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왕십리역 광장에 세운 김소월 시비>
왕십리(往十里)
-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朔望)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 가도 왕십리(往十里)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던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 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이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 《신천지》(1923) 수록
◎시어 풀이
*삭망(朔望) : ①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② ‘삭망전(朔望奠)’의 준말
이때, 낮에는 배가 고파서, 밤에는 임이 그리워서 운다는 벌새의 울음은, 애절한 기다림의 고통을 더욱 환기시킨다. 문득 불안감을 느낀 화자는 벌새에게 저 먼 왕십리로 가서 울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4연에서는 갑자기 비에 젖어 늘어진 천안 삼거리의 실버들이 등장한다. 여로의 중심인 천안 삼거리의 젖은 버들은, 비 때문에 갈 길을 멈추고 주막에서 쉬어야 하는 나그네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비 때문에 임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비가 한 닷새 왔으면 하고 빌어 본다. 다행히 짙은 구름은 산마루에 걸려 여전히 비를 뿌리고 있다.
▲작자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시인. 평북 구성 출생. 본명은 정식(廷湜). 1920년 《창조》에 <낭인(浪人)의 봄>, <그리워>, <춘강(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이후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년 《개벽》에 실린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개여울>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삭주구성(朔州龜城)>, <가는 길>과 《배재》에 <접동>, 《신천지(新天地)》에 실린 <왕십리> 등이 있다.
민요 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이별과 그리움에서 비롯하는 슬픔, 눈물, 정한 등의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민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집으로 《진달래꽃》(192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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