃재, 하나님의 집 -교회 창립100주년 기념성전 입당에 즈음하여 나는 요즘 역사 집필을 위해 교회로 오는 길목에서 하늘 높이 솟은 우람한 한 채의 집을 본다. 그 지붕 꼭대기 빛나는 햇살에서 눈물로 얼룩진 진주 방울을 본다. 왕십리에 뉴타운 소식 전해진 뒤 ‘이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이며, 최고의 선물’이라며 100주년 기념 성전을 짓는다는 일념 하나로 너도나도 앞다투어 한 평 땅을 봉헌하고 저마다 허리띠를 조이고,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면서 시간이 늦을세라 달려와 기도의 골방에서 밤새워 무릎 꿇던 날들이 그 얼마였던가. 성전 터가 정해지고, 설계도가 그려지고, 강추위 속에 거침없이 땅을 파던 날을 지나 드디어 지상으로 얼기설기 형체를 드러낼 때 우린 얼마나 설레는 가슴으로 흥분했던가. 그리고 주일마다 키.. 2020. 1. 18.
(시) 해바라기의 노래 / 남상학 축시(祝詩) 해바라기의 노래 - 꽃재교회 창립 90주년 기념 축시 남상학 자욱한 안개 걷어 내고 온 누리 울려 퍼진 종소리 눈부신 꽃가루로 부서진 기나긴 90년 세월 촉촉이 단비 내려 긴 세월 수고 많은 날을 단단히 뿌리 박고 튼튼히 자라 줄기며 가지며 무성하게 자란 잎새, 잎새들 꽃들의 축제로 단장한 언덕은 오늘 눈부시어라. 우러러 치켜든 두 손 높이 정정한 기도 소리 하늘을 덮고 말씀의 알곡으로 가슴 가득 채우고 손뼉 치며 한목소리로 부르는 할렐루야 찬양 보아라 화사한 햇살 퍼지는 푸른 하늘에 살아온 날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감사, 감사로 새기고 온 지면에 푸르른 그늘 드리워 뭇 나그네에게 생명의 쉼터 되나니 지치고 피곤한 영혼들이여 이 푸른 그늘에 와서 마음 놓고 쉬어라. 네 짐을 이곳에 벗어놓고 .. 2020.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