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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오적(五賊) / 김지하

by 혜강(惠江) 2020. 5. 5.

 

 

 

 

 

 

오적(五賊)

 

 

 

- 김지하

 

 

 

 

()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 옛날 상달* 초사흗날 백두산 아래 나라 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 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사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것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 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 간에 오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 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만 하고 목 질기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럇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 안에는 큰 황소 불알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 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 놈이 모여
십 년 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 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 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 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 사상계(1970) 수록

 

 

시어 풀이

 

 

*좀스럽게 : 도량이 좁고 옹졸하게

*쓰럇다 : ‘쓰렸다의 판소리 문체

*칠전(七殿) : ‘수사기관을 이르는 말

*삭신 : 몸의 근육과 뼈마디.

*상달 : ‘시월상달의 준말. 햇곡식을 신에게 드리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는 뜻

*아동방(我東方) : 우리나라를 이르는 말

*당년(當年) : 일이 있는 바로 그해. 또는 올해. 그 나이나 연대.

*도척 : 중국 춘추 시대의 큰 도적, ‘가장 흉악한 도적이나 강도를 이르는 말

*가렴주구(苛斂誅求) : 세금을 혹독하게 거두고, 재물을 강제로 빼앗음.

*사흉(四兇) : 네 명의 흉측한 인간

*현군양상(賢君良相) : 어질고 현명한 임금과 재상

*도벽(盜癖) : 물건을 훔치는 버릇.

*동탁(董卓) : 중국 후한(後漢)의 정치가(139~192)

*신기(神技) : 대단히 뛰어난 기술이나 재주.

*일취월장(日就月將) : 날로 달로 진보함.

*양춘가절(陽春佳節) : 따뜻하고 좋은 봄철.

*비전(祕傳) : 비밀히 전해 내려옴. 비밀의 전수.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현실 인식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시로, 구비 문학의 풍자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부패와 거짓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전통적인 운문 양식인 가사, 타령, 판소리 사설 등을 변용하여 쓴 담시(譚詩)’라는 새로운 장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담시(譚詩), 단형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 소설보다는 짧은 길이 속에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기습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시의 독특한 장르이다. 이러한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역사적 현실의 가장 첨예한 내용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려는 시도에서 그 정당성을 지닌다.

 

  이 시 오적1970사상계5월호에 발표한 것인데, 이 시 전문이 당시 야당인 신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에 다시 게재되면서 여야간의 공방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북괴의 선전 활동에 동조한 것이라 하여 김지하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투옥하는 한편, 이 시가 실린 사상계를 판매금지시키고 발행인과 편집인을 구속했다. 결국, 당시 진보적 잡지였던 사상계오적으로 인해 그해 9월 폐간되었고, 민주전선도 압수 처분되었다. 이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의 독재체제에 의연히 맞서오던 시인 김지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본래 오적(五賊)’은 일제강점기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을 비롯한 5,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김지하의 이 시에서 오적은 박정희 정권 당시의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등 부정부패와 거짓의 주범들을 '오적(五賊)'이라 규정하고 이들의 행태를 통쾌하게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1~7행에서 화자는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 이야길 하나 쓰겠다고 한다. 수사기관인 칠전에 끌려가 옥고를 치르더라도 비판의 시를 쓰겠다는 다짐이다. ‘쓰럇다쓰겠다는 말을 고유의 판소리 문체를 현대에 되살린 문체로 표현한 것이다.

 

   8~20행에서는 오적들의 행태에 대하여 반어적 풍자로 비판하고 있다.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은 판소리 투의 해학적 표현으로 오적을 간접적으로 비하하는 것이며, 반어적 표현은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포식한 농민은 배 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 옷 신물 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등에서 엿볼 수 있다.

 

   21~33행에서는 가난한 서울 지역의 비참한 삶과 오적’, 즉 부유층의 화려한 삶을 대조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당시의 부촌이었던 동빙고동, 성북동, 수유동, 장충동, 약수동은 우뚝’, ‘뾰족’, ‘와장창’, ‘삐까번쩍과 같은 부사어를 동원하여 화려함의 극치로 묘사하였고, 가난한 서민들이 사는 주거 공간은 똥덩어리’,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판자집’, ‘다닥다닥과 같은 시어를 사용하여 묘사하여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오적으로 지목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은 한자의 동음이의어 '장성(長猩*)', '공무원(功無猿*)' 을 이용해 주로 큰 개 견()’이 들어간 언어 유희(言語遊戲)로서 오적을 풍자와 조롱을 섞어 희화화(戲畫化)함으로써 그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34~45행에서는 도둑 시합을 벌이는 오적들의 추악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들은 오장육보도둑보가 곁들여져 오장칠보’, 도둑질에 재주가 있어 신기(神技)에 이르고, 민중을 착취하는 기술과 부정과 비리로 축재한 황금을 걸어놓고, 골프채 들고 도둑 시합을 벌이는 오적들의 추악한 행태는 모두 서민들의 삶과는 대조가 되는 것이다.

 

   이 시는 결국, 구비 문학의 풍자 정신을 바탕으로, ‘오적의 부패상을 고발하여 한국 사회의 부패와 거짓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통치 질서의 수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저항시이다.

 

  김지하 시인은 <오적>을 비롯하여 당대 정치·사회 문제를 풍자한 시를 계속 발표함으로써 19747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 소식이 세계에 알려지자 사르트르·보부아르 등의 세계적인 작가들이 김지하 석방을 요구하는 호소문에 서명해 그 뒤 김지하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될 수 있었다. 잠시 풀려난 그는 '인민혁명당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었다가 198012월에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

 

 


작자 김지하(金芝河, 1941~ )

 

 

  시인. 전남 목포 출생.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1969시인<황톳길>, <>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대학 다닐 때 4·19혁명, 6·3사태 등을 겪으면서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했고, 졸업 후에도 박정희 정권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의 선두에서 활동했다. 1964년에는 한일회담을 반대, 1970년 담시 오적(五賊)사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의 시는 초기에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울분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최근에는 생명 사상에 입각한 생명에 대한 외경과 달관의 자세로 구도자적 정서를 주제로 노래한다. 대표작으로 <화개>, <흰그늘의 산알 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노래>가 있다. 시집으로 황토(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오적(五賊)(1985), 남녘땅 뱃노래(1987), 애린 1·2(1987), 이 가문 날의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비단길(2006)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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