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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그대의 말뚝 / 김명인

by 혜강(惠江) 2020. 4. 24.




그대의 말뚝

 

- 김명인

 

 

그대가 병을 이기지 못하였다, 병한테 손들어버린

그대를 하직하고 돌아오는 십일월 길은

보도마다 빈손으로 허공을 어루만지며 낙엽이

한꺼번에 져 내렸다

나는, 문상에서 이미 젖어 저 길 어디에

오래도록 축축할 그대의 집을 바라보았다, 거리

모퉁이에는 낙엽을 태우는 청소부들 몇 명

지상의 불씨를 그대가 불어서

결코 다시 키울 수 없는 저 모반의 모닥불 가까이

그대의 경작이 없다, 그러니 경자유전(耕者有田)의 밭들은

이제 밤 되면 하늘 속으로 옮겨지고 잡초처럼

별들 돋아나서 반짝일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말 매어둘 일 많아 그 일 중 하날

그대와 내가 지킨다고 하였으나

인적 그친 아파트의 공터를 가로지를 때 나는

내 말뚝에도 이미 매어둘 말이 없음을, 너무 허전하여

마음속으로만 울리는 말방울 소릴 듣고

가슴의 빈 구유에서 오랫동안 낡아갈

남은 시절을 생각했다

세상은 이렇게 시들고 마파람 속 홀로 달린다는 것은

갈 곳 아득하여 슬픔의 갈기가 바람을 다해

날린다는 것이냐, 나 혼자는

다 갈 것 같지가 않아 고개 들기가 너무 무거운 날

다시 하늘을 보면 하늘 가득히

빗방울 듣다 말고 듣다 말고 눈발 희끗거리는

그런 날이었다   

 

        - 시집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수록


 

시어 풀이

*모반 () : 여섯 모나 여덟 모로 된 목판.

*경자유전(耕者有田) :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그 농토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

*갈기 : ·사자 따위의 목덜미에 난 긴 털.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994년 발간된 푸른 강아지와 놀다에 수록된 작품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삶의 근원적인 허무와 비애를 아름답게 노래하고 있다. ‘길 위에 선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에게 있어서, 그의 길은 와 이웃이 함께 숨 쉬며 고통을 나누는 공간이다. 그 길은 때로 절망으로 가득 차 출구가 아득한 고통의 장소이지만, 우리가 삶을 멈출 수 없듯이 늘 나아가야만 하는 숙명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시인은 길 위에서 지나간 생에 대한 반성과 회한에 빠지기도 하고, 부질없었음에도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삶에 대한 연민에 빠지기도 한다.

 

 이 시는 이러한 시인의 시적 경향을 그대로 보여 주는 동시에 외길 인생의 숙명적 모습과 삶의 근본적 무상감을 상징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시인은 친구의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서 느끼는 화한과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하고 있다.

 

 죽은 친구를 그대라는 청자로 설정하여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자연을 통해 대상의 죽음을 드러 내고, 추상적 의미를 구체적 시어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친구의 장례식에서 문상하고 돌아오는 길에 낙엽이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친구의 죽음을 떠올린다. ‘빈손으로 허공을 어루만지며는 의인법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묘사한 것인데, 화자는 친구의 죽음을 낙엽에 비유하여 낙엽이/ 한꺼번에 져 버렸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어 화자는 낙엽처럼 사라져 버린 죽은 친구를 애도한다.


 ‘오래도록 축축할 그대의 집인 무덤을 바라보는 화자는 그대가 생명의 불씨를 불어서 낙엽에 불어 다시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결코 다시 키울 수 없는 저 모반의 모닥불처럼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임을 통하여 생명의 상실을 느끼에 되고, 삶의 공간인 경자유전의 밭은 밤이 되면 하늘에 이 떠서 죽은 친구를 애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화자는 친구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 수 없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했던 시간과 약속을 떠올리며, 말 매어둘 일즉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으나,  이제는 더 이상 말뚝매어 둘 말이 없다고 한다. 이 말은 삶의 목표와 가치를 상실하였다는 추상적 의미를 말뚝을 매는 것으로 구체화한 표현이다. 그러기에 화자는 마음속으로만 울리는 말방울 소리를 들으며, 말이 없는 빈 구유같은 가슴에 바람이 갈기를 날리듯 슬픔의 안고 지치고 힘겨운 무거운 날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대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시 하늘을 보아도 눈발 희끗거리는/ 그런 날뿐이다. 인생의 허무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기댈 사람이 없이 혼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화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이 시는 죽은 친구를 문상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낙엽처럼 사라져 버린 친구를 애도하며 친구와 함께한 시간과 약속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떠난 친구는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안 화자는 혼자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로 말미암아 힘겨워한다.

 

 

작자 김명인(金明仁, 1946 ~ )

 

 시인. 경북 울진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3중앙일보신춘문예에 출항제(出港祭)가 당선되어 등단. 반시(反詩), 중앙문예동인으로 활동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약소민족으로서의 우리의 설움과 절망이 기본 모티브가 되고 있으면서, 고도의 감수성과 진지한 사고로 현실의 극복 의지와 희망을 표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집으로 동두천(東豆川)(1979), 머나먼 곳 스와니(1988), 물 속의 빈 집(1991), 물 건너는 사람(1992), 푸른 강아지와 놀다(1994) 등이 있다. 주요 작품으로 <베트남>,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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