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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그 나무 / 김명인

by 혜강(惠江) 2020. 4. 24.





그 나무

 

 - 김명인

 

 

한 해의 꽃잎을 며칠 만에 활짝 피웠다 지운
벚꽃 가로 따라가다가
미처 제 꽃 한 송이도 펼쳐 들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늦된 그 나무 발견했지요.
들킨 게 부끄러운지, 그 나무
시멘트 개울 한구석으로 비틀린 뿌리 감춰놓고
앞줄 아름드리 그늘 속에 반쯤 숨어 있었지요.
봄은 그 나무에게만 더디고 더뎌서
꽃철 이미 지난 줄도 모르는지,
그래도 여느 꽃나무와 다름없이
가지 가득 매달고 있는 멍울 어딘가 안쓰러웠지요.
늦된 나무가 비로소 밝혀 드는 꽃불 성화,
환하게 타오를 것이므로 나도 이미 길이 끝난 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한참이나 거기 멈춰 서 있었지요.
산에서 내려 두 달거리나 제자릴 찾지 못해
헤매고 다녔던 저 난만한 봄길 어디,
늦깎이 깨달음 함께 얻으려고 한나절
나도 병든 그 나무 곁에서 서성거렸지요.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무거운 청록으로 여름도 지치고 말면
불타는 소신공양 틈새 가난한 소지(燒紙),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

 

          - 시집 바다의 아코디언(2002) 수록

 


시어 풀이

*멍울 : 몸 안의 조직에 병적으로 생기는 둥글둥글한 덩이.

*성화(聖火) :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불. 혹은 올림픽 같은 큰 체육 대회장에 켜 놓는 횃불.

*난만한 :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한

*소신공양(燒身供養) : 자기 몸을 불살라 부처 앞에 바침. 또는 그런 일.

*소지(燒紙) : 부정(不淨)을 없애고 소원을 비는 뜻으로 얇은 종이를 불살라서 공중으로 올리는 일. 또는 그런 종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늦된 그 나무'라는 비틀리고 소외된 대상을 보며, 늦된 나무에서 느끼는 연민과 기대감을 표현한 작품이다.

 

 화자인 는 우연히 발견한 나무 한 그루가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그 나무와 자신을 동일시하여 연민을 느끼고 있음을 소재와 관련된 경험을 과가형 표현을 사용하여 서사적으로 그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요‘~까요?’의 반복을 통해 대상에 대한 관심과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벚꽃 길을 걷다가 우연히 늦된 그 나무를 발견한다. ’그 나무는 비틀어진 채 빛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다른 나무 그늘에 반쯤 숨어 있으며, 철이 지나도록 꽃망울만 매달고 있어 한창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다른 나무들보다 성장이 더디다. 화자는 '그 나무'를 바라보며 안쓰러움을 느끼는데, 이러한 연민의 감정은 그저 주목받지 못하는 '그 나무'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늦된 그 나무'를 자신과 동일시함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방황하느라 남들에 비해 늦은 깨달음을 향해 가는 자신의 삶 또한 '늦된 그 나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늦되고 병든 그 나무가 '꽃불 성화'를 들어 올리고, '푸릇한 잎사귀'를 매달아 이윽고 '가난한 소지'를 지펴 올리기를 기대한다. 화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삶에서도 결실을 얻게 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이 봄 가기 전 저 나무도 푸릇한 잎새 매달까요?’ 가난한 소지/ 저 나무도 가지가지마다 지펴 올릴 수 있을까요?’ 등의 설의문과 의문문의 문체를 사용하여 김명인 시인 특유의 문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그의 특징의 하나로 유독 낯가림이 심한 실제의 망설임이나 머뭇거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자 김명인(金明仁, 1946 ~ )

 

 시인. 경북 울진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3중앙일보신춘문예에 출항제(出港祭)가 당선되어 등단. 반시(反詩), 중앙문예동인으로 활동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약소민족으로서의 우리의 설움과 절망이 기본 모티브가 되고 있으면서, 고도의 감수성과 진지한 사고로 현실의 극복 의지와 희망을 표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집으로 동두천(東豆川)(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88), 물 속의 빈 집(1991), 물 건너는 사람(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바다의 아코디언(2002) 등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 <베트남>,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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