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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봄 / 김소월

by 혜강(惠江) 2020. 4. 27.




 

- 김소월

이 나라 나라는 부서졌는데

이 산천 여태 산천은 남아 있더냐

봄은 왔다 하건만

풀과 나무에뿐이어

! 서럽다 이를 두고 봄이냐

치워라 꽃잎에도 눈물뿐 흩으며

새 무리는 지저귀며 울지만

쉬어라 이 두근거리는 가슴아

못 보느냐 벌겋게 솟구치는 봉숫불*

끝끝내 그 무엇을 태우려 함이요

그리워라 내 집은

하늘 밖에 있나니

애닯다 긁어 쥐어뜯어서*

다시금 쩔어졌다*

다만 이 희긋희긋한 머리칼뿐

인제는 빗질할 것도 없구나

           - 조선문단14(1926) 수록

 

 

시어 풀이

*봉숫불 : ‘봉홧불의 북한어, 봉화로 드는 횃불.

*쥐어뜯다 : 1. 단단히 쥐고 뜯어내다. 2. 마음이 답답하거나 괴로울 때 자기의 가슴을 함부로 꼬집거나 잡아당기다.

*쩔다 : ‘절다를 강조하여 이르는 말, 1. 일이나 기술 따위가 아주 익숙해지다. 2. 어떤 행동이나 격식이 몸에 배어서 버릇으로 굳어지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춘망(春望)> (757년 작)을 번역한 시로, 두보의 원시를 변용하여 화자가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여 느끼는, 나라 잃은 슬픔과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다.


 두보의 <춘망(春望)>은 안녹산의 난으로 가족과 헤어져 지내는 작가의 심정을 선경 후정의 방식으로 노래한 작품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전란으로 인한 인간사의 고통을 대비하여 전체적으로 애상적인 느낌을 주는 두보 시의 대표적 작품이다.

 

 두보의 원시에는 화자의 감정이 직설적으로 노출 되지 않고 암시적으로 드러나지만, 이 시에서는 서럽다’, ‘그리워라’, ‘애달프다등으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감정의 직설적 표출은 그만큼 국권 상실의 아픔이 매우 크다는 것을 말해 준다. 이 시에는 직설적인 표현 외에도 반복법, 설의법, 영탄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여 화자의 슬픔과 비탄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연은 봄이 왔지만 내가 바라는 봄은 오지 않았음을 탄식하고 있다. 첫머리 이 나라 산천은 부서졌는데/ 이 산천 여태 산천은 남아 있더냐는 설의법으로, ‘봄은 왔다 하건만/ 풀과 나무에뿐이어는 자연과의 대조를 통하여 국권 상실의 슬픔을 강조하고 있다. 2연 역시, 화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봄이 오지 않았음을 탄식하고 있다. ‘, 서럽다라는 영탄법을 사용하여 감정을 직접 제시하고, ‘치워라등의 과격한 시어를 사용하여 격한 심정을 토로하다가 한편으로는 쉬어라 이 두근거리는 가슴아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슬픔을 달래기도 한다.


 3연에서는 고향(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타들어 감을 드러내고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을 벌겋게 솟구는 봉숫불에 비유하여 끝끝내 그 무엇을 태우려 함이냐는 설의적 표현으로 그리움을 노래한다. 하늘 밖에있는 집이라는 표현 속에는 화자의 현실에 대한 절망적 인식이 배어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비탄의 감정으로 머리를 쥐어뜯어도 빗질할 머리가 없음을 슬퍼한다. 여기서 머리를 긁어 쥐어뜯는 행위는 슬픔과 절망으로 인한 극단적인 행위이며, 희꿋희끗한 머리칼뿐/ 인제는 빗질할 것도 없구나는 구체적 행위를 통해 화자의 슬픈 심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시는 화창한 봄날국권 침탈의 상황을 대조시킴으로써 화자의 비통한 심정을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5언 율시로 된 두보(杜甫)의 원시 <춘망(春望)>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 나라는 망했지만, 산천은 남아서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 성에는 봄이 와 초목이 무성하네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 때가 어지러워 꽃을 봐도 눈물이 나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 이별의 한에 새소리에도 가슴이 놀라네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 봉화는 석 달이나 계속 오르는데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금보다 귀하구나
 頭搔更短(백두소갱단) : 흰 머리는 빗을수록 짧아져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 이제는 비녀를 꽃을 데도 없어라.

 

 1~4구는 선경(先景), 5~8구는 후정(後情)의 구성에 애상적 정조를 잘 담아내고 있으며, 대구법과 과장법을 사용하여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싱그럽고 아름다운 자연과 반대되는 화자의 처지를 드러내며 비극적 상황을 강조하지만, 원망의 감정 대신 나라를 걱정하고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유교 이념에 바탕을 둔 한시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작자 김소월(金素月, 1902~1934)

 

 시인. 평북 구성 출생. 본명은 정식(廷湜). 1920창조<낭인(浪人)의 봄>, <그리워>, <춘강(春崗)>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고, 이후 주로 개벽을 무대로 활약하였다. 이 무렵 발표한 대표적 작품들로는, 1922개벽에 실린 <금잔디>, <엄마야 누나야>, <진달래꽃>, <개여울> 등이 있고, 1923년 같은 잡지에 실린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삭주구성(朔州龜城)>, <가는 길>배재<접동>, 신천지(新天地)에 실린 <왕십리> 등이 있다.

 

 민요 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이별과 그리움에서 비롯하는 슬픔, 눈물, 정한 등의 전통적인 한()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민요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시집으로 진달래꽃(1925)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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