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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야초(野草) / 김대규

by 혜강(惠江) 2020. 4. 22.

 

 

 

 

야초(野草)

 

- 김대규

 

 

돈 없으면 서울 가선

용변도 못 본다

 

오줌통이 퉁퉁 뿔어 가지고

시골로 내려오자마자

아무도 없는 들판에 서서

그걸 냅다 꺼내 들고

서울 쪽에다 한 바탕 싸댔다

 

이런 일로 해서

들판의 잡초들은

썩 잘 자란다

 

서울 가서 오줌 못 눈 시골 사람의

오줌통 뿔리는 그 힘 덕분으로

어떤 사람들은 앉아서 밥통만 탱탱 뿔린다

 

가끔씩 밥통이 터져나는 소리에

들판의 온갖 잡초들이 귀를 곤두세우곤 했다

 

- 시집 흙의 노래(1995) 수록

 

 

시어 풀이

*용변(用便) : 대변이나 소변을 봄.

*싸댔다 : ’똥이나 오줌을 눴다는 뜻의 속된 말

*뿔리는 : ’불리는의 사투리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서울이라는 비정한 공간을 대상으로 하여 사회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작품으로, 농촌의 생명력에 기생하여 풍요를 누리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 비판의 초점은 빈부의 차로 인해 발생한 계층 구조에 두어져 있다. 시골과 서울이라는 공간의 대비를 통해 가난한 자와 부자의 이분화된 우리 사회의 극명한 모순을 하나의 에피소드로 극화되고 있으며, 조롱조의 어조로 그것을 강화하여 비판한다.

 1~2연은 서울에서 해결하지 못한 기본적인 욕구를 분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서울'은 자본주의의 실상이 확연히 드러나는 곳이며, 시골은 그 반대로 설정되어 있다. 돈 많은 사람은 서울에 모여 있고 상대적으로 시골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 돈이 없으면 서울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도 해결할 수 없는 비정한 곳이다.

 2연에서는 서울에서 해결하지 못한 기본적 욕구를 분출하며 비판을 하고 있다. '오줌통이 퉁퉁 불어가지고의 주체는 시골 사람이지만, 이 시구로 볼 때 서울 사람들에 대해 야유를 퍼붓는 것이다. '서울 쪽에다 한바탕 싸대'는 배뇨 (排尿) 행위는 욕설과 야유 섞인 가장 원초적인 비판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오줌 덕분에 3연의 들판의 잡초인 야초(野草)는 잘도 자라고, 더불어 곡식도 잘 자란다고 역설적인 야유를 보낸다.

 4연에서는 이렇게 시골에서 자란 곡식으로 밥을 채우는 서울 사람들을 계속해서 비판한다. 앉아서 밥통만 탱탱 불리는 어떤 사람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물질적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며, 이들은 오줌통 불리는 그 힘 덕분으로, 농민의 희생에 기생하여 물질적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5연에서는 서울에서 들려오는 밥통이 터져 나는 소리’, 즉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모순에 들판의 온갖 잡초들이 귀를 세우곤 한다.’ ‘귀를 곤두세우곤 한다는 시골의 반응은 앞의 비판이 거칠고 감정적인 것에 비하여 다소 누그러진 관심과 긴장정도의 것이지만, 이 역시 또 다른 비판의 한 방법임은 틀림없다.

 이 시는 현실 참여적 성격을 띠는 작품이다. 화자는 처음부터 시골과 서울이라는 공간적인 대비를 통해 시골 사람과 서울 사람으로 이분화된 현실을 비판한다. 특히, 농촌의 희생에 기생하여 배를 불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줄기차게 직설적인 야유와 조롱으로 표현함으로써 현실 세계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작자 김대규(金大圭, 1942 ~2018)

 시인, 경기 안양 출생. 1960년 시집 영의 유형을 발표하여 등단했다. 이어 흙의 사상(1976), 흙의 시법(1985)을 펴내 흙의 시인으로 불렸으며, 끝까지 고향 안양에 터를 잡고, 시 창작에 몰두해 왔다.

 그 외의 시집으로 어머니, 오 나의 어머니(1986), 별이 별에게(1990), 작은 사랑의 노래(1990), 하느님의 출석부(1991), 짧은 만남 오랜 이별(1993), 어찌 젖는 것이 풀잎뿐이랴(1995). 흙의 노래(199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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