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구절리 옛 역사>
구절리에 와서
남상학
바람도 숨을 거두고
산도 마지막 몸을 숨긴다.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곳
시간도 어디론가 잠적한다.
산새도 날아들지 않는
정지된 시간
낯선 손님처럼
완행열차가 목쉰 소리를 토해내며
산모퉁이를 돌아온다.
방금 기차에서 내린
두어 사람
텅 빈 플랫폼을 지나
대합실을 빠져나갈 뿐
인적 끊긴 길가엔 쓸쓸히
한 무기기, 바위구절초가
자색(紫色) 옷 차려입고
나를 반긴다.
호젓한 곳으로 유폐되어
오랜 적조와 적막에 깃들여진
오, 아리따운 넋들
얼굴에 왈칵 눈물이 솟아
흩어진 방울방울
피눈물 같은 슬픔
그리운 사람 모두 떠나고
공복(空腹)이 가득한 거리에
날아들던 산새마저
어디론가 자취 감추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또 어이할 건가?
그윽한 여향(餘香) 잊을 수 없어
허전한 가슴에
바위구절초 한 아름 안고
잠을 청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구절리는 정선군 북면 송천을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구절양장(九折羊腸)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폐광(廢鑛) 이후 사람들이 거의 떠나 호젓하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이 역까지 여객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아우라지역까지 갈 수 있는 레일바이크와 정선군 관광열차인 아리아리호만 운영된다.
<사진 : 구절리역 근처에서 만난 바위구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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