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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촉촉한 눈길 / 김상옥

by 혜강(惠江) 2020. 4. 25.






촉촉한 눈길

 


- 김상옥

 

 

어느

먼 창가에서

누가 손을 흔들기에

 

초여름

나무 잎새들

저렇게도 간들거리나

 

이런 때

촉촉한 눈길

내게 아직 남았던가.

 

- 시집 촉촉한 눈길(2001) 수록

 

 

시어 풀이

*눈길 : 눈이 가는 곳. 또는 눈으로 보는 방향.
*간들거리다 : 작은 물체가 이리저리 가볍게 자꾸 흔들리다.
*촉촉한 : 물기가 있어 조금 젖은 듯한.

 

 

이해와 감상

 

 이 시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에 대해 궁금증을 제기하고,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밝히며, 주변의 작은 변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이 시조는 초여름에 흔히 볼 수 있는, 초록색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화자의 태도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관조적인 자세로 대상을 관찰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영탄법을 사용하여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시조의 초, , 종장을 각각 하나의 연으로 배치하여 간결한 표현미를 살리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초여름 나뭇잎이 흔들리고 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은 어느 먼 창가에서 누가 손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연에서 화자는 가까운 곳도 아닌 먼 창가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뭇잎은 그 작은 손짓에 온몸으로 간들거리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3연에서는 이렇게 애틋한 나뭇잎의 모습을 보면서 화자는 자신에게 '촉촉한 눈길'이 남아 있는지 생각해 본다. 여기서 '촉촉한 눈길'이란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이것은 기쁘거나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나뭇잎의 애틋한 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정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인 것이다. , 화자는 잎새들의 간들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자연을 촉촉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자신에게 남아있는가를 묻고 있다물음을 통해 화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거쳐 자신에게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촉촉한 눈길이 아직 남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수없이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세상에 대해 감동할 수 있는 마음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살랑거리며 지나가는 작은 바람, 길가에 피어 있는 작은 꽃 한송이에도 감동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화자는 이렇게 점점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자신으로 치환하여 성찰하고 있다. 화자는 자신에게 '촉촉한 눈길'이 남아 있냐고 질문하고 있지만, 사실 이 질문은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작자 김상옥(金相沃, 1920~2004)

 

 시조 시인. 경남 통영 출생. 1939문장지에 <봉선화>가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전통적인 율격과 제재로 사실적 기법을 활용하여 현대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시조집으로 초적(1947), 시집으로 고원의 곡(1948), 이단의 시(1949), 목석의 노래(1956), 삼행시 육십오편(1973), 촉촉한 눈길(200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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