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767

오적(五賊) / 김지하 오적(五賊) - 김지하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 옛날 상달* 초사흗날 백두산 아래 나라 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 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2020. 5. 5.
서울 길 / 김지하 <사진 : 김지하 시인> 서울 길 - 김지하 간다 울지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 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 2020. 5. 5.
강강술래 / 김준태 강강술래 - 김준태 추석날 천릿길 고향에 내려가 너무 늙어 앞도 잘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드린다. 어느덧 산국화 냄새 나는 팔순 할머니 팔십 평생 행여 풀여치 하나 밟을세라 안절부절 허리 굽혀 살아오신 할머니 추석날 천릿길 고향에 내려가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면서 언제나 변함없는 대밭을 바라본다. 돌아가신 할아버님이 그렇게 소중히 가꾸신 대밭 대밭이 죽으면 집안과 나라가 망한다고 가는 해마다 거름 주고 오는 해마다 거름 주며 죽순 하나 뽑지 못하게 하시던 할아버님 할아버님의 흰 옷자락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 도깨비들이 춤추던 대밭을 바라본다. 너무 늙어 앞도 잘 보지 못하는 할머니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면서 강강술래 나는 논이 되고 싶었다 강강술래 나는 밭이 되고 싶었다. -.. 2020. 5. 4.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사진 : 시인이 시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 2020. 5. 4.
장편(掌篇) 2 / 김종삼 장편(掌篇) 2 - 김종삼 ​ ​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均一床) 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 시집 《시인학교》(1977) 수록 ◎시어 풀이 장편(掌篇) : 콩트. 매우 짧은 산문, 즉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품이라는 뜻. 균일상(均一床) : 똑같은 가격의 밥상 ▲이해와 감상 시인 김종삼은 6.25 전쟁 뒤에 모더니즘 시인으로 주목 받았다. 그의 시는 ‘여백의 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한 시’라고도 말한다. 시의 기법을 통해 비어 있는 세계를 깨닫고 독특한 미의 창조를 시도한 그의 노력은 1977년에 발표된 에 수록된 ‘장편 2’에서도.. 2020. 5. 4.
술래잡기 / 김종삼 술래잡기 - 김종삼 심청일 웃겨 보자고 시작한 것이 술래잡기였다. 꿈속에서도 언제나 외로웠던 심청인 오랜만에 제 또래의 애들과 뜀박질을 하였다. 붙잡혔다. 술래가 되었다. 얼마 후 심청은 눈가리개 헝겊을 맨 채 한동안 서 있었다. 술래잡기하던 애들은 안 됐다는 듯 심청을 위로해 주고 있었다. - 《김종삼전집》 (198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전 소설 속의 인물인 ‘심청’과 아이들이 술래잡기하는 모습을 통해 심 봉사와 심청의 한(恨)과 슬픔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노래한 작품이다. 에서 유추된 상상력으로 술래잡기라는 놀이를 통해 심청이의 한(恨)과 슬픔을 형상화한 시이다. 고전 소설 속의 심청이는 숙명적으로 한과 슬픔이 많은 소녀이다. 엄마 없이 성장하고 눈 멈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야 했기 때문이.. 2020. 5. 4.
묵화(墨畫) / 김종삼 묵화(墨畫) - 김종삼 ​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시집 《십이음계》(1969) 수록 ◎시어 풀이 *묵화(墨畫) : 먹으로 그린 동양화. 먹그림.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대상의 세밀한 부분을 생략하고 단 하나의 장면만으로 구성하여 제목처럼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하게 하는 시로, 할머니와 소를 제재로 하여 할머니의 쓸쓸하고 힘겨운 삶과 소와의 유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한 편의 ‘묵화(墨畵)’처럼 할머니와 소의 모습을 짧은 시행에 절제된 언어 표현하여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고, 쉼표로 마무리되어 앞으로도 이러한 삶이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에서 ’할머니‘와 ’소‘의 관계는 단순히 가축이 아.. 2020. 5. 4.
고고(孤高) / 김종길 고고(孤高) - 김종길 북한산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나 인수봉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水墨)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신록이나 단풍, 골짜기를 피어오르는 안개로는, 눈이래도 왼 산을 뒤덮는 적설(積雪)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지어는 장밋빛 햇살이 와 닿기만 해도 변질하는, 그 고고(孤高)한 높이를 회복하려면 백운대와 인수봉만이 가볍게 눈을 쓰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 시집 《하회에서》 (1977) 수록 ◎시어 풀이 *수묵(水墨) : 이 엷은 먹물.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고한 삶의 자세와 정신세계에 대한 지향(의지.. 2020. 5. 4.
밤나무들의 소망 / 김윤배 밤나무들의 소망 -김윤배 다 절딴낭규 지난번 바람에두 많이 상했는디 이번에는 아주 절딴나구 말었슈 왼케 바람이 쎄니께 말두 못해유 그럼유 다 쏟아지구 말었슈 퍼렇게 쏟아진 풋밤송이를 보구 있을라문 억장이 무너져유 온 산이 퍼렁규 가쟁이두 모두 찢어지구유 뿌리째 뽑힌 낭구도 수월찮유 지난 해에두 밤농사는 거의 망했었슈 올해는 좀 괜찮을라나 했쥬 그런디 그 오살을 할 놈의 태풍 십사홍가 멍가 하는, 하기사 삿짜 들어가서 안 죽을 눔 없능규 서울 사는 말이유, 아이구 말두 말어유 월급쟁이 갈급쟁이라구 지살기두 빠듯해유 멀 도와유 내가 밤 내서 돈좀 올려보내 줄라구 그랜는디 이 모양이 됐으니 갸두 큰 일이쥬 손자녀석 가에비래두 보탤라구 했는디 에릴적 부텀 꼬부랑 말하구 꼼푸터하고 가르쳐야 한다구 즈 에미가 안달.. 2020. 5. 3.
김광섭 시인에게 / 김광섭 김광섭 시인에게 - 김유선 ​ 60년대 초 당신이 살던 성북동에서는 비둘기들이 채석장으로 쫓겨 돌부리를 쪼았다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성북동에 비둘기는 없는 걸요. 채석장도 없어요. 요즈음은 비둘기를 보려면 도심으로 들어와 시청 광장쯤에서 팝콘을 뿌리지요. 순식간에 몰려드는.. 2020. 5. 3.
그대 생의 솔숲에서 / 김용택 그대 생의 솔숲에서 - 김용택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서리 내린 실기지 끝에서 눈뜨리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게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 시집 《그 여자네 집》(1998) 수록 ◎시어 풀이 *상수리나무 : 참나뭇과의 낙엽 교목. 둥근 모양의 열매는 .. 2020. 5. 2.
섬진강15 / 김용택 섬진강15 –겨울, 사랑의 편지 - 김용택 산 사이 작은 들과 작은 강과 마을이 겨울 달빛 속에 그만그만하게 가만히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거기 오래오래 논과 밭과 함께 가난하게 삽니다. 겨울 논길을 지나며 맑은 피로 가만히 숨 멈추고 얼어 있는 시린 보릿잎에 얼굴을 대 보면 따뜻한.. 2020. 5. 2.
섬진강 3 / 김용택 섬진강 3 - 김용택 그대 정들었으리. 지는 해 바라보며 반짝이는 잔물결이 한없이 밀려와 그대 앞에 또 강 건너 물가에 깊이 깊이 잦아드니 그대, 그대 모르게 물 깊은 곳에 정들었으리. 풀꽃이 피고 어느새 또 지고 풀씨도 지고 그 위에 서리 하얗게 내린 풀잎에 마음 기대며 그대 언제나 여기까지 와 섰으니 그만큼 와서 해는 지고 물 앞에 목말라 물 그리며 서러웠고 기뻤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 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 깊이 그리움 심었으리. 기다리는 이 없어도 물가에서 돌아오는 저녁 그대 이 길 돌멩이, 풀잎 하나에도 눈익어 정들었으니 이 땅에 정들었으리. 더 키워나가야 할 사랑 그리며 하나둘 불빛 살아나는 동네 멀리서 그윽이 바라보는 그대 야윈 등, 어느덧 아름다운 사랑 짊어졌으리. ㅡ 시집 《섬.. 2020. 5. 2.
섬진강 1 / 김용택 섬진강 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들, 숯불 같은 자운영꽃*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2020. 5. 2.
연 2 / 김영랑 연 2 - 김영랑 좀평나무 높은 가지 끝에 얽힌 다아 해진 흰 실낱을 남은 몰라도 보름 전에 산을 넘어 멀리 가 버린 내 연의 한 알 남긴 설움의 첫 씨. 태어난 뒤 처음 높이 띄운 보람 맛본 보람 안 끊어졌다면 그럴 수 없지. 찬바람 쐬며 콧물 흘리며 그 겨우내 그 실낱 치어다보러 다녔으리. 내 인생이란 그때부터 벌써 시든 상싶어 철든 어른을 뽐내다가도 그 실낱같은 병의 실마리 마음 어느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어 얼씬거리면 아이고! 모르지. 불다 자는 바람 타다 버린 불똥 아! 인생도 겨레도 다아 멀어지더구나. - 《영랑 시선》(193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연날리기와 유년의 꿈 꾸기를 대응시켜 날아가 버린 ‘연’에 빗대어 인생의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연’은 화자는 .. 2020. 5. 1.
북 / 김영랑 북 -김영랑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 2020. 4. 30.
거문고 / 김영랑 거문고 - 김영랑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디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饗宴)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 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 떼들 쏘다니어 내 기린은 맘둘 곳 몸둘 곳 없어지다. 문 아주 굳이 닫고 벽에 기대선 채 해가 또 한 번 바뀌거늘 이 밤도 내 기린은 맘 놓고 울들 못한다. - 《조광》(193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김영랑의 작품 중에서 현실 인식이 비교적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소리를 마음껏 내면서 울지도 못한 채 벽에 기대 선 거문고를 통해,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 자유를 빼앗긴 상태로 살아가는 화자의 답답함과 비애 어린.. 2020. 4. 30.
독(毒)을 차고 / 김영랑 독(毒)을 차고 - 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 《문장》(1939) 수록 ◎시어.. 2020. 4. 29.
오월(五月) / 김영랑 오월(五月) - 김영랑 들길은 마을에 들자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 이랑* 만(萬) 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꾀꼬리는 엽태* 혼자 날아 볼 줄 모르나니, 암컷이라 쫓길 뿐, 수놈이라 쫓을 뿐, 황금빛 난 .. 2020. 4. 29.
벌레길 / 김신용 벌레길 - 김신용 산에 올라 산나물을 따다 보니 알겠네. 저 벌레도 사람살이의 길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명아주 수리취 화살나무 훗잎까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도 먹고 있다는 것을 마치 길라잡이처럼 벌레가 먼저 먹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벌레가 먹은 잎은 벌레를 보듯 모두 버렸었다. 된장 속에서 맛있게 익은 깻잎도 벌레 자국이 있는 것은 먹지 않았다. 그러나 보라, 산그늘 수풀 속에 숨어 있는 이름 모를 잎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가 먼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무슨 징표*처럼, 잠식*과도 같은 자국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산 속 수풀을 헤치며 산나물을 따다 보니 알겠네. 그 이름 모를 풀의 잎에 새겨져 있는 벌레 먹은 자국이 이렇게 사람살이의 지도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지난날 허기에 겨운 보릿.. 2020. 4. 29.
엄마의 발 / 김승희 엄마의 발 - 김승희 딸아, 보아라, 엄마의 발은 크지, 대지의 입구처럼 지붕 아래 대들보처럼 엄마의 발은 크지. 엄마의 발은 크지만 사랑의 노동처럼 크고 넓지만 딸아, 보았니, 엄마의 발은 안쪽으로 안쪽으로 근육이 밀려 꼽추의 혹처럼 문둥이의 콧잔등처럼 밉게 비틀려 뭉그러진 전족.. 2020. 4. 29.
연분홍 / 김억 연분홍 - 김억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살구꽃이 눈을 틉니다. 연분홍 송이송이 하도 반가워 나비는 너훌너훌 춤을 춥니다. 봄바람 하늘하늘 넘노는 길에 연분홍 송이송이 반겨둡니다. 연분홍 살구꽃이 바람에 지니 나비는 울며 울며 돌아섭니다. - 《개벽》(1923) 수록 ◎시어 풀이 *넘놀다 : 넘나들며 놀다. *너훌너훌 : 너울너울. 부드럽고 가볍게 날아다니는 모양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살구꽃 핀 봄날, 나비기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봄날에 대한 예찬과 아울러 꽃이 지는 아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7·5조의 운율과 3음보의 민요조의 율격과 ‘-ㅂ니다’로 끝나는 각운 그리고 ‘하늘하늘’, ‘송이송이’, ‘너훌너훌’, ‘울며 울며’와 같이 같은 단어를 반복 사용하여 운율을 형성함으로써 .. 2020. 4. 28.
삭주구성(朔州龜城) / 김소월 삭주구성(朔州龜城) - 김소월 물로 사흘 배 사흘 먼 삼천리 더더구나 걸어 넘는 먼 삼천리 삭주 구성은 산을 넘은 육천리요 물 맞아 함빡히 젖은 제비도 가다가 비에 걸려 오노랍니다 저녁에는 높은 산 밤에 높은 산 삭주 구성은 산 너머 먼 육천 리 가끔가끔 꿈에는 사오천 리 가다 오다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임을 둔 곳이기에 곳이 그리워 못 보았소 새들도 집이 그리워 남북으로 오며 가며 아니합디까 들 끝에 날아가는 나는 구름은 밤쯤은 어디 바로 가 있을 텐고 삭주 구성은 산 너머 먼 육천 리 - 《개벽》(1923) 수록 ▲이해와 감상 ‘삭주구성’은 평안북도 삭주군과 구성군을 아으르는 말로, 구성은 시인 김소월의 고향이다. 시인은 고향 ‘구성’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절망하면.. 2020. 4. 28.
개여울 / 김소월 개여울 -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 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개벽》(1922) 수록 ◎시어 풀이 *개여울 : 개울의 여울목 *잔물 : 잔물결, 음수를 맞추기 위해 생략한 것 *헤적이다 : 활개를 벌려 거볍게 젓다. *시던 : 하시던. *하염없이 :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멍하니. *심은 : 하심은 ▲이해와 감상 우리 시에서 ‘강’은 흔히 이별의 장소이며, 재회의 장소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 화자는 임이 주저앉아 괴로워하던 개여울에 앉아서 이별의.. 2020. 4. 28.
못 잊어 / 김소월 못 잊어 - 김소월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 잊어도 더러는 잊히우리다. 그러나 또 한편 이렇지요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 《개벽》(1923.5) 수록 ◎시어 풀이 *살뜰하다 : ① 빈틈이 없고 매우 알뜰하다. ②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이 자상하고 지극하다. *떠지다 : 떠오르다 ▲이해와 감상 3연 3행씩으로 된 민요풍의 이 시는 못 잊을 임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노래한 시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라는 시구의 반복을 통해 임에 대한 화자의 간절한 그리움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경어체를 사용하여 임에 대한 화자의 존경과 사랑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 2020. 4. 28.
먼 후일 / 김소월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생각나는 강사 김혜원'> 먼 후일 - 김소월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엊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 《개벽.. 2020. 4. 28.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 김소월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 김소월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 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 손에 새라 새로운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이 아득함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늘은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산경(山耕)을 김매이는. - 시집 《진달래꽃》(1925) 수록 ◎시어 풀이.. 2020. 4. 27.
왕십리(往十里) / 김소월 <사진 : 왕십리역 광장에 세운 김소월 시비> 왕십리(往十里) -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 2020. 4. 27.
봄 / 김소월 봄 - 김소월 ​ ​ 이 나라 나라는 부서졌는데 이 산천 여태 산천은 남아 있더냐 봄은 왔다 하건만 풀과 나무에뿐이어 ​ 오! 서럽다 이를 두고 봄이냐 치워라 꽃잎에도 눈물뿐 흩으며 새 무리는 지저귀며 울지만 쉬어라 이 두근거리는 가슴아 ​ 못 보느냐 벌겋게 솟구치는 봉숫불*이 끝.. 2020. 4. 27.
길 / 김소월 길 - 김소월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까악까악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十里) 어디로 갈까. 산(山)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定州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2020.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