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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by 혜강(惠江) 2020. 5. 4.



<사진 : 시인이 시창작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와 시인의 본질(本質)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이다. 누군가 화자 자신인 에게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하는 작품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삶에서 인간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이들이 바로 시인임을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누군가로부터 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난 시인이 못 되므로 모른다고 대답한다. 이 반어적 표현 속에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빚어내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시를 써 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와 소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화자는 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거리를 배회하다가 드디어 답을 찾아낸다. 화자가 찾아낸 답은 엄청난 고생이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시나 예술이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과 추상의 세계만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서민들의 건강한 생활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뒤 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생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즉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전부이자 고귀한 인류이며, 영원한 빛과 같은 존재로, 이들이야말로 힘겨운 삶 속에서도 선한 심성과 인성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시인이라는 의미이다.


 이 시의 진술은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어서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시인은 유치하다고 생각할 만큼 단순한 이 진술 속에 인정이 사람다움의 기초라는 인식을 담아냄으로써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한편, 현실 세계의 비정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시인이 행하여야 할 중요한 사회적 책무임을 우회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시인은 이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진술 속에 인정이 사람다움의 기초라는 인식을 드러내는 한편, 이를 통해 시인은 세상의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하며, 좀 더 나아가 그런 삶의 가치를 지켜내는 데에 앞장서야 하는 사회적 책무를 자닌 존재라고 해석하고 있다.

 

 

작자 김종삼(金宗三, 1921~1984)

 

 시인. 황해도 은율 출생. 1951년 대구에서 시 <원정(園丁)>, <돌각담> 등을 발표하여 시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초기에는 어구의 비약적 연결과 시어에 담긴 음악의 경지를 추구하는 순수시의 경향을 나타내는 시를 썼으나, 이후 점차 현대인의 절망 의식을 상징하는 정신적 방황의 세계를 추구하였으며, 과감한 생략을 통한 여백의 미를 중시하였다. 시집으로 십이음계(1962), 시인 학교(1977), 북 치는 소년(197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김종삼전집(198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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