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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자작시(自作詩)

(시) 땅 위에 쓰는 글씨 / 남상학

by 혜강(惠江) 2008. 11. 27.

 

 

<시>

 

땅 위에 쓰는 글씨 

 

 

- 남상학

 

 

 

무리 속에서 
당신이 허리 굽혀 
땅 위에 글을 쓰듯이 
나는 어둠의 골방에 숨어 
감히 당신의 흉내를 내어 
남몰래 글을 쓴다. 

가녀린 새싹처럼 고개를 세운 
나의 부끄러운 언어(言語)들은 
어느 광명한 날 
눈부신 태양 아래 
당당한 얼굴로 나설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는 곳에 
사랑은 용서하듯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믿음은 증거하듯 
잠자는 마음 속 양심을 
푸른 생명처럼 일깨울 수 있을까. 

돌팔매질 일보 전(一步前)에 
하나씩 둘씩 
슬그머니 돌을 놓고 돌아가는 

기적 아닌 기적을 위하여 
싸늘한 겨울 가지 끝에 매어 달린 
메마른 나의 언어에는 
언제쯤 하이얀 눈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아니면 어느 이른 봄날 
화신(花信)이 오는 길목의 
잔설을 헤집는 바람 되어 
꽃샘 바람이 되어 
무리 속에서 당신이 허리 굽혀 
정성스럽게 땅 위에 글을 쓰듯이 

돌을 놓고 떠난 자리에 
이윽고 새 누리 꽃망울이 벙그는 
물 오른 글을 쓸 수 있을까.

 

 

 

 <수록>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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