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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웃은 죄 / 김동환

by 혜강(惠江) 2020. 4. 23.






웃은 죄

 


- 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래기에 샘물 떠주고

그리고는 인사하고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 신세기(1938. 3)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에는 남녀의 구별이 엄격한 사회에서 이성에 대한 순박한 감정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웃은 일은 잘못이 아니라는 재치 있는 항변(抗辯), 순박한 시골 처녀의 부끄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예로부터 시골 우물가는 낯선 남녀가 마주치는 가장 자연스러운 장소였다. 한 처녀가 물을 긷고 있는데, 낯선 남자가 찾아와 길을 묻고 그리고 물을 청한다. 처녀는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냉수 한 사발을 건네주고 달게 마시는 남자를 곁눈질하다가 사내의 눈과 마주친다. 처녀는 순간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고 수줍은 듯이 생글 돌아선다. 사내 또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감사의 말을 건넨 후 그 자리를 떠난다. 얼굴을 살짝 돌리고 물그릇을 돌려 받은 처녀의 마음에는 형언할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이 남는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을 눈치 챘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인다. 말도 많은 조그만 시골 마을, 괜한 소문이 퍼지면 놀림감이 될 것은 너무나 뻔한 이치다. 그래서 처녀는 남이 남들이 오해할까 봐 남이 뭐라기 전에 변명을 한다. ‘평양성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라고. 처녀는 물 한 모금 청하기에 물을 떠 주고, 인사하기에 웃으며 받은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는 완곡한 항변이다. 평양성에 해가 안 뜨는 일이 일어나도 자신은 결백하다는 주장이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을 가정하여 자신의 결백을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이 강하면, 오히려 긍정이 되는 법, 숨기려 했던 순박한 감정이 부정을 통해 오히려 드러나며 해학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 종래에는 까르르터지는 아낙네의 웃음이 들릴 것이고, 그럴수록 처녀의 얼굴은 붉어져 어쩔 줄 모르는 장면이 떠오른다. 시골 우물가에서 가끔 있을 수 있는 풍경이다 


 시인 주요한(1900~1979)은 파인을 새로 나타난 민요시인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여기 나타난 소녀의 생활 태도가 적극적이요 긍정적이며, 외향적이요 대담한 것은 요연(瞭然)하다. 낯설은 행객(行客)에 대하여 물음에 대답하고 샘물을 떠주고, 웃음으로 인사하는 등의 일동일정(一動一靜)이 전통적인 미덕이라고 할 수줍음이나 자제(自制)나 남녀부동석(男女不同席)의 엄격한 규범을 초월하였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인간주의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이런 처녀의 감정이 3음보 민요조의 운율을 타고, 반어적 표현을 통해 남녀의 구별이 엄격한 사회 풍조를 간접적으로 꼬집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서정시 안에 담은 서사성

 

 이 시의 작자인 파인 김동환은 <국경의 밤>으로 널리 알려진 서사 시인이다.  <웃은 죄>는 보기 드물게, 몇 편 안 되는 서정시에 속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도 파인의 서사시적 특성을 읽을 수가 있다. 서사문학이 이야기를 풀어 작품화한 것이라면, <웃은 죄>는 불과 다섯 행 미만의 단시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서사문학의 특성을 압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야기 구조인 묻고 대답하는 형식요청하고 들어주는 형식이라든지, 마지막 평양성에 해 안 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의 두 행이 남녀간의 사랑이 싹튼다는 식의 해석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적 서사문학의 특성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자 김동환(金東煥, 1901~ ? )

  시인. 아호는 파인(巴人). 함경북도 경성 출신. 동아일보사(1925), 조선일보사(1927) 기자를 지냈고, 1929년 종합 잡지 삼천리를 자영하였으며, 1938년에는 그 자매지로 문예지 삼천리문학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941년 이후 친일 행각을 하였다

 

 그의 문단 활동은 1924금성에 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를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뒤 여러 잡지와 신문에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시집 국경의 밤(1925)과 제2시집 승천하는 청춘(1925) 2권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주요한·이광수와 함께 제3시집 삼인시가집(1929)을 펴냈고, 이어 제4시집 해당화(1942)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 그가 납북된 후 최정희가 유고를 모아 펴낸 제5시집 돌아온 날개(1962)가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국경의 밤, 북청 물장수, 산 너머 남촌에는등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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