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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감자 먹는 사람들 / 김선우

by 혜강(惠江) 2020. 4. 26.





감자 먹는 사람들

 

- 김선우

 

어느 집 담장을 넘어 달겨드는*

이것은,

치명적인* 냄새

식은 감자알 갉작거리며* 평상에 엎드려 산수 숙제를 하던, 엄마 내 친구들은 내가 감자가 좋아서 감자밥 도시락만 먹는 줄 알아. 열한 식구 때꺼리*를 감자 없이 무슨 수로 밥을 해대냐고, 귀밝은 할아버지는 땅 밑에서 감자알 크는 소리 들린다고 흐뭇해 하셨지만 엄마 난 땅속에서 자라는 것들이 무서운데, 뿌리 끝에 댕글댕글한* 어지럼증을 매달고 식구들이 밥상머리*를 지킨다 하나둘 숟가락 내려놓을 때까지 엄마 밥주발엔 숟가락 꽂히지 않는다

어릴 적 질리도록 먹은 건 싫어하게 된다더니, 감자 삶는 냄새

이것은,

치명적인 그리움

 

꽃은 꽃대로 놓아두고 저는 땅 밑으로만 궁그는,*

꽃 진 자리엔 얼씬도 하지 않는,

열한 개의 구덩이를 가진 늙은 애기집  

 

             -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2003) 수록

 

시어 풀이

*달겨드는 : ‘달려드는의 방언

*치명적(致命的): 생명을 위협하는. 또는 그런 것이 한.

*갉작거리다 : 날카롭고 뾰족한 끝으로 바닥이나 거죽을 자꾸 문지르다.

*때꺼리 : ‘식량의 강원도 방언

*댕글댕글하다 : 책을 막힘없이 줄줄 잘 읽는 데가 있다.

*밥상머리 : 차려 놓은 밥상의 한쪽 언저리

*궁그는 : ‘구르는의 방언

*애기집 : ‘아기집의 방언, ‘자궁을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가난한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먹었던 감자를 매개로 하여, 가난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있어 따뜻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강원도에서 태어나서 강원도에서 자라난 시인은 어린 시절 거의 감자만 먹고 자랐다.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 감자 삶는 냄새는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거의 치명적이라 할 만큼 역겨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질리도록 감자만 먹던 음식 속에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음을 회상하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회한에 잠긴다.

 

 이 시는 감자 삶는 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를 이용하여 과거 회상의 매개체로 사용하여 상징적 의미를 지닌 표현을 활용하여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1연은 이웃집에서 감자 삶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화자는 그 냄새를 맡는 순간 그것이 치명적인 냄새라고 느낀다. 감자 삶는 냄새가 치명적일 만큼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화자가 감자 삶는 냄새를 치명적으로 느끼는 이유는 냄새 자체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 냄새가 자신을 가난했던 유년의 세계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후각은 다른 감각보다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하는데, 화자의 기억 속에는 감자 삶는 냄새로 하여 감자만 질리도록 먹을 수밖에 없었던, 그 끔찍한 유년 시절이 떠올랐던 것이다.

 

 2연은 바로 그 과거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유년의 화자는 식은 감자알을 매만지면서 평상에 엎드려 숙제를 한다. 그런 화자가 매일처럼 감자밥으로 도시락을 싸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다. ‘엄마 내 친구들은 내가 감자가 좋아서 감자밥 도시락만 먹는 줄 알아.’ 화자가 매일 도시락으로 감자밥을 먹어야 했던 이유는 가난한 살림으로 열한 식구의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그런 모녀의 투정과 응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는 땅 밑에서 감자알 크는 소리 들린다.’라며 흐뭇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유년의 화자는 땅속에서 자라는 것들이 무섭다고 한다. 땅속에서 자라는 감자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식구들은 뿌리 끝에 댕글댕글한 어지럼증을 매달고밥상에 둘러앉아 감자밥을 먹는다. 그것마저도 풍족하지 못해 엄마는 식구들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밥상에서 떠날 때까지 숟가락을 들지 않는다. ‘하나둘 숟가락 내려놓을 때까지 엄마 밥주발엔 숟가락 꽃이지 않는다’. 혹 식구 중에 음식이 부족하면 덜어주기 위해서다. 자식들이 먹을 것을 먼저 챙기고, 혹 부족함이 없는지 살피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음을 드러난다.

 

 그래서, 3연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치명적이었던 냄새치명적인 그리움으로 바뀐다. ‘감자 삶는 냄새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런 그리움으로 화자는 4연에서 엄마와 식구들이 둘러앉아 감자밥을 먹던 세계로 돌아가 헌신적으로 자식을 돌보고 늙으신 어머니에게 시선이 옮겨간다. ‘열한 개의 구덩이를 가진 늙은 애기집은 바로 엄마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열한 개의 구덩이’, 그것이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로 화자는 인식한 것이다. 따라서 성년이 된 화자에게 유년의 엄마는 꽃은 꽃대로 놓아두고 저만 땅 밑으로 궁그는희생적인 존재로 기억된 것이다.

 

 결국, 이 시는 시인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감자 삶는 냄새라는 후각적 경험을 매개로 표현하면서 가난한 유년 시절에 대한 회상과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작자 김선우(金宣佑, 1970 ~ )

 

 시인. 강원도 강릉 출생. 1996년 계간 창작과비평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시힘동인으로 활동. 주로 여성과 생명에 대한 공감과 관심을 표현한 작품들을 써왔다. 시집으로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2000), 물 밑에 달이 열릴 때(2002),도화 아래 잠들다(2003),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2007), 아무것도 안 하는 날(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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