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추억
- 세검정에서
남상학
만원버스를 타고
자하문 밖 고개를 넘으면
봄 아지랑이 춤추는 언덕 너머
물오른 나무들이 새빨갛게
불타고 있었네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
가지 뒤에 숨어
얼굴을 붉히던 그대
버스 뒤 창문의 글귀*를 바라보며
'우린 몇이나 낳을까?' 말해 놓고
당황하던 얼굴처럼
꽃가지 그늘 사이
출렁이며 넘실거리던
햇살 속으로
‘러브 미 텐더 러브 미 트루’
감미로운 선율이 어느새
잘 익은 복숭아 단물이 되어
뜨거운 가슴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네
겉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은밀한 내면을 기웃거리면서
복사꽃으로 피우던 자잘한 사랑 이야기
티 없이 맑은 눈은
하늘의 푸른 샘물을 종일토록
퍼 올리고 있었네
복사꽃 화사하게
만건곤한 봄날 세검정에서
*글귀 : 60년대 초반에는 산아제한을 홍보하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포스터를
버스 창문에 붙이던 시절이었다.
'문학관련 > - 자작시(自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 저녁강 / 남상학 (0) | 2020.01.06 |
---|---|
(시) 유월의 뻐꾸기 / 남상학 (0) | 2020.01.06 |
(시) 오늘은 기쁜 날(성탄) (0) | 2020.01.05 |
(시) 하늘과 새(비상) (0) | 2020.01.05 |
(시) 끝 없는 노래(감사) (0) | 2020.01.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