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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307

(시) 새벽, 도솔암에 오르다 / 남상학 시(詩) 새벽, 도솔암에 오르다 남상학 달빛 어린 미명의 새벽길 산마루에 아득한 꿈 하나 걸어놓고 어둠 속에 엎드린 계곡을 오른다. 선운사 부처님도 아직은 깊은 잠에 들었는데 중생의 간절한 소원이 동백 숲에서 소리 없이 터지고 겨울 숲 사이로 찬 서리 털고 일어서는 바람이 앞질러 어둠을 이끌고 희부연 능선을 넘어간다. 적막한 골짜기를 흘러넘치는 저 묵시(默示)의 강물 어둠 속에 제 모습 드러내는 등걸처럼 잠든 영혼이 부스스 잠을 털고 일어설 때 도솔암 주변 숲속에서 순간 둔탁한 날갯짓으로 고사목(枯死木)을 후려치며 허공을 가르며 힘차게 사라지는 딱따구리 한 마리 광막한 적막 속 칠성대 가파른 암벽을 타고 내려 가슴 후려치는 소리, 천지개벽하는 소리 허공을 찌르는 호곡(號哭)소리 그 소리가 죄 많은 가슴에.. 2020. 1. 14.
(시) 겨울 설악 / 남상학 겨울 설악 남상학 천 년 고목(枯木)의 뼈 사이로 매서운 바람 불고 원시(原始)의 언덕에서 포효하는 울음 영혼이 앓는 소리 아픈 숨결을 배 밑에 깔고 밤새워 열병을 앓다가 말끔히 얼굴 씻고 번뜩이는 이마로 성큼 다가서는 산 언 땅에 뿌리 내리고 호올로 한천(寒天)을 떠받들고 서서 옷을 벗어 생채기를 드러내는 부끄러움이 어찌 나목(裸木)뿐이랴 속내의(內衣) 훌훌 벗고 해탈을 꿈꾸는 수도승같이 영겁의 바람으로 귀밑머리 잔설을 털어내는 저 우직한 몸뚱아리 깊은 숨결 안으로 고르며 열병으로 뒤척이다가 모진 바람 속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산 겨울 설악은 찬란한 아침 햇살 속에 몸을 푸는 짐승이다. 2020. 1. 14.
(시) 사자평 / 남상학 시(詩) 사자평 억새밭 - 남상학 왜 저리 보채는 것일까? 세상 시름 죄다 발밑에 내려놓고 멀찌감치 해발 650m 고지 너른 들에 해와 달, 별들까지 한자리에 모아놓고 잔치를 베풀면 그만이지 아침마다 부드러운 촉수(觸手) 내밀어 하얀 눈물 빚어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람을 친구 삼아 수염 쓸며 나들이 떠나는 저 허허로운 광평추파(廣坪秋波)의 손짓은 또 무엇인가? 세월의 언덕 너머 바다를 향하여 머리 빗고 기다리는 숙명 같은 그리움 혹은 하늘 끝 영원의 한 자락을 휘어잡고 싶은 고독한 시인의 독백. 저리 지천으로 낮게 깔리는 몸짓은 찬란한 슬픔이거나 무한 설레임의 고독한 깃발 같은 것. 늦가을 석양에 바다 되어 발밑에 눕는 억새가 원죄의 무게만큼 짓눌린 나를 보고 어서 가지고 가자고 손짓하여 부른다. *사.. 2020. 1. 14.
(시) 구절리에 와서 / 남상학 구절리에 와서 남상학 바람도 숨을 거두고 산도 마지막 몸을 숨긴다.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 시간도 어디론가 잠적한다. 산새도 날아들지 않는 정지된 시간 낯선 손님처럼 완행열차가 목쉰 소리를 토해내며 산모퉁이를 돌아온다. 방금 기차에서 내린 두어 사람 텅 빈 플랫폼을 지나 대합실을 빠져나갈 뿐 인적 끊긴 길가엔 쓸쓸히 한 무기기, 바위구절초가 자색(紫色) 옷 차려입고 나를 반긴다. 호젓한 곳으로 유폐되어 오랜 적조와 적막에 깃들여진 오, 아리따운 넋들 얼굴에 왈칵 눈물이 솟아 흩어진 방울방울 피눈물 같은 슬픔 그리운 사람 모두 떠나고 공복(空腹)이 가득한 거리에 날아들던 산새마저 어디론가 자취 감추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또 어이할 건가? 그윽한 여향(餘香) 잊을 수 없어 허전한 가슴에 바위구절초 한 .. 2020. 1. 14.
(시) 메밀꽃 필 때 / 남상학 시(詩) 메밀꽃 필 때 - 남상학 봉평의 구월 들판은 가을 햇살 속에서 눈부시다. 늦더위를 목구멍에 모두 삼켰다가 일시에 토해낸 듯 숨 막히는 저 순백(純白)의 대지 가냘픈 꽃대마다 탄성이 주렁주렁 맺혀 있다. 이토록 척박한 땅에도 가슴 설레는 환희가 있었구나 흐드러진 꽃 사태 앞에서 저마다 혼백을 잃고 서서 질탕한 꽃 무더기 속에 지천으로 맺힌 가산(可山)의 혼을 줍고 있다. 소금 뿌린 듯 희부연 달밤이 아니어도 서정(抒情)의 미소 머금고 한 줄기 바람이 남안교를 넘어 더위 먹은 듯 물레방앗간을 기웃거리는 한나절 한 떼의 처녀애들이 몰려와 꽃밭에 짝지어 서서 높푸른 구월 하늘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정념(情念)의 불을 지핀다. *봉평은 이효석의 의 무대가 된 곳. 1991년 10월 당시 문화부는 가산 문학.. 2020. 1. 14.
(시) 어느 여름 / 남상학 어느 여름 남상학 온종일 장대비 내리고 주전골이 물에 넘쳐 남설악은 거대한 항공모함으로 떴다.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미국(迷宮)의 바다 짙은 안개에 갇혀 해저 깊숙이 닻을 내리고 라디오 스위치를 끈 채 나침반도 없는 시간 속으로 침몰하던 날 오도 가도 못하고 오색약수 인심 좋기로 소문난 소나무집 유정 엄마네 진한 머루주(酒) 향기에 혼곤(昏困)히 취해 있었다. 2020. 1. 14.
(시) 세연정에서 / 남상학 시(詩) 세연정에서 남상학 낮은 산비탈을 따라 느릿느릿 내려오는 바람이 연못 수면을 간질이며 그윽한 풀향기 속에 잠이 듭니다. 이 고요 속에 세월의 돌다리 건너 살아오는 그리움 당신은 그윽한 풀 내음, 솔 향기로 잔잔히 내게 오십니다 한 점 미동도 없는 연못 속 한 조각 구름으로 잠기어 수심 깊숙이 무심(無心)하라 이르시는 이 노송의 휘어진 가지처럼 높으신 안목 무언의 크신 일깨움에 고개를 숙이나니 발길 닿는 곳마다 새록새록 살아오는 숨결 당신을 만나고 돌아서는 내 빈 마음 언저리에 언제나 푸른빛의 샘 그윽한 풀 내음, 솔 향기 되어 당신의 문향(文香)이 스칩니다. *고산 윤선도(尹善道)가 만년에 머물며 글짓기를 했던 완도군 보길도 부용동의 정자 2020. 1. 14.
(시) 구미정 / 남상학 구미정에서* 남상학 산 높아 골 깊은 곳 발길 멈추고 마지막 남은 홍진(紅塵) 말끔히 씻어내면 달마(達磨) 이마 머리 하얗게 부서지는 옥류(玉流) 청수(淸水)에 고스란히 하늘 내려와 말없이 정다웁게 입을 맞추네. *구미정(九美亭)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천에 있는 정자.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매우 수려하여 석지(石池), 취벽(翠壁), 층계 등 아홉 가지 풍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20. 1. 14.
(시) 요선정 / 남상학 시(詩) 요선정(邀仙亭) 남상학 아찔한 절벽 아래 길게 누운 샛강이 눈에 시리고 푸른 노송을 빗질하는 솔바람이 여름 불쾌지수를 단숨에 씻어낸다. 그대 붓끝인 듯 부드럽게 굽은 정자 앞 청청한 소나무 두 그루 서법이 날렵한 선골풍(仙骨風)인데 마애불 좌상을 동자처럼 끼고 앉아 한 편의 시조를 읊조리니 아스라이 세월의 강물 건너오는 저 아득하고 먼 득음(得音) 나그네의 귓가에 그대 숨결 송진 냄새처럼 진하게 살아온다. *요선정은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서만이강과 법흥천이 만나 주천강의 상류를 이루는 합수머리 아름다운 강가 언덕배기에 있는 정자로서 조선조 명필 양사언(楊士彦)이 정자 앞 바위를 요선암이라 휘호랬다. 대표적인 시조로는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가 있다. 2020. 1. 14.
(시) 화양계곡 / 남상학 화양계곡 - 암서재* 남상학 도명산 굽이진 북쪽 자락 굽 돌아 흐르는 푸른 골짜기를 가슴을 풀어헤친 채 초록 비단으로 알몸 감싸고 간드러지게 누운 푼푼한 충청도 여인 무에 급한 것 있으랴 풋풋한 향내로 하이얀 젖줄 물리고 발정 난 화양천 굽이굽이 뭇 남정네의 발길을 잡는구나! 냇가 벼랑에 집을 짓고 경서의 깊은 가르침 찾아 분촌(分寸)이라도 따르려 애썼다는 임의 모습 간데없고 바위 위 낡은 글방 하나 마냥 덩그런데 깊고 은은한 아홉 구비 발길 닿는 곳마다 차려놓는 푸짐한 진수성찬 눈 부신 햇살 부서져 내리는 투명한 골짜기에 붉은 고추잠자리 떼가 하강을 거듭하며 금모래 맑은 소(沼)에 고운 입술 맞춘다. 상긋한 바람결로 알몸 감싼 산드러진 여인의 풋풋한 인심 냉수 한 사발 마시고 가라고 푸른 계곡을 따라온.. 2020. 1. 14.
(시) 덕숭산에 오르며 / 남상학 시(詩) 덕숭산을 오르며 -만공 스님에게* - 남상학 소나무 떡갈나무 우거진 숲 아늑한 그늘 사이로 한여름 더위가 선잠에 들었다. 가파른 돌계단을 기어오르면 여인네의 둔부 같은 암반 위 앙증스럽게 걸터앉은 너댓간 크기의 암자 하나 허허, 여기가 칠선녀와선(七仙女臥禪)했다는 소문난 자네 처소인가? 산마루에 스치는 상큼한 바람이 속진(俗塵)을 털어내고 정혜사 뜰에 서서 마시는 약수는 불유(佛乳)라 했지! 너털웃음 쓸며 산 아래 굽어보니 멋에 취한 자네 모습 절로 보이네. *덕숭산은 수덕사 뒷산. 이곳에는 숱한 일화를 남긴 만공스님의 사리탑이 있고, 산 중턱 정혜사의 약수를 덮은 보호각에는 그가 명명한 불유각(佛乳:부처님의 우유)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2020. 1. 14.
(시) 낙가산 정상에서 / 남상학 詩 낙가산 정상에서 남상학 낙가산, 그 정상에 서면 시원스레 눈이 열리고 저 멀리 바다는 나긋나긋한 몸짓으로 발밑에 다가와 눈 아래 포근히 잠긴다. 그리운 마음 모아 시원(始原)을 향하여 염원의 하얀 돛배를 띄우고 가슴 속 깊이 심호흡을 하면 시선의 맨 끝에서 시원스레 영원의 바다가 열리는 듯 한결 가벼워진 내 영혼은 정토(淨土)의 백성이 되어 출렁이는 물결 따라 춤을 춘다. 해수관음(海水觀音)*의 자비로움이 무량(無量) 세월 널브러진 저 질펀한 가슴만하랴! 그 사이, 산등성이를 넘어온 상긋한 바람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매만지다가 너울거리는 푸른 바다로 빠진다. 아득한 수평선 빈 가슴에 꿈 하나 새겨놓고. *강화 석모도 낙가산 중턱에 눈썹바위가 있고, 비스듬한 암벽에 인자한 해수관음이 조각되어 서해를 바라.. 2020. 1. 13.
(시) 개암사 봄빛 / 남상학 시(詩) 개암사 봄빛* 남상학 지나가는 바람도 잠시 발길 멈추는 자리 어머니의 품속 같은 아늑한 둥지에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펴고 알을 품었다. 오랜 세월 비바람 눈발에 씻겨 수수한 옷차림으로 맞이하는 얼굴 뜰에는 겨울을 이겨낸 호랑가시나무 잎새들이 저마다 윤기를 자랑하듯 성장(盛裝)을 하고 줄기마다 붉은 염주가 큰스님의 기원처럼 맑은 하늘을 이고 소담스레 매달려 있다. 멀리 울금바위 준수한 봉우리를 넘어온 칼바람이 서걱서걱 대나무 푸른 숲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의 숱한 설화를 뿌리는데 투명한 시야 속에서 산천이 기지개를 켜고 저벅저벅 걸어나오는 한나절 뜰 아래 매화 가지엔 어느새 남보다 먼저 온 봄이 큰 눈을 부릅떴다. *개암사는 변산반도에 있는 고찰(古刹) 2020. 1. 13.
(시) 애도별곡 / 남상학 애도별곡 -청주를 지나며 2 남상학 더위 먹은 듯 내 승용차는 카랑카랑한 소리로 그대 심장을 가로질러 아스팔트 길을 달린다. 눈물로 얼룩진 젊은 날의 육필(肉筆)처럼 덜컹 잘린 손가락 부서진 두개골 거리에 나뒹구는 살점, 흥건한 피 몇 구비 고개 넘어 이곳까지 와서 척박한 땅에 꽃씨를 뿌린 세월인데 누가 시샘하여 그 꿈 산산조각 앗아갔는가? 미치도록 좋아 생명과 바꾼 아름다운 선율이 스. 타. 카. 토로 분절되어 끊어지는 길 그 길 위에 부서진 잔해들이 모여 오, 다시 일어서는 네가 보인다. 원고지에 춤추던 그대 영혼처럼 바람에 흩날리며 이리저리 나부끼는 곡조 없는 춤사위가 보인다. 춤사위는 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타오르는 불꽃이 되고 길가에 접시꽃으로 피어 느릿느릿 달려오는구나! 그 영혼 가슴에 보듬어 .. 2020. 1. 13.
(시) 도시의 나비 / 남상학 시(詩) 도시의 나비 -청주를 지나며 1 - 남상학 너는 한 마리 나비였다 고층건물 사이를 곡예하는 헬리콥터처럼 화려한 날개를 단 나비였다 이른 새벽시장 옷가게에서 화려하게 분장을 하고 교회 첨탑 십자가 밑에서 무릎을 꿇고 대학 노(老)교수의 명강의에 도취되기도 하고 허망한 도시의 하늘을 꿈꾸며 자유롭게 날았다. 높다란 빌딩의 숲에서 보는 일몰(日沒)의 구름 속으로 황홀한 음악에 취해 화려한 비상(飛翔)을 꿈꾸던 뜨거운 여름 그 어느 날 모진 회오리바람 불어와 불타는 영혼은 구름 속으로 날아가고 더듬이 잃고 흩어져 도시의 지상으로 추락한 육신의 잔해(殘骸) 너는 가여운 이카로스* 용광로처럼 달아오른 거리를 생명 보험도 없이 겁 없이 달리던 질주(疾走) 그 현기증으로 하여 끝내 욕망의 날개를 접었다는 비통.. 2020. 1. 13.
(시) 수종사에 올라 / 남상학 수종사에 올라 남상학 여름의 길목 짙푸른 숲 어디선가 한가히 뻐꾹새 운다. 자작나무 빽빽한 숲속 푸르름의 목어(木魚) 눈부신 고즈넉한 풍광의 절 한 채 흐르는 석간수(石間水)에 그윽한 차향을 풀어 울적한 심사를 다스리고 나서 풍경소리에 놀라 문득 고개를 들면 유천(乳泉)으로 닦아낸 티 없이 맑은 눈에 부처님 자비로운 햇살 속 저만큼 가슴을 열고 선뜻 다가와 안기는 두물머리 너 나 구별할 것 없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로 아슴아슴 산골짜기 돌아 한마음으로 몸을 섞는 넉넉한 강물 줄기 오늘 하루만이라도 저 강물에 흔들리며 욕심 없이 풀잎 되어 흐르고 싶어라. 2020. 1. 13.
(시) 그 숲 속의 찻집 / 남상학 ◈시(詩) 그 숲 속의 찻집 - 아라비카 - 남상학 남한산성 밖 오솔길을 들어서면 잘 정돈된 커피하우스 한 집 통유리 밖 테라스의 허브 잎새가 나를 반기며 손짓합니다. 자, 따끈한 커피 한 잔 어떨까요? 잠시 발길 멈춘 나를 부른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아라비카종(種) 원두향에 취하노라면 눈 녹듯 스러지는 나른함이여. 너와 나는 저만치 잡목림(雜木林) 넘어 먼 길 가는 다람쥐 가족 그 너머 또 푸른하늘에 뜬 구름 한 조각 2020. 1. 13.
(시) 대홍수 / 남상학 대홍수 - 한강변에서 남상학 아니에요, 결코 피하려 하지 마세요. 저 성난 물줄기를. 비에 젖은 빈 배처럼 처연해야 합니다. 번지르르 탐욕으로 기름진 살들이 각진 스티로폼 조각으로 해체되어 둥둥 떠내려가야 합니다. 오만의 바벨탑이 천둥 번개에 무너지고 자연을 더럽힌 오욕의 쓰레기들이 철저히 청산되어야 합니다. 뜨거운 핏덩이가 목구멍에서 솟아오르듯 왈칵 쏟아내는 황톳빛 울분, 여기저기 합수(合水)하여 무섭게 내닫는 저 도도한 저항의 물길을 누가 감히 거스르겠습니까? 제아무리 기세등등한 정복자도 넋을 잃고 망연히 서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사정없이 퍼붓는 장대비는 더는 한 걸음도 내디디지 못하는 진창길 위에서 질펀하게 벌이는 우리 세대의 최대 씻김굿 한 판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살아남은 자는 마지막 생명을 .. 2020. 1. 13.
(시) 바다 노을에 서서 / 남상학 ※사진 : 선유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의 일몰 시(詩) 바다 노을에 서서 - 남상학 노을 지는 저녁에는 붉게 물든 마음으로 그대에게 가고 싶다. 구름 타고 가신 바닷길 구만 리 목 늘이며 기다려 붉게 물든 햇덩어리 수평선 끝 닿은 데 빠지거든 그대여,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나의 타는 가슴으로만 여겨다오. 한 점 저녁노을 찍어다가 외딴 섬 바위 끝에 하얀집 짓고 날개 퍼득이는 바닷새 되어 언젠가는 보리라 섬들은 섬들끼리 이마를 마주대고 그리움은 그리움끼리 입술을 비비면서 뜨거운 가슴을 다독일 때면 그리움 출렁이는 바다 위 만선의 깃발 달고 붉게 물든 마음으로 그대에게 가고 싶다. 2020. 1. 13.
(시) 이작도 / 남상학 (시) 이작도 남상학 인천에서 뱃길로 한 시간 푸른 물살 출렁이며 그리움의 밀어(密語)가 영그는 호젓한 섬 당산(堂山을 넘어온 상긋한 바람이 마을로 내려와 깔끔한 옷매무새로 단장을 하고 돌담 따라 살구꽃 감꽃 철 따라 벙글면 굴껍질 하얗게 드러나는 갯바위엔 할머니 망태기 가득 흥겨운 콧노래가 담긴다. 작은풀안, 큰풀안, 목장불 돌아 멀리 떼넘어 모랫벌까지 왁자지껄 푸르게 출렁이는 웃음소리 고운 모래톱에 앉아 시시덕거리다가 출렁다리 지나 부아산 정상에 오르면 수줍게 나타났다 몸을 숨기는 아, 여기는 풀등 발아래 소이작도, 승봉도, 사승봉도, 자월도 아스라이 덕적도, 문갑도, 굴업도, 아차도, 율도 … 꿈꾸듯 시야에 아른거리고 다시 장승 우뚝 선 마을 지나 한때 조국의 어두운 소식 들려올 때 봉화(烽火) 피.. 2020. 1. 13.
(시) 망양정에서 / 남상학 ◈시(詩) 망양정에서 - 남상학 낮은 벌판을 달려와서 더 나아갈 수도 없는 동해의 한 자락 이랑마다 숨차게 달려와서 아낌없이 부서지는 물보라를 보았는가! 등 뒤로 가파른 태백산 줄기 깊은 불영(佛影)의 골짜기 흘러내리는 강물을 옆으로 끼고 돌아 나오면 아무리 눈을 닦고 바라보아도 푸른 수평선 너머로 닿을 수 없는 꿈은 아득하여 여기는 이름하여 망양(望洋) 정자 위에 올라 먼 곳 시선이 머무는 자리 푸른 해원을 조망하며 가슴 깊숙이 품어 온 천년의 그리움을 띄우나니 푸른 물 출렁이며 사는 이 즐거움을 이제껏 알지 못하는 뭍의 나그네여 날이 저물기 전 영원의 바다를 향해 가슴을 펴고 힘껏 생명의 노를 저어보라. 아니면, 파도가 밀려가는 붉은 산호 무늬 노을을 향하여 마지막 손이라도 흔들어 보라! 2020. 1. 12.
(시) 항해 / 남상학 항해 남상학 너와 내가 한 무리의 바람으로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는 각각의 작은 배일 때에도 서로 인정이 그리운 사람들은 비껴가는 갑판 위에서 뜨거운 혈육처럼 손을 흔든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찌든 마음 푸른 파도에 씻어 돛대 끝에 달고 아침마다 자욱한 안개를 걷어내어 항상 새롭게 떠나는 힘찬 뱃길 폭풍우 몰아치는 밤바다에 부딪치며 떠밀리며 표류할지라도 서로 인정이 그리운 사람들은 등불 높이 밝혀 들고 어영차 힘차게 노를 젓는다. 그러나 잠 깨면 언제나 낯선 항해 작은 눈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수평의 끝, 생명의 시원 그 먼 길이 아득한 안개 속일지라도 서로 인정이 그리운 사람들은 그 옛날, 풍랑을 잠재우는 내력을 정답게 이야기하며 힘차게 힘차게 노를 젓는다. 2020. 1. 12.
(시) 여름바다 / 남상학 시(詩) 여름 바다 - 남상학 불타는 여름 바다에 잠시도 쉬지 않고 출렁이는 파도는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원초적 향연이다. 들끓는 벌판을 달려와서 지열(地熱)처럼 달아오르는 아픔을 시원한 바람에 잠재우고 넘어지고 깨어지고 부서져서 수심 깊은 곳으로부터 발원하여 뜨거운 숨결의 애무로 어루만지며 파도를 튕기는 은어(銀魚)처럼 식은 사랑을 일깨우며 덥석 안긴다. 푸름으로 살아오는 바다는 싱싱하게 일어서는 생명을 위하여 끝없는 수평을 향하여 노래하듯 원시의 빛깔로 다가오는 정열(情熱)의 가슴 때 묻지 않은 야성(野性)의 소리 지르며 잠든 영혼을 핥으며 뒤척이는 파도여, 오라 닫힌 마음 활짝 열고 맨발로 달려오라. 2020. 1. 12.
(시) 바다의 향연 / 남상학 바다의 향연 남상학 내 육신의 한 자락을 사정없이 물어뜯던 도시는 육지의 맨 끝을 달려와서 흰 거품을 물고 부서진다. 오랜 날 멀리 날지 못하고 쓸쓸한 바닷가를 선회하던 나의 은(銀)빛 갈매기여 깊은 바닷속 산호에서 오색 빛깔로 아롱지는 무지갯빛 광채(光彩)를 보았는가? 눈 부신 태양(太陽)의 빛줄기와 어울려 밤낮없이 출렁이는 빛의 사다리를 보았는가? 들끓는 바다 한가운데 때로는 꿈꾸고 때로는 열애(熱愛)하며 영롱한 진주(眞珠)를 키워내는 비밀스런 모래섬을 보았는가? 오, 찬란한 빛 은하(銀河)의 목걸이를 높은 하늘에 걸어 놓고 영원을 핥으며 뒤척이는 황홀한 바다를 보았는가? 설레이는 숨결과 또렷한 음향(音響)으로 일깨우는 바다의 꿈 부드러운 가슴으로 안아주는 그 신비스런 만남을 나의 은(銀)빛 갈매기여.. 2020. 1. 12.
(시) 무의도 / 남상학 시(詩) 무인도 - 남상학 육지의 한 자락을 온몸으로 움켜쥐고 먼바다 한가운데 닻을 내린 목선(木船)처럼 출렁이는 섬 끝없는 파도 소리는 바람 속에 묻어오는 메아리 사철 짠 바람에 씻기며 물새 울음 같은 고독에 떨다가도 칭얼거리는 파도를 잠재우며 이내 그 소리에 파묻힌다. 자나 깨나 먼 육지의 크고 작은 산을 향하여 낮에는 달아오르는 태양 아래 무한갈증(無限渴症)에 누웠다가 노을 지는 저녁에는 흩어진 옷매무새를 만진다. 홀로 앉은 천 년의 외로움을 칠흑 같은 어둠의 바다에 풀어놓고 온몸이 혼곤(昏困)히 잠길 때 떼 지어 몰려오는 구름으로 내일의 향방을 예감한다. 우러러보는 하늘 자락에 남몰래 소곤거리며 출렁이는 가슴으로 명멸(明滅)하는 별빛이 이 밤, 조용히 숨죽여 눈을 뜨는가 꿈이 머무는 자리 바다가 .. 2020. 1. 12.
(시) 꿈꾸는 바다 / 남상학 꿈꾸는 바다 남상학 배 한 척 띄워 바다 앞에 나서면 멀리 이어지는 수평선 위에 희망은 가장 멀리 가는 내 마음의 이물 바다는 더 넓게 열린다. 굽이치는 세찬 물살에 흔들리고 또 흔들릴지라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달픈 이야기와 다른 실패의 기억을 출렁이는 바다에 부서지게 하라. 나부끼는 기폭처럼 새로이 맞는 시간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나만의 자유 생명은 갓 잡아 올린 고기 비늘처럼 바닷바람에 청청히 빛나느니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때가 묻지 않은 내 고향의 포구 형제처럼 모여 앉은 섬 둘레를 돌아 바다는 어느새 하늘에 이어지고 영원의 구름 너머 새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한 조각 하늘 푸르름 내려앉은 맑은 눈가에 그리움의 꽃이 핀다. 2020. 1. 11.
(시) 그대 가까이 / 남상학 시(詩) 그대 가까이 - 남상학 그리워하다 잠 못 드는 밤이면 그대 가까이 달려간다. 달빛 가득히 수면 위에 내리는 꿈의 부둣가 낚싯대를 드리우면 은(銀)빛 물고기 떼 수면 위로 튀어 올라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팽팽한 줄 끝에선 주렁주렁 별들이 낚이고 월척이 넘는 달덩이도 올라온다. 그대 가까이 달려가는 밤이면 은하수 출렁이는 만조(滿潮)가 된다. 2020. 1. 11.
(시) 해당화 / 남상학 해당화 남상학 외딴 바닷가 하얀 모래 언덕 위에 불타는 사랑 여름내 풋풋한 바람으로 말끔히 씻은 영혼 그 잎새마다 이슬을 달고 아침 해가 오르면 가슴으로 뜨거운 열망을 담아 이글거리는 태양을 잉태한다. 눈부시게 쏟아내는 빗살무늬 고운 빛 그 빛을 조명(照明)하며 아침저녁 마음을 닦는 바닷가 파도 소리는 은밀히 가꾸는 세례의식(洗禮儀式) 오랜 날 입술 곱게 단장하고 신랑을 기다려온 정열의 신부(新婦)여 하늘 푸르게 빛나는 날 환한 웃음 입에 물고 달려갈 출렁이는 사랑 부풀어 하얀 언덕 위로 떨리는 가슴 안고 바닷가에 누워 있다. 2020. 1. 11.
(시) 소라의 꿈/ 남상학 소라의 꿈 1 눈 감으면 아른거리고 귀 기울이면 꿈 속 이야기도 들려요 잔잔한 물결 위를 푸른 음성으로 읊어내는 바다의 소야곡(小夜曲) 2 까마득한 먼 발치 잔잔한 몸짓으로 부서지며 달려가는 그리움 밤낮 없이 속삭이는 해조음(海潮音)에 해초(海草)가 일렁이듯 귀를 세우고 오랜 날 물새 떼 쫓으며 커가는 가슴 3 출렁이는 절대(絶對)의 바다 천 길 바다 속 영원(永遠)을 꿈꾸는 소라여 그 어느 날 잉태(孕胎)한 몸을 푸는 날 즐거운 향연은 베풀어지리라 오늘도 자맥질하는 해녀처럼 태고(太古)의 신비를 꿈꾸고 있어요. 2020. 1. 11.
(시) 바다에 오면 / 남상학 바다에 오면 남상학 바다에 오면 바다는 늘 푸르게 살라 하네 하얀 모래밭에 젖은 옷 벗어 놓고 답답한 가슴 열라 하네. 바다에 오면 바다는 늘 출렁이며 살라 하네 산 넘어 몰려오는 천둥과 먹구름 맑은 바람에 씻으며 파도치는 가슴으로 살라 하네. 바다에 오면 바다는 늘 낮아지라 이르시네 어둔 밤의 돌개바람 길 없는 성난 파도 넓은 품에 잠재우며 큰 바위처럼 침묵하라 이르시네. 저무는 바닷가 노을에 젖어 다정한 음성으로 푸르게 일깨우는 한평생 바다로 살아오신 한결같은 모습의 내 어머니 바다에 오면 인자한 얼굴에 미소 머금고 어머니가 걸어오네. 2020.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