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눈길
- 김상옥
어느
먼 창가에서
누가 손을 흔들기에
초여름
나무 잎새들
저렇게도 간들거리나
이런 때
촉촉한 눈길
내게 아직 남았던가.
- 시집 《촉촉한 눈길》(2001) 수록
*눈길 : 눈이 가는 곳. 또는 눈으로 보는 방향.
*간들거리다 : 작은 물체가 이리저리 가볍게 자꾸 흔들리다.
*촉촉한 : 물기가 있어 조금 젖은 듯한.
이 시조는 초여름에 흔히 볼 수 있는, 초록색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화자의 태도가 인상적인 작품으로, 관조적인 자세로 대상을 관찰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영탄법을 사용하여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시조의 초, 중, 종장을 각각 하나의 연으로 배치하여 간결한 표현미를 살리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초여름 나뭇잎이 흔들리고 모습을 바라보며, 그것은 어느 먼 창가에서 누가 손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연에서 화자는 가까운 곳도 아닌 먼 창가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뭇잎은 그 작은 손짓에 온몸으로 간들거리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3연에서는 이렇게 애틋한 나뭇잎의 모습을 보면서 화자는 자신에게 '촉촉한 눈길'이 남아 있는지 생각해 본다. 여기서 '촉촉한 눈길'이란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이것은 기쁘거나 슬플 때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나뭇잎의 애틋한 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정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인 것이다. 즉, 화자는 잎새들의 간들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자연을 ‘촉촉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자신에게 남아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 물음을 통해 화자는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거쳐 자신에게서 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촉촉한 눈길’이 아직 남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단한 고요 / 김선우 (0) | 2020.04.25 |
---|---|
낙화, 첫사랑 / 김선우 (0) | 2020.04.25 |
지상의 방 한 칸 / 김사인 (0) | 2020.04.25 |
그 나무 / 김명인 (0) | 2020.04.24 |
그대의 말뚝 / 김명인 (0) | 2020.04.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