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새벽, 도솔암에 오르다
남상학
달빛 어린 미명의 새벽길
산마루에 아득한 꿈 하나 걸어놓고
어둠 속에 엎드린 계곡을 오른다.
선운사 부처님도
아직은 깊은 잠에 들었는데
중생의 간절한 소원이
동백 숲에서 소리 없이 터지고
겨울 숲 사이로
찬 서리 털고 일어서는 바람이
앞질러 어둠을 이끌고
희부연 능선을 넘어간다.
적막한 골짜기를 흘러넘치는
저 묵시(默示)의 강물
어둠 속에 제 모습 드러내는 등걸처럼
잠든 영혼이 부스스
잠을 털고 일어설 때
도솔암 주변 숲속에서
순간 둔탁한 날갯짓으로
고사목(枯死木)을 후려치며
허공을 가르며 힘차게 사라지는
딱따구리 한 마리
광막한 적막 속
칠성대 가파른 암벽을 타고 내려
가슴 후려치는 소리, 천지개벽하는 소리
허공을 찌르는 호곡(號哭)소리
그 소리가 죄 많은 가슴에 날아들어
비수처럼 사정없이 꽂힌다.
새벽 산길
산천초목을 호령하는 소리에 놀라
나는 깊이 잠든
영혼의 눈을 뜬다.
* 전북 고창에 있는 선운사의 암자(도솔암)를 오르며 들었던 새벽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는 내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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