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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

(시) 구절리에 와서 / 남상학

by 혜강(惠江) 2020. 1. 14.

 

<사진 : 구절리 옛 역사>

 

구절리에 와서
 

 

남상학

 

 

바람도 숨을 거두고
산도 마지막 몸을 숨긴다.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
시간도 어디론가 잠적한다.

산새도 날아들지 않는

정지된 시간
낯선 손님처럼
완행열차가 목쉰 소리를 토해내며
산모퉁이를 돌아온다.

방금 기차에서 내린

두어 사람
텅 빈 플랫폼을 지나
대합실을 빠져나갈 뿐
인적 끊긴 길가엔 쓸쓸히
한 무기기, 바위구절초가
자색(紫色) 옷 차려입고

나를 반긴다.

호젓한 곳으로 유폐되어
오랜 적조와 적막에 깃들여진
, 아리따운 넋들
얼굴에 왈칵 눈물이 솟아
흩어진 방울방울
피눈물 같은 슬픔

그리운 사람 모두 떠나고
공복(空腹)이 가득한 거리에
날아들던 산새마저

어디론가 자취 감추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또 어이할 건가?

그윽한 여향(餘香) 잊을 수 없어
허전한 가슴에
바위구절초 한 아름 안고
잠을 청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구절리는 정선군 북면 송천을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구절양장(九折羊腸)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폐광(廢鑛) 이후 사람들이 거의 떠나 호젓하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이 역까지 여객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아우라지역까지 갈 수 있는 레일바이크와 정선군 관광열차인 아리아리호만 운영된다 

 

 

<사진 : 구절리역 근처에서 만난 바위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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