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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서울 길 / 김지하

by 혜강(惠江) 2020. 5. 5.

 

<사진 : 김지하 시인> 

 

서울 길

 - 김지하

  

간다
울지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 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 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갈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로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야만 했던 농촌 젊은이들의 비애를 노래한 작품이다. 감각적 이미지로 고향의 모습을 환기시키고 있으며, ‘간다/울지 마라 간다’와‘몸 팔러 간다’와 같은 시구를 처음과 끝에 배치하여 수미 상관의 구성으로 시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서두에서 '간다/울지 마라 간다' 구절의 단호함과 맞물려 '몸 팔러 간다'는 표현이 시의 서두와 끝에 반복함으로써 결연한 의지를 표현하는 동시에 쓸쓸하고 슬픈 감정을 넘어 농촌을 떠나지 않고서는 먹고 살 수 없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한스러운 비애를 느끼게 한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 팍팍한 서울길’은 서울 길의 힘듦을 표현하여 서울이 주는 심리적 부담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몸 팔러 간다’는 일용직 노동자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농촌을 등지고 서울로 가야만 하는 그 길이 목마르고 팍팍하기만 한 길임을 알기에, ‘화안히 / 꽃 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는 것이다. 성공해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사랑하는 이와 미래를 기약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 ‘분꽃’과 ‘밀 냄새’로 비유된 고향의 기억을 꿈꾸다 눈물에 젖고, ‘별빛’을 따라서라도 매일 밤 돌아오고 싶은 그리움으로 남게 될 것 또한 그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간다 / 울지 마라 간다'는 것은 대화의 형식이나 내용상 독백조로서, 그를 배웅하는 어느 누구보다도 화자 자신을 향해 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1970년대는 본격적인 경제 발전과 함께 공업화와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전됨에 따라 농어촌의 인구가 도시 및 개발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급격하게 일어났다. 따라서 산업화로 인한 농촌 해체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로 몰려들었다. 이 시는 먹고 살기 위해 내키지 않는 서울행을 해야 했던 농민들의 아픔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자 김지하(金芝河, 1941 ~ )

 시인.전남 목포 출생.본명은 김영일(金英一). 1969년《시인》에 <황톳길>, <비> 등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대학 다닐 때4·19혁명, 6·3사태 등을 겪으면서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했고, 졸업 후에도 박정희 정권의 독재정치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의 선두에서 활동했다. 1964년에는 한일회담을 반대, 1970년 담시〈오적(五賊)〉사건,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의 시는 초기에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울분을 서정적으로 그렸다.최근에는 생명사상에 의한 생명에 대한 외경과 달관의 자세로 구도자적 정서를 주제로 노래한다.대표작으로<화개>, <흰그늘의 산알 소식과 산알의 흰그늘 노래>가 있다. 시집으로《황토》(1970),《타는 목마름으로》(1982),《오적(五賊)》(1985),《남녘땅 뱃노래》(1987),《애린1·2》(1987),《이 가문 날의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비단길》(2006) 등이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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