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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무화과 / 김지하

by 혜강(惠江) 2020. 5. 5.





무화과

 

- 김지하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 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 섰다.

 

이봐

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 봐

열매 속에서 속 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 시집 애린(1986) 수록

 

시어 풀이

*무화과 : 뽕나뭇과의 낙엽 활엽 관목. 높이는 2~3m, 열매는 어두운 자주색.
*개굴창 : ‘개골창의 강원도 방언. 수채 물이 흐르는 작은 도랑.
*도둑괭이 : 도둑고양이.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무화과의 생태에서 인간의 내적 가치를 발견하고 있는 시로, 암울한 현실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한탄과 그에 대한 위로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비록 화려하거나 남들의 눈에 띄게 요란하진 않아도 '열매' 속에서 '속 꽃'을 피우며 결실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아름답게 여기는 시인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시는 중간에 대화 형식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동일한 대상의 대되는 인식을 통해 주제를 형상화 하였다. 1연에서 화자는 과음을 했는지 구토를 한 후, '잿빛 하늘'을 올려다 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무화과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무화과는 화자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소재로, ‘잿빛 하늘이 무화과 나무에 가려 있다는 것은 화자가 현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고, 그로 인해 고통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연에서 화자는 친구에게 대화하듯, 자기에게는 화려하고 좋은 젊은 시절인 '꽃 시절'이 없었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은 마치 꽃 없이 열매 맺는 '무화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화자의 친구는 이 없다고 한탄하는 화자를 위로하듯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 '무화과'는 꽃이 없는 게 아니라 열매 속에서 '속 꽃'을 피우기 때문에 사람들이 못 알아보는 것일 뿐, 오히려 화자는 성숙함 속에 화려하고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위로한다. 여기서 속꽃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은 없지만, 더 아름다운 의미 있는 삶, 즉 내재된 아름다운 가치를 상징한다.


  3연에서 화자와 친구는 다시 일어나 비틀거리며 걷지만, 그곳이 '검은 개굴창가'이고 그 옆으로 '검은 도둑괭이'가 지나가는 것으로 그려 낸다. 여기소 검은 개굴창가1연의 잿빛하늘과 대응하는 시구로 여전히 현실 상황을 의미하며, ‘검은 도둑괭이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영악하게 살아가는 부정적 존재이다. 따라서 화자는 비틀거리며 걷는다라는 표현으로 암울하고 힘들다는 것을 다시 환기시키며 시를 끝맺는다.

 

 이 시는 '무화과'라는 자연물이 지닌 생태적 속성에 착안하여 삶의 이치나 바람직한 가치를 유추해 내고 있는 작품으로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한탄과 내면적 성숙을 위한 자기 성찰의 마음가짐을 형상화하고 있다.


 김지하 시인의 후기에 속하는 이 작품은 현실에 대한 자신의 울분을 서정적으로 그려 냈던 초기 시와는 다르게, 현실의 암울한 삶 속에서도 내면의 아름다운 가치와 그 깊이를 추구하는 작품이다.

 


작자 김지하(金芝河, 1941~ )

 

  시인. 전남 목포 출생.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1969시인<황톳길>, <>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대학 다닐 때 4·19혁명, 6·3사태 등을 겪으면서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했고, 졸업 후에도 박정희 정권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의 선두에서 활동했다. 1964년에는 한일회담을 반대, 1970년 담시 오적(五賊)사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의 시는 초기에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울분을 서정적으로 그렸다. 최근에는 생명 사상에 입각한 생명에 대한 외경과 달관의 자세로 구도자적 정서를 주제로 노래한다. 대표작으로 <화개>, <흰그늘의 산알 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노래>가 있다. 시집으로 황토(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오적(五賊)(1985), 남녘땅 뱃노래(1987), 애린 1·2(1987), 이 가문 날의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중심의 괴로움(1994), 비단길(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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