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강
-양수리에서
남상학
강물이 주름살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늙은 어미가 칭얼거리는 어린것을 달래듯 주변 산들을 가슴에 품고 저무는 하루를 못내 아쉬워하면서 긴 그림자를 끌고 앉아 시름에 잠겨 요령을 흔들고 있다.
하얀 목덜미를 감싸고 뽀얀 물안개를 피워내던 한여름 축제의 시간도 끝나고 종일 물살을 가르며 물장구치던 바람도 사랑의 숨결을 갈대숲에 남겨두고 하루살이처럼 어디론가 쓸쓸히 사라져 갔다.
텅 빈 들판을 가로질러 성긴 빗살로 부서지던 저물녘 햇살 속으로 추억을 가득 실은 중앙선 열차가 지나가고 일몰의 무게가 힘겨운 듯 허리 휜 노인이 허허로운 들판에 홀로 서서 흐르는 강물의 한 자락을 부여잡고 있다.
이 무렵 부산하게 울어대던 떼까치들은 앙상한 가지 끝에 머문 적막을 쪼며 삶이란 마침내 흐르는 강물 같은 것이라고 또는 그 강물 위에 잠시 부서지는 햇살 같은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노을 비낀 하늘로 날아간다.
갈대숲 어디선가 청둥오리 떼 물살을 가르며 저녁 강을 유유히 거슬러 오른다. 아직도 못다 나눈 자잘한 사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가 한동안 서로의 입술을 비비다가 줄지어 사색의 깊은 물 속으로 자맥질한다.
강은 흘러 흘러 강으로 이어지고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다고 말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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