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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다리 저는 사람 / 김기택

by 혜강(惠江) 2020. 4. 22.


<사진 출처 : 네이버블로그 'w wow w89'> 



다리 저는 사람

 

 

  - 김기택

 

 

꼿꼿하게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춤추는 사람처럼 보였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그는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그때마다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그 요란하고 기이한 걸음을
지하철 역사가 적막해지도록 조용하게 걸었다.
어깨에 매달린 가방도
함께 소리 죽여 힘차게 흔들렸다.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어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기둥이 되어 우람하게 서 있는데
그 빽빽한 기둥 사이를
그만 홀로 팔랑팔랑 지나가고 있었다.
 
- 시집 사무원(1999) 수록

 


시어 풀이

*역사(驛舍) : 역으로 쓰는 건물.

*팔랑팔랑 : 바람에 가볍고 힘차게 계속 나부끼는 모양(의태어).

*우람하게 : 기골이 장대하게.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지하철역에서 건강한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는 다리 저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다리 저는 사람의 생동감과 건강한 삶의 태도를 통하여 경직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하고 있다.


 시적 화자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시적 대상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이 시는 지하철 역사 안에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장애인 한 사람이 걸어가는 풍경을 묘사한다. 그 풍경 묘사에서 시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한쪽은 움직이고 있고, 한쪽은 정지되어있다. 움직이는 쪽은 오히려 장애인이다. '춤추는 사람처럼', ‘앉았다 일어서듯 다리를 구부렸고’, ‘윗몸은 반쯤 쓰러졌다 일어났다’, '팔랑팔랑 지나가고 있었다.'는 표현들은 장애인의 움직임이 보여주는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전해 준다.


 그 아름다운 생동은 '못 걷는 다리 하나를 위하여/ 온몸이 다리가 되어 흔들어 주고 있었다.' 라는 표현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픈 다리를 위해 온몸이 그 아픔을 함께하며 다리가 되어 준다는 표현의 이면에는 절름발이로 대변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우리 모두가 그의 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화자의 인식이 스며 있다. 또한 간강한 사회에 대한 화자의 소망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장애인과는 달리, 비장애인은 모두 기둥이 되어 우람하게 서 있는정지된 모습이다. 오히려 육체적으로 정상인 사람들의 모습은 경직되어 있다.

 

 이 시는 대조적 이미지를 동원하여 대상의 모습을 아주 차분하게 사람들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여기서 우리는 장애인을 새롭게 보게 되고,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진정으로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인식에 반성을 요구한다.

 


작자 김기택(金基澤, 1957 ~ )

 

 시인. 경기 안양 출생. 1989한국일보신춘문예에 <가뭄><꼽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일상과 사물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이를 특유의 묘사와 비유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집으로 태아의 잠(1991), 바늘구멍 속의 폭풍(1994), 사무원(1999), (2005), (200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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