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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왕십리(往十里) / 김소월

by 혜강(惠江) 2020. 4. 27.


<사진 : 왕십리역 광장에 세운 김소월 시비>




왕십리(往十里)

 

-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 신천지(1923) 수록

 

 

시어 풀이

*삭망(朔望) :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삭망전(朔望奠)’의 준말

 


이해와 감상

 

 비가 오는 날은 왠지 감성적이 된다. 더욱이 가고자 하는 곳에 갈 수 없어 떠도는 삶이라면 비로 인한 외로움과 비애의 정서를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이 시는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와 떠도는 사람의 비애를 표현하고 있다.

 

 시의 제목인 왕십리가도 가도 왕십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가 가고자 하지만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곳이다. 화자는 가고자 하는 그곳에 도달하지 못해 목표를 잃고 떠돈다.

 

 이 시는 자연물에 비애의 정서를 이입하여 주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7·53음보의 민요적 율조의 변조를 기본으로 하고, 시어의 반복과 변형을 통해 시의 분위기를 극대화하여 소박하고 꾸밈없는 서민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기승전결로 구성된 이 시는 화자는 누군가를 보내기 싫어 비를 핑계 삼아 머물게 하였으면 하는 심정을 드러낸다. 이 시에서 화자는 '초하루 삭망이면' 떠나야 하고 '여드레 스무 날엔' 온다고 했던 그의 약속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한 닷새 비가 와서 그동안 떠나지 못하고 더 머무르다 가게 되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지게 될뿐더러 혹 운이 좋으면 아예 한 번 갔다 오는 일을 포기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화자는 가도 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라고,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로 인해 외로움울 느낀다.


 이때, 낮에는 배가 고파서, 밤에는 임이 그리워서 운다는 벌새의 울음은, 애절한 기다림의 고통을 더욱 환기시킨다. 문득 불안감을 느낀 화자는 벌새에게 저 먼 왕십리로 가서 울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4연에서는 갑자기 비에 젖어 늘어진 천안 삼거리의 실버들이 등장한다. 여로의 중심인 천안 삼거리의 젖은 버들은, 비 때문에 갈 길을 멈추고 주막에서 쉬어야 하는 나그네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비 때문에 임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비가 한 닷새 왔으면 하고 빌어 본다. 다행히 짙은 구름은 산마루에 걸려 여전히 비를 뿌리고 있다.

 

 이 시는 비가 계속 내리는 상황에서 벌새는 나른해서 울고, ‘실버들은 젖어서 울고, ‘구름은 산허리에 걸려서 운다고 한다. 이러한 자연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통해 화자는 떠돌이로서 느끼는 비애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다. ‘비가 와도 한 댓새 왔으면 좋지’, 임을 보내고 싶지 않은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작자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시인. 평북 구성 출생. 본명은 정식(廷湜). 1920창조<낭인(浪人)의 봄>, <그리워>, <춘강(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이후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개벽에 실린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개여울>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삭주구성(朔州龜城)>, <가는 길>배재<접동>, 신천지(新天地)에 실린 <왕십리> 등이 있다.

 

 민요 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이별과 그리움에서 비롯하는 슬픔, 눈물, 정한 등의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민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집으로 진달래꽃(192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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