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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

(시) 골고다 연가(戀歌) / 남상학

by 혜강(惠江) 2008. 3. 20.

 

 

● 서사시

 

 

골고다 연가(戀歌)

 

- 가상칠언을 중심으로

 

 

 

- 남상학

 

     

 

 1

 

그 날 아침,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성난 무리들이 구름처럼 몰려가고 있었네.

앞뒤 양 옆에는 창을 든 병사가 서고

긴 행렬(行列)의 뒤쪽에는

가슴 치며 슬피우는 여인들이 있었네. 

그 가운데쯤 거대한 십자가 형틀을 멘 이는 

가죽 채찍에 맞아 쓰러지고 넘어지고

길고 긴 행렬은 시간의 흐름 따라 

흥분의 도(度)를 더해 가고 있었네.  

 

 2

 

예루살렘 밖 골고다 언덕에

스산한 바람이 불어 오고,

쾅 콰앙 대못질 소리가 빈 하늘을 가를 때

울음 소리,  비웃음 소리,  아우성 소리...... 

조롱과 욕설이 뒤섞인 함성(喊聲) 속으로

한 틀의 십자가가 하늘을 치솟고 있었네. 

옷 벗긴 알몸에 푸른 멍이 들고

깊은 상처에선 검붉은 피가 흥건히 솟아나고

가시관 쓴 머리에는 선혈(鮮血)이 얼룩지고

살점을 저미는 아픔이 안으로 스미는데

그리스도 예수여, 

당신은 어떻게 인내할 수 있었는가. 

당신은 어떻게 태연할 수 있었는가.       

 

 3

 

불모의 구릉(丘陵) 너머 깔리는 어둠

아침 햇살은 형틀 뒤로 숨고 

세찬 바람 스산한 언덕으로 몰아치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웃음 소리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다시 짓는다고 한 자여,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스스로를 구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1) 

골수 마디마디 스미는 고통을 주체할 수 없는데 

에워싸는 비애(悲哀)를, 뜨물 같은 치욕(恥辱)을

당신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는가.

당신은 어떻게 다스릴 수 있었는가.  

 

 4

 

몰약을 탄 포도주를 거절하고

괴로움을 스스로 견디신 당신, 

굽어보는 얼굴에 광채가 나고

연민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아버지여, 저들을 사(赦)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2) 

육신이 찢기운 자신의 아픔보다

저들의 무지(無知)가 안타까와 용서를 빌더니, 

죄인의 회개를 반기시며 위로의 말을 주었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3)

나사렛 미천한 목수의 아들

당신은 어떻게 용서할 수 있었는가.

당신은 어떻게 신(神)일 수가 있었는가. 

 

 5

 

요란한 함성이 하늘을 찌르고

먼 발치 초라한 여인들이 숨죽여 흐느끼는데

가슴 뜯으며 남몰래 통곡하는 어머니, 

십자가 발 밑에 아들의 임종(臨終)을 바라보는 어머니, 

뜨거운 눈물이 돌아 나직하게 불러 보는 다정한 음성

‘어머니,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4)

희생으로 살아 오신 어머니를 위로하고

‘보라, 네 어머니라’5)

남은 여생(餘生)을 제자 요한에게 당부하였네. 

 

 6

 

시간이 흘러 어느 덧 한낮인데

홀연히 먹구름 하늘을 뒤덮고

순간 땅 위에는 고요가 흐르는데

한 소리 비통하게 하늘을 찢었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6)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절정(絶頂)

하늘로부터의 인연이 끊어지듯

깊은 늪 속으로 가라앉는 절망(絶望)이여. 

그 때 하늘은 형틀 위에서 울부짖고

그 때 바람은 계곡을 따라 흐느끼고

그 때 땅속은 뜨거운 울분으로 달아오르다가 

 

 7

 

최후의 결전(決戰)이 끝나려는가.

‘내가 목마르다’ 7) 

해면(海綿)에 적신 포도주 향기에 입술 축이고,

무리를 둘러보며 말했네.

‘다 이루었다’ 8)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인가! 

절대의 고통을 통하여 얻은 구원의 역사여!

인류 구속(救贖)의 대서사시여! 

에덴의 하늘 밑 소담스런 열매를 따던 날부터

최대의 배려(配慮)이었던 그 일이 

비로소 성취된 환희여!

그건 당신의 전생애에 걸쳐 준비된 위업이었네.

 

 

 8

 

나사렛 동네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서른 셋 젊은 나이에 하늘 뜻 순명(順命)하여

거룩한 일 이루고 

전신에 몰려오는 피곤을 

아버지 품에서 풀고 싶었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9) 

하늘 우러러 마지막 간구를 드리시고 운명(殞命)하셨네. 

그날 골고다 언덕 위

하늘로 치솟아 오른 한 틀의 십자가는 

사랑이었네.

거룩한 사랑이었네

 

 

 

(주) 1) 마 27 : 40, 2) 눅 23 : 34, 3) 눅 23 : 43, 4) 요 19 : 26

5) 요 19 : 27, 6) 마 27 : 46, 7) 요 19 : 28, 8) 요 19 : 30, 9) 눅 23 : 4

 

 

 

<저자 주> 이 작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고난을 묵상하며 사실적으로 정리한 서사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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