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묵상>
최후의 만찬
- 남상학
1
유월절 만찬을 나누는 밤은
유난히 엄숙한 분위기였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이르시더니,
겉옷을 벗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손수 저희 발을 씻겨 주실 때
당신은 차라리 피 흘리는 한 마리 어린 양이었습니다.
2
잠시 정결 의식을 치루시고
떡을 떼어 하늘 우러러 축사하신 뒤에
저희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또 잔을 들어 사례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런데도 어리석은 저희는 그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3
이 자리에는 우리 동료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인자를 파는 자에게는 화(禍) 있으리,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떡그릇에 손을 넣는 유다를
연민의 눈길로 쳐다보시며
회개를 재촉하고 계셨습니다.
이미 돌아선 마음을 되돌릴 수 없어
주님은 찢어지는 아픔으로 울고 계셨습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사랑의 만찬’이었습니다.
4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르신 분부 받들어
떡을 떼며 잔을 나누는 날이면
우린 영락없이 무리 앞에 서서
입맞춤하는 유다인 것을 어찌할까요.
모두를 내어 준 그 큰 사랑 앞에 서면
저희 모습 너무 작고
초라하게 보임을 어찌할까요.
아낌없이 내어주는 위대한 힘 앞에서
우린 멍청한 바보일 뿐입니다.
― 나의 영원하신 주님,
끝없는 용서를 주십시오.
<수록> 시집 '가장 낮은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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