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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하급반 교과서 / 김명수

by 혜강(惠江) 2020. 4. 23.


<사진 : 획일화된 북한 수업 장면)



하급반 교과서

 


- 김명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 시집 하급반 교과서(1983)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교과서를아무 생각 없이 따라 읽는 아이들을 통하여,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어 획일화된 사회에서 무비판적인 삶을 사는 민중들과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시적 화자인 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아이들은 한 아이가 읽는 대로 청아하고 꾸밈없는 목소리로 따라 책을 읽는다. 이 시의 화자는 한 아이를 따라 교과서를 맹목적으로 읽는 아이들을 보며 쓸쓸함을 느끼며 안타까워한다.

 

 1연에서 화자는 교과서를 맹목적으로 따라 읽는 하급반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책을 읽어주는 한 아이는 민중의 지도자이며, 책을 따라 읽는 아이들은 민중들이다. 그리고 하급반 교과서는 비판성이 결여된 민중들의 생활 규범이요, 전범(典範)이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는 순진무구하나 무비판적인 모습을 가리키며, ’아니다 아니다혹은 그렇다 그렇다라는 표현은 주체성이 없다는 뜻으로, 비판 의식과 주체성이 없는 교육, 획일적인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아니다''그렇다'라는 수용과 거부라는 기본적 가치 판단인데, 민중들은 자기 스스로 '아니다' 또는 '그렇다'를 표명하지 않고 맹목적 추종하니 권력자의 측면에서 보면 다스리기도 쉽고, 민중의 처지에서도 주체적으로 고뇌할 이유가 없어 편하다는 표현이다.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라는 표현은 획일화되어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본 화자는 외우기도 좋아라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라고 반복하여 반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비판성과 풍자성을 강화하고 있다.

 

 2연의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이여에는 교과서를 맹목적으로 읽는 아이들의 모습에 대한 화자의 비판적 의식을 우리나라 아이들로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여 획일화된 모습에 대해 안타까움을 배가하고 있다.

 

 이 시는 교과서 따라 읽기를 통하여 획일화된 사회, 전제성이 지배 논리가 되는 사회의 실상을 비판하는 시로서, 교과서를 따라 읽는 아이들의 모습을 읽으면 ~ 읽는다’, ‘읽으니 ~ 읽는다’. ‘읽으니 ~ 따라서 읽는다등의 시어를 계속 반복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지배 권력에 의해 통제사회에서의 맹목적 추종을 강조하여 드러내고 있다. 또 하나,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는 율격이다. 4음보 격의 규칙성을 띠는 이 운율은 매우 대중적이고 단순하며 일정한데, 이것은 시의 내용과 일치한다. 민중의 바보스러움, 사회의 저급 차원에 걸맞게 운율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점도 이 시의 우수성을 돕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작자 김명수(金明秀, 1945 ~ )

 

 시인, 경북 안동 출생.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수학했다. 1977서울신문신춘문예에 시 <월식>, <세우>, <무지개>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1976년 김창완, 권지숙, 정호승, 이종욱, 하종오, 김명인 등이 주도한 반시동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시적 대상을 이루는 당대의 어두운 현실을 시인의 날카로운 직관을 통해 꿰뚫어 봄으로써 그 의미와 실체를 또렷하게 부각시켰다.


  시집으로 월식(1980), 하급반 교과서(1983), 피뢰침과 심장(1986), 침엽수 지대(1991), 보석에게(1996), 아기는 성이 없고(2000), 가오리의 심해(2004), 여백(2009), 곡옥(2013) 등을 간행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아동문학에 관심을 두면서 창작동화집 해바라기 피는 계절등 많은 동화집을 냈다. 그리고, 시비평집 시대상황과 시의 논리》』(201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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