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裸木)
남상학
주여, 지금 저는
늦은 겨울 빈 들에 서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햇볕이
앙상한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시간을 줍고 있는데
겨울을 채 건너지 못한 새들이
얼어붙은 하늘을 기웃거리며
어디론가 황급히 길을 떠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찬 바람 불어
배고픈 영혼(靈魂)이 길게 흐느끼고
나목(裸木)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마른 갈대밭에서 처량하게 웁니다.
그 소리에
부딪히며 떠밀리며 살아온
삶의 자국이 투명한 하늘에 선명하고
칼날 같은 빙판(氷板) 위에
전신을 몰아세우는 바람이
오히려 나를 귀 뜨이게 함은 웬일입니까.
주여, 이 시간
먼 곳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침묵(沈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눈물 뒤에 빛나는 보석(寶石)을 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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