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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길 / 김소월

by 혜강(惠江) 2020. 4. 27.





 

- 김소월

 

 

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까악까악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 리(十里)
어디로 갈까.

()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 곽산(定州郭山)
()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 시집 진달래꽃(1925) 수록


 

시어 풀이

*정주 곽산(定州郭山) :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복판 : 일정한 공간이나 사물의 가운데.
*바이 : 전연, 아주, 도무지.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집을 잃고 떠도는 나그네의 애달픈 처지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나그네의 비애를 표현하고 있다. 한편, 이 시가 쓰인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을 잃고 떠도는 우리 민족의 슬픔을 표현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한 은 본래 목적 또는 그 목적지를 지향하는 것이지만, 화자는 위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고향이 있지만 정작 그곳으로 향하지도 못한다. 결국, 이 시에서 은 방황과 비애, 절망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화자는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의 처지를 우리의 전통적인 율격인 3음보를 바탕으로 애절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평안북도의 지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향토적 정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감정 이입의 대상과 객관적 상관물인 날아다니는 새인 까마귀와 기러기를 자신과 비유해 자신의 상황을 더욱 극대화시키고 있다.

 

 1연은 정처 없이 떠도는 화자의 불안감을 그려낸다. ‘어제도 하룻밤은 객지 생활의 연속을 의미하며, 나그네 집에/ 까마귀 까악까악 울었소는 화자가 까마귀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까악까악우는 소리를 빌어 자산의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어 2연 이하에서 화자는 어디로 갈까목적지가 없어 고민에 빠진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정주 곽산에 내 집이 있는데도 가지 못한다. 화자는 차가 다니고, 배가 갈 수 있는 고향이 있지만 가지 못한다. 이는 현재 고향이 화자가 꿈꾸는 현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시가 지어진 시대 상황과 연결하여 이해할 때, 일제 강점 치하에서 고향은 화자가 어린 시절 자랐던 아름다운 모습을 상실한 곳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화자는 또 몇 십 리길을 목적지도 없이 방황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런 화자는 공중에 나는 기러기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본다. 왜냐하면, ‘기러기는 길이 없어도 길을 찾아 잘 날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러기는 화자의 처지와 대조를 이루는 객관적 상관물로써 화자의 슬픈 정서를 심화시키고 있다. 6연에서 화자는 공중에 나는 기러기를 바라보며 열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라고 한다. ‘기러기는 길 없는 공중에서도 길을 찾아 날아가지만, 화자는 수많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岐路)에 서 있다. 그런데 화자에게 갈 길은 하나도 없다. 길은 많으나 갈 곳이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는 결국 화자가 지향하는 곳이 물리적 공간이 아닌, 정신적으로 의지할 장소임을 알 수 있다.

 

 이제 방향 상실에 처한 화자는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라며 비애와 절망에 빠진다. ‘갈래갈래 갈린 길은 이 시의 핵심 시어로 음운 의 반복으로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는 전혀 갈 길이 없어 절망하는 화자의 심리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결국, 화자는 갈 수 있는 길이 없는 나그네의 처지에 절망한다.


  이 시는 나그네의 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우리 민족의 고달픈 상황을 드러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그네의 고향은 본래의 모습을 상실한 채 일제 강점 하에 놓인 조국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고향을 떠나온 화자는 조국을 잃고 방황하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고려 가요인 <청산별곡>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작자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시인. 평북 구성 출생. 본명은 정식(廷湜). 1920창조<낭인(浪人)의 봄>, <그리워>, <춘강(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이후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개벽에 실린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개여울>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삭주구성(朔州龜城)>, <가는 길>배재<접동>, 신천지(新天地)에 실린 <왕십리> 등이 있다.

 

 민요 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이별과 그리움에서 비롯하는 슬픔, 눈물, 정한 등의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민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집으로 진달래꽃(192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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