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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

<성시> 빌라도의 뜰 / 남상학

by 혜강(惠江) 2006. 4. 4.

 

                           

<사순절 묵상 자료>

  

빌라도의 뜰


- 남상학

 



재판은 끝이 났는가
아침 햇살 따가운 빌라도의 뜰에
가야바는 거목(巨木)인 양 버텨 섰고 
남루한 옷의 그리스도는
결박된 채 떨고 있다.

무슨 까닭으로 저들의
종교적 시샘에 말려들어야 하는가. 
귀찮은 표정의 빌라도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네가 소문난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냐?’ 

풍채나 위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초라한 갈릴리 사나이는
허름한 자색(紫色) 옷을 입고
가시 면류관 머리에 쓰고
나직이 ‘그렇다’고 했다.

빌라도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
살인 강도 바라바는
사납게 보이기나 하건만
저에게 무슨 악의(惡意)가 있단 말인가. 
빌라도는 예수의 석방을 제의하였다. 

이 때 가야바의 뜻을 따르는 군중은
가시돋힌 눈을 크게 뜨고
큰 소리로 부르 짖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어디선가 이런 소리도 들렸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라’ 
노련한 정치가 빌라도는
죄없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죄 없이 쓰러지는 자는
말이 없고,
제단 위의 제물 둘레에
열광하는 환호 소리
  
하찮은 지상의 시간을 위하여
권세와 힘 앞에서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양심(良心)의 소리

물을 떠다 손을 씻은들 무엇하리.
햇빛 따가운 빌라도의 뜰에
재판은 끝이 났는데......

 

  

 

<수록> - 시집 "낮은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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