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307 (시) 성탄에 / 남상학 성탄에 - 남상학 추녀 끝에 날리는 설편(雪片)이 겨울 창가에 아롱지는 저녁 어둠 속에 선형(線形)으로 내리는 빛들의 형상 천사(天使)의 옷은 눈부시다. 하늘의 영광 땅 위의 평화를 위하여 높은 곳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오시는 이 기쁜 소식을 뿌리는 전령(傳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나뭇가지에 환한 눈꽃을 피울 때 누구를 위함인가 땅의 고요를 깨뜨리며 새로이 탄생(誕生)하는 생명의 소리 심령 깊숙히 울리는 고고의 소리에 나는 오랜 침묵(沈默)의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뛰쳐나간다 그리고 아기 울음처럼 내가 다시 태어남을 소리 높이 외쳐 본다. 눈부시게 눈부시게 밝음으로 깨어나는 빛들의 형상 온 누리 어둠이 사라지고 비로소 아름다운 성탄 나무에 축제(祝祭)의 불이 켜진다. 이 밤 당신이 빛으로 오신 날 우리.. 2009. 12. 21. (시) 강설(降雪) / 남상학 강설(降雪) - 남상학 그 날 저녁 별빛이 빛나듯 헐벗은 대지에 눈이 내린다 하이얀 옷깃을 펴고 한 무리의 양무리가 와서 눕고 별들이 와서 눕고 하늘이 다시 포개어 눕고 아낌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하심으로 죽으실 일 하나로 소리없는 갈채로 고요하게 그 날의 당신처럼 오신다 해마다 이맘때면 불 밝힌 뜰을 밟고 와서 영혼의 장지문 열고 천상의 수분으로 나의 마음 포근히 적셔 주노니 칭얼거리는 아기 잠재우듯 잠자는 머리맡에 자애롭게 솜이불을 덮는 하늘 어머니의 자장가 오늘 밤, 흰 옷 입고 꿈에 그리던 당신 나라 백성이 되어 당신을 맞이하듯 강설을 본다. 시집 「비상연습」 2009. 12. 21. (시) 평화의 왕으로 오십시오 / 남상학 평화의 왕으로 오십시오 -성탄절에 드리는 기도 -남상학 주여, 하이얀 눈으로 오십시오 삭막한 십이월의 이마 위에 축 늘어진 모두의 어깨 위에 기적처럼 새벽 첫눈으로 오십시오 강물도 얼어 붙은 오지(奧地) 마른 땅 구석구석 뜨거운 입김으로 손을 녹이며 눈부신 나래로 오십시오. 밤마다 거리마다 근심과 걱정이 불을 켜는 기침 소리 가득한 도성(都城) 이별과 죽음이 글썽거리고 선혈이 낭자한 땅에 어둠을 밝히는 작은 불씨 가슴에 안고 은빛 꽃가루를 뿌리며 무언(無言)의 말씀으로 오십시오 육신의 상처와 기진한 영혼 위에 흰 옷자락 펄럭이며 내리는 치유의 손길로 오십시오 안으로 깊숙히 뿌리 내린 미움 원망과 불신과 교만을 불사르고 태산처럼 깊고 어질게 서로를 품어주고 용서하는 너그러운 사랑의 가슴으로 오십시오 오늘 .. 2009. 12. 21. (시) 그날은 몇 날인가 / 남상학 그날은 몇 날인가 - 남상학 이 자리는 어디쯤인가 돌아보는 날은 불씨 하나 살아 남아서 모진 바람 부대끼며 꺼지지 않는 작은 불꽃이었지 한 방울 물이 모여 흐르는 저만치 강물처럼 오늘이 어제런듯 어둠에서 빛으로 늘 출발뿐인 길이었다 해도 허허로운 바람 소리 영혼의 불꽃은 흔들리고 하늘 꿈꾸는 동안 발자국마다 따라와 친구가 되어 내 곁에 눕는 그대 그림자 별이 눈을 뜨고 새벽 닭 울음으로 타는 불꽃 한 떨기로 비로소 환한 아침이 열리는 아, 그날은 몇 날인가.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8. 11. 27. (시) 빛의 작업 / 남상학 빛의 작업 - 남상학 한밤중에 어부(漁夫)들은 비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불씨를 찾아 짙은 어둠의 바다에서 갓 올라온 물고기 비늘 같은 광채(光彩)를 그물에 걷어 올린다 빛을 낚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눈부시다. 가장 날카로운 곡괭이로 암반을 쪼아내는 광부(鑛夫)들은 빛의 광맥을 따라 한 발짝씩 어둠을 뚫어내고 부싯돌 같은 빛의 원형(原型)을 쪼아낸다 빛을 캐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눈부시다. 살아 있는 의식(意識)을 위하여 길가에서 주운 하찮은 것들을 독특한 연금술(鍊金術)로 구워내는 시인(詩人)들은 외로운 밤을 홀로 앉아 싱싱한 언어를 갈고 닦는다 빛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눈부시다. 무형(無形)의 빛, 그 위대한 빛의 작업(作業)은 몇 년이 걸릴까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8. 11. 27. (시) 라보니어 / 남상학 라보니여 - 남상학 그 옛날 팔레스타인의 현자(賢者)처럼 당신의 위대한 이름을 불러 봅니다. 라보니여 낮게 더 낮게 작게 더 작게 이 땅에 오셔서 큰 스승으로 사신 이여 당신은 찬란한 빛이십니다. 사랑의 빛 용서의 빛 평화의 빛 정의의 빛 진리의 빛 라보니여, 당신과 더불어 한 점 빛이 되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가늘게 아주 가늘게 흔들립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을 그리는 마음이 불타듯이 라보니여, 우리 삶의 어둠 속에서 빛으로 타오르게 하소서 넘치도록 기름을 부어 주소서. * 라보니(Rabboni)는 '선생'을 의미하는 히부리어, '랍비'의 또 다른 표기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8. 11. 27. (시) 자화상 / 남상학 자 화 상(自畵像) - 남상학 하늘 우러러 물빛 눈매를 닮은 학(鶴)이 운다. 아득한 간구(墾求)만이 표적(標的) 위에 나부끼기엔 이제 힘이 겨워 목을 흔들어 학이 운다. 다가갈수록 초조해지고 우러러 볼수록 달아나는 얼굴 빈 공간을 휩싸고 도는 바람 소리에 아픈 울음을 삼키다가도 태어날 때 이미 배운 습성(習性) 때문에 행여나 기다림에 가슴 조이며 하늘에 목을 올려 오늘도 학이 운다.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8. 11. 27. (시) 땅 위에 쓰는 글씨 / 남상학 땅 위에 쓰는 글씨 - 남상학 무리 속에서 당신이 허리 굽혀 땅 위에 글을 쓰듯이 나는 어둠의 골방에 숨어 감히 당신의 흉내를 내어 남몰래 글을 쓴다. 가녀린 새싹처럼 고개를 세운 나의 부끄러운 언어(言語)들은 어느 광명한 날 눈부신 태양 아래 당당한 얼굴로 나설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는 곳에 사랑은 용서하듯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믿음은 증거하듯 잠자는 마음 속 양심을 푸른 생명처럼 일깨울 수 있을까. 돌팔매질 일보 전(一步前)에 하나씩 둘씩 슬그머니 돌을 놓고 돌아가는 기적 아닌 기적을 위하여 싸늘한 겨울 가지 끝에 매어 달린 메마른 나의 언어에는 언제쯤 하이얀 눈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아니면 어느 이른 봄날 화신(花信)이 오는 길목의 잔설을 헤집는 바람 되어 꽃샘 바람이 되어 무리 속에서 당신이 .. 2008. 11. 27. (시) 참회 1 / 남상학 참회 · 1 - 남상학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수없이 말하고 혀 끝으로 수없이 거짓을 보태면서 작은 진실 하나에도 끝내 깃발을 들지 못하면서 비굴하게 살았습니다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천연스럽게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태연스럽게 그렇게 살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듯한 이 거룩한 초연(超然)함 내 잘못을 남의 탓으로 여기면서 모른 척 눈 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입을 열 때마다 거룩거룩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기도는 거침없이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얼굴은 여전히 경건(敬虔)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혀 끝으로 수없이 배반하며 혀 끝으로 수없이 맹세하며 시집 '저만치 그리움이 보이네' 2008. 3. 21. (시) 다시 수난절에 / 남상학 다시 수난절에 - 남상학 죄인이로되 고통을 모르고 멀리 있었네 돌아와 다시 맞는 수난절 십자가 새 형틀 앞에 엎드려 가시관 쓰신 당신 얼굴을 신 포도주를 마시듯 눈물로 보네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당신을 모른다던 나 위하여 다시 죽으러 오신 당신 앞에 이 가책을 어이할까 이 부끄러움 어이할까 연민을 담으신 그 얼굴 뵈오며 가시관 둘레, 또 피어나는 진홍의 보혈로 아픔 속에 키워내는 진주의 눈부심같이 한 줄기 찬란한 은총의 빛으로 가슴 적시네 고난의 땅 끝에서 만나 주시는 주님, 상한 영혼 갈피갈피 사랑으로 어루만지며 쓰디쓴 목마름으로 오늘도 그렇게 서 계신 당신 앞에 눈물 쏟으며 부끄러움인 채로 다시 서네. 해마다 더 큰 사랑 안고 피와 물 흐르는 그 죽음 없었다면 그 사랑 없었다면 ······ 2008. 3. 21. (시) 골고다 연가(戀歌) / 남상학 ● 서사시 골고다 연가(戀歌) - 가상칠언을 중심으로 - 남상학 1 그 날 아침,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성난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가고 있었네. 앞뒤 양 옆에는 창을 든 병사가 서고 긴 행렬(行列)의 뒤쪽에는 가슴 치며 슬피우는 여인들이 있었네. 그 가운데쯤 거대한 십자가 형틀을 멘 이는 가죽 채찍에 맞아 쓰러지고 넘어지고 길고 긴 행렬은 시간의 흐름 따라 흥분의 도(度)를 더해 가고 있었네. 2 예루살렘 밖 골고다 언덕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 오고, 쾅 콰앙 대못질 소리가 빈 하늘을 가를 때 울음 소리, 비웃음 소리, 아우성 소리...... 조롱과 욕설이 뒤섞인 함성(喊聲) 속으로 한 틀의 십자가가 하늘을 치솟고 있었네. 옷 벗긴 알몸에 푸른 멍이 들고 깊은 상처에선 검붉은 피가 흥건히 솟아나고 가시관 .. 2008. 3. 20. (시) 크리스마스 송가(頌歌) / 남상학 크리스마스 송가(頌歌) - 남상학 이천 년 전 유대 고을 작은 베들레헴 말구유에 한 아기 탄생하였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도 아닌 유대왕 헤롯의 아들도 아닌 대제사장의 아들도 아닌 다윗의 자손 이름 없는 비천한 나사렛 목수의 아들 그는 태어날 때부터 겸비하신 분 온유하신 분 숨은 곳에서 은밀히 선을 행하시려 하는 분 가난한 자 병든 자 억울한 자 절망한 자 죄로 얽매인 자의 친구로서 해방을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하늘의 크신 권세 하늘 아버지의 영광을 버리고 너와 나의 구원을 위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친히 찾아오신 분 가난한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평화 병든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위로 억울한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평등 절망한 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소망 죄로 얽매인 자가 누려야 할 진.. 2007. 12. 23. (시) 단풍 / 남상학 단풍 - 남상학 별이 분신 낙하하는 아, 저 섬광(閃光) 그립고 아득한 품에 안겨 제 몸 저리 불태우는가 그대 향한 열애 불꽃처럼 타올라 이승을 밝히는 혼(魂)불이거니 미처 다 사르지 못한 사랑 그대 가슴 뜨겁게 달궈 그 어느 날 부활의 기약으로 한 잎 두 잎 그대 가슴에 아낌없이 스러지리라 흔적 없이 사라지리라. 시집 「그리움 불꽃이 되어」 * 작자의 말 가을이 붉은 단장을 했습니다. 고층아파트에서 문을 열고 내다보면 눈이 환히 열립니다.눈이 부셔서 잠시동안 정신이 혼절할 뻔했습니다. 단풍나무, 은행나무는 그렇다 치더라도 벚나무 잎마저 황홀한 가을 잔치에 참여했습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미처 사르지 못한 사랑을 불태우나 봅니다. 이 가을의 모습을 담고 싶어 급히 디카를 들고 나가 몇 장 사진에 담.. 2007. 11. 8. (시) 내재율(內在律) / 남상학 내재율(內在律) - 남상학 속삭이지 않으나 내 속에 여울지는 소리 번쩍이지 않으나 내 속에 아롱지는 빛깔 바람으로 나의 옷깃을 스치다가 파도로 나를 설레이게 하다가 아침으로 나에게 빛을 주다가 햇빛으로 나를 꽃 피우게 하다가 이토록 뜨거운 열기로 달아 오르게 하는가. 그 어디에도 없으면서 그 어디에나 가득차는 충만(充滿) 그 속에 흔들리는 나의 영혼 해맑은 눈물로 닦아 잠들게 하소서. 시집 「가장 낮은 목소리로」 2007. 10. 4. (시) 우리는 서로에게 / 남상학 우리는 서로에게 - 남상학 어두운 골목을 갈 곳 몰라 머뭇거리는 그대에게 작은 불씨 하나 줄 수 있다면 험한 바윗길 끝없이 걷는 기진한 그대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할 수 있다면 하늘 우러러 기도의 손을 펴고 손짓하는 그대에게 작은 꽃 한 송이 건넬 수 있다면 너와 나의 이웃들은 겨울 살얼음판에서도 꿈의 얼음 조각 입에 물고 따스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리 우리는 서로에게 불빛이 되고 우리는 서로에게 별빛이 되고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되기 위하여 나를 갈고 닦고 키우고 그리고 끝없이 버릴 일이다. 시집「가장 낮은 목소리로」 2007. 10. 4. (시)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 남상학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 T.D의 감격 - 남상학 말로는 안 되네 은밀한 곳 어디선가 발원하여 침묵을 뚫고 들려오는 그윽한 묵시(默示)의 소리 어느 새 마음은 비워지고 이 맑고 깊은 산하에서 다시 태어나는 눈뜸의 기적을, 경이(驚異)로운 신생의 감격을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말로는 안 되네 벅찬 감격 안으로 흐르고 넘쳐 작은 가슴 흥건히 적시고 일시에 나를 휩싸고 도는 엄청난 사태 형언할 길 없이 달아오르는 뜨거운 격정(激情)의 소용돌이를 말로는 다할 수 없네. 차마, 말문 막히는 은총에의 감사를 어찌할까 눈물로 갈고닦은 보석(寶石) 가슴에 안고 그 찬란한 광채(光彩)의 눈부심으로 사랑의 등불 높이 치켜든 어둠 밝힐 일꾼들, 그 신비스런 체험을 나는 다 말할 수 없네. EWTD #21 영성훈련에서 받.. 2007. 1. 27. (시) 가을에 드리는 기도 / 남상학 가을에 드리는 기도 - 남상학 감사합니다, 주님 봄이 누운 산허리에 부활(復活)의 기쁨을 진달래로 피게 하시더니 여름 정원에선 내일을 가꾸는 향기로운 땀방울을 포도송이로 영글게 하시더니 이 가을에는 고뇌의 잡풀 무성한 땅에도 크고 작은 사랑의 알곡 눈부신 열매를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풀잎을 적시는 새벽 이슬 상큼한 아침 바람 포도의 단맛을 빚어내는 뜨거운 햇볕 가슴을 두드리는 힘찬 빗줄기 돌아보면 그 어느 것 하나 주님, 당신의 은총 아닌 것이 없습니다. 넘치는 수확의 기쁨이 빨간 석류로 터지는 오늘 우리들 감사 축제(祝祭)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진정 소리 높여 외칠 것은 당신의 크신 은혜(恩惠)뿐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맺게 하신 주님, 당신 한 분 믿고 감사하게 하소서. 해 저문 들판에 말.. 2006. 11. 4. (시) 추석, 고향 가는 길 / 남상학 추석, 고향 가는 길 - 그것은 본능적인 끌림이었다 - 남상학 집단 최면에 걸린 행렬이 꼬리를 물고 서 있습니다 바다로 나갔던 연어가 수만 킬로를 헤엄쳐 낯익은 강줄기 타고 돌아오듯이 평소보다 백 배, 천 배 고생이 되어도 얼굴에는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손주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나오실 노부모님 걸쭉한 입담으로 해후할 그리운 얼굴들 입에 쩍쩍 달라붙는 고향 음식 그리웠던 마을길 옆으로 대추나무, 감나무 코 흘리며 뛰놀던 널따란 운동장이 눈앞에 삼삼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황금벌판 위로 둥두렷이 솟아오른 한가위 보름달이 보입니다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숙명처럼 추석길은 언제나 설레임으로 떠나는 우리들의 성지순례입니다. 2006. 9. 25. (시) 사랑이여 / 남상학 사랑이여 - 남상학 추운 날 한 줌 입김이거나 손바닥만큼의 햇볕이라도 안개 꽃 눈을 감듯 여린 바람에 흩어지는 눈송이일지라도 그대 있음에 실낱 같은 그리움도 눈부신 하늘인 것을 사랑이여 내가 행복할 때에도 내가 서러울 때에도 어딘가에 함께 있을 우린 새로 한 몸인 것을 사랑인 것을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2006. 9. 5. (시) 바다에 오면 - 어머니날에 / 남상학 바다에 오면 - 어머니날에 - 남상학 바다에 오면 바다는 늘 푸르게 살라 하네 하얀 모래밭에 젖은 옷 벗어 놓고 답답한 가슴 열라 하네. 바다에 오면 바다는 늘 출렁이며 살라 하네 산 넘어 몰려 오는 천둥과 먹구름 맑은 바람에 씻으며 파도치는 가슴으로 살라 하네. 바다에 오면 바다는 늘 낮아지라 이르시네 어둔 밤의 돌개 바람 길 없는 성난 파도 넓은 품에 잠 재우며 큰 바위처럼 침묵하라 이르시네. 저무는 바닷가 노을에 젖어 다정한 음성으로 푸르게 일깨우는 한평생 바다로 살아오신 한결같은 모습의 내 어머니 바다에 오면 인자한 얼굴에 미소 머금고 어머니가 걸어 오네. 어머니날이면 돌아가신 어머니가 늘 그립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날엔 버릇처럼 바다로 간다. 바다에 오면 환영(幻影)처럼 어머니의 모습이 어린다... 2006. 5. 10. (시) 당신의 불꽃 속에 / 남상학 당신의 불꽃 속에 - 남상학 나의 슬픔이 당신의 불꽃에 재가 될 때 나는 자유(自由)를 얻는다. 나 홀로 살아있다는 것은 헤어날 길 없는 속박(束搏)이 되고 아픔이 되고 나는 꽃 한 송이 피울 수 없는 타다가 꺼진 마른 부지깽이 그래도 당신을 위하여 영혼의 뜨락에 불을 지피며 한 줌 연기로 피었다 지고픈 나의 생애여 당신의 불꽃 속에 마지막 육신(肉身)의 옷을 벗는 날 나는 비로소 당신의 그림자로 다시 태어난다. (크리스챤신문 창간 34주년 신인문예상 최우수상 수상작품) 도대체 나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 이 명제는 역사 이래 인간이 추구해 온 질문일 것이다. 내노라 하는 철학자들도 고심해 온 과제 앞에서 이 짧고 간단한 한 편의 시는 기독교 신앙을 추구해온 나의 신앙고백이며 간증이다. 2006. 4. 16. <성시> 구레네 시몬의 노래 / 남상학 구레네 시몬의 노래 - 남상학 그 날 골고다에 이르는 고난의 길이 이처럼 큰 영광일 수 있을까. 검게 탄 얼굴을 하고 멸시와 천대 속에 살아 온 시골뜨기 평생 단 한번의 여행길에서 소문으로 듣고 존경하던 그분을 뵙다니! 호기심이 가득찬 눈으로 긴 행렬의 맨 앞에서 십자가 형틀을 멘 그분을 바짝 따르다가 걷다 쓰러지고 다시 비틀 일어서는 그분의 눈과 마주쳤네. ‘나의 친구, 구레네 시몬이여!’ 그는 나를 조용히 부르고 계셨네. 나는 참으로 얼떨결에 그분의 십자가를 받아지고 골고다 험한 길을 걸었네. 힘쓰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자신하면서 그 때 고마와 하시던 표정이 내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 지울 수 없는 화인(火印)으로 가슴에 찍혀 그분의 포로가 되었네. 그 날, 골고다에 이르는 험한 길이 큰 은혜의 길인.. 2006. 4. 4. <성시> 빌라도의 뜰 / 남상학 빌라도의 뜰 - 남상학 재판은 끝이 났는가 아침 햇살 따가운 빌라도의 뜰에 가야바는 거목(巨木)인 양 버텨 섰고 남루한 옷의 그리스도는 결박된 채 떨고 있다. 무슨 까닭으로 저들의 종교적 시샘에 말려들어야 하는가. 귀찮은 표정의 빌라도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네가 소문난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냐?’ 풍채나 위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갈릴리 사나이는 허름한 자색(紫色) 옷을 입고 가시 면류관 머리에 쓰고 나직이 ‘그렇다’고 했다. 빌라도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 살인 강도 바라바는 사납게 보이기나 하건만 저에게 무슨 악의(惡意)가 있단 말인가. 빌라도는 예수의 석방을 제의하였다. 이 때 가야바의 뜻을 따르는 군중은 가시돋힌 눈을 크게 뜨고 큰 소리로 부르 짖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그를 십자.. 2006. 4. 4. <성시> 대답해 주십시오 - 가룟유다의 고백 / 남상학 대답해 주십시오 -가룟 유다의 고백 - 남상학 당신이 누구인가를 대답해 주십시오. 음산한 갈보리 후미진 골목 길을 가슴 찢는 수인(囚人)으로 걸어 간 당신이 누구인가를 성난 바다 풍랑을 잠재우며 산과 들 어디서나 평범 속에 비범(非凡)을 설교하고 병든 자 낫게 하고 죽은 자 일으키고 이 때 당신은 대망의 메시아 압박 받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출렁이는 파도처럼 가슴을 요동치게 한 당신의 호명(呼名) 그 날로부터 나는 누구보다 열렬하게 당신에게 숭배의 눈길을 보내면서 해방 이스라엘의 빛나는 옥좌(玉座)의 권력과 화려한 영광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가치를 부정하고 당신이 선포한 왕국은 내 눈 끝에서 잡히지 않고 당신의 진리는 영원한 불가사의(不可思議) 우매한 나는 한낱 귀머거리였습니다... 2006. 4. 2. <성시> 겟세마네의 기도 / 남상학 겟세마네의 기도 -남상학 감람산 겟세마네 고적한 산허리를 타고 밤이 내립니다. 돌 던질 만큼의 거리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소리도 죽고 빛도 죽고 칠흑 같은 밤 영혼의 등불 밝혀 깨어 있어야 할 시간인데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는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홀로 가슴 뜯으며 높은 산정의 바위 끝에 앉아 그 날 올려다 본 하늘은 하염없이 까마득한 침묵입니다.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盞)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핏방울로 펑펑 쏟아내는 애절한 기도는 땅을 적시고 모진 바람에 흐느끼는 나무처럼 영혼과 육체가 찢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원(願)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싸늘하게 식은 저들의 가슴을 뜨거운 사랑으로 불 붙일 수 있다면 스러져가는 저들의 생명을 다시 일으킬.. 2006. 4. 2. <성시> 새벽 닭 울 때 - 베드로의 탄식 / 남상학 새벽 닭 울 때 - 베드로의 탄식 남 상 학 당신은 듣는가 새벽 닭이 통곡하는 소리를 뜰에는 인기척 전혀 없고 별들도 모두 잠들었는데 호올로 엎드려 산호빛 진주빛 설움에 겨워 하얗게 토하는 회한의 눈물 바다 나약한 비자(婢子) 앞에서 배신의 가슴 뜯으며 얼굴 묻고 흐르는 눈물 하염없이 탄식한다. 당신은 듣는가. 새벽 닭이 홰치는 소리를 뒤늦게야 뉘우치는 어리석음 나목(裸木)처럼 손을 펴고 캄캄함 밤 천 길 어둠의 심연에서 가슴 뜯는 몸부림 천 길 만 길 깊은 잠 속으로 떨어져 악몽을 꾸다가 동트는 새벽 비로소 어둠을 터는 날개짓 부시시 눈을 뜨는 영혼 눈물 씻는 새벽이여! - 시집 '가장 낮은 목소리로' 2006. 4. 2. <성시> 최후의 만찬 / 남상학 최후의 만찬 - 남상학 1 유월절 만찬을 나누는 밤은 유난히 엄숙한 분위기였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르시더니, 겉옷을 벗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손수 저희 발을 씻겨 주실 때 당신은 차라리 피 흘리는 한 마리 어린 양이었습니다. 2 잠시 정결 의식을 치루시고 떡을 떼어 하늘 우러러 축사하신 뒤에 저희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또 잔을 들어 사례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런데도 어리석은 저희는 그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3 이 자리에는 우리 동료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인.. 2006. 4. 2. (시) 예루살렘 입성(入城) / 남상학 예루살렘 입성(入城) 남상학 감람산 언덕 낯익은 마을 돌아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목 싱그런 아침 바람이 가로수 잎을 흔든다.. 옛 조상(祖上) 적 예언의 꽃씨 하나 간절한 염원의 기도로 영글어 환희의 열매로 터지려는가. 거룩한 성으로 이어진 꽃길을 겉옷을 벗어 단장하고 만왕의 왕 당신은 나귀 타고 오시는데 함께 지내온 제자들 은밀히 따르던 남자와 여자들 모두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종려(棕櫚) 가지 흔들어 환호한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 허리에 찬 검(劍) 없으나 신변을 호위하는 병정 없으나 울려 퍼지는 나팔소리 없으나 화려한 제복의 황금마차 없으나 시온의 딸들아, 가나 혼인 잔치에서 기쁨의 잔(盞)을 들듯 축배의 진한 포도.. 2006. 4. 1. (시) 새해는 눈부심으로 / 남상학 새해는 눈부심으로 - 남상학 새해 아침 출렁이는 바다 앞에 서면 시간을 거스를 아무도 우리에겐 없듯이 바다의 눈부심에 눈돌릴 이 우리에겐 없나이다. 일렁이는 바다의 심장처럼 태고적부터 더욱 새로와지는 시간 쉬임없이 약동하는 생명의 숨결로 태양은 눈부신 광채를 거느리고 와서 신부에게 입맞춤하는 신랑처럼 당당하게 솟아오릅니다. 좌절과 시름의 옷을 훌훌 벗고 열린 바다를 향하여 가슴 열고 황금의 빛보라 말갈기로 날리며 솟거늘 지난 날 욕망의 물굽이 높아 슬프고 애잔한 노래 부르던 이들도 다시금 포구 밖으로 슬기의 배를 띄우나니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푸른 생동하는 물결 위를 사랑과 소망의 눈빛으로 다만 바라보게 하소서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희망의 노를 저어 왁자지껄 출렁이게 하소서. 부지런한 해녀가 바다 속 .. 2006. 1. 1. (시) 외양간 풍경 / 남상학 (시) 외양간 풍경 - 남상학 외양간 문에 눈부신 별빛이 쏟아져 내린다 어미소가 고개를 돌려 두 눈을 끔벅거리며 밖을 내다본다 한 작은 거사가 오늘 저녁 귀한 손님으로 들었다 어디선가 나직하게 들려 오는 노랫소리 - 하늘에는 영광 - 땅에서는 평화 멀리서 들려오는 은은한 소리 외양간에 축복이 내렸다. 2005. 12. 12. 이전 1 ··· 7 8 9 10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