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땅 위에 쓰는 글씨
- 남상학
무리 속에서
당신이 허리 굽혀
땅 위에 글을 쓰듯이
나는 어둠의 골방에 숨어
감히 당신의 흉내를 내어
남몰래 글을 쓴다.
가녀린 새싹처럼 고개를 세운
나의 부끄러운 언어(言語)들은
어느 광명한 날
눈부신 태양 아래
당당한 얼굴로 나설 수 있을까.
용서할 수 없는 곳에
사랑은 용서하듯
증거할 수 없는 곳에
믿음은 증거하듯
잠자는 마음 속 양심을
푸른 생명처럼 일깨울 수 있을까.
돌팔매질 일보 전(一步前)에
하나씩 둘씩
슬그머니 돌을 놓고 돌아가는
기적 아닌 기적을 위하여
싸늘한 겨울 가지 끝에 매어 달린
메마른 나의 언어에는
언제쯤 하이얀 눈꽃을 피울 수 있을까.
아니면 어느 이른 봄날
화신(花信)이 오는 길목의
잔설을 헤집는 바람 되어
꽃샘 바람이 되어
무리 속에서 당신이 허리 굽혀
정성스럽게 땅 위에 글을 쓰듯이
돌을 놓고 떠난 자리에
이윽고 새 누리 꽃망울이 벙그는
물 오른 글을 쓸 수 있을까.
<수록> 시집 '하늘을 꿈꾸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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