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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묵화(墨畫) / 김종삼

by 혜강(惠江) 2020. 5. 4.

 

 

<출처 : 다음 블로그 '빨간장미'>

 

 

 

묵화(墨畫)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 시집 십이음계(1969) 수록

 

 

시어 풀이

*묵화(墨畫) : 먹으로 그린 동양화. 먹그림.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대상의 세밀한 부분을 생략하고 단 하나의 장면만으로 구성하여 제목처럼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하게 하는 시로, 할머니와 소를 제재로 하여 할머니의 쓸쓸하고 힘겨운 삶과 소와의 유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한 편의 묵화(墨畵)’처럼 할머니와 소의 모습을 짧은 시행에 절제된 언어 표현하여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고, 쉼표로 마무리되어 앞으로도 이러한 삶이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에서 할머니의 관계는 단순히 가축이 아니라 육체적인 노동에서 오는 고단함과 정신적인 적막감을 덜어주는 동반자의 관계에 있다. 내용상으로 보면, 이 시는 1~2행은 할머니와 소의 외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3~6행은 외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메시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선경후정(先景後情)으로 구성되어 있다.

 

 1~2행의 물 먹은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는 것은 고된 노동으로 인해 굳은 살이 잡힌 소의 목덜미에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얹혀진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고단함과 적막감을 함께 나누는 관계이기에 연민과 유대감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둘의 모습이 짧은 시행에 압축되어 있어서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물을 먹는 소의 목덜미에 할머니는 가만히 손을 얹으면서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행동 속에는 '오늘 하루도 이렇게 함께 지냈구나, 우리의 발잔등이 똑같이 부어 있구나, 그리고 우리 둘 다 쓸쓸하구나' 라는, 소와 스스로를 향한 위로가 담겨 있다. ‘이 하루도는 매일 할머니와 소가 함께 고단하게 일했다는 뜻으로, 짧은 표현 속에 함께’, ‘서로’, ‘서로가 세 번 반복된 것은 그만큼 할머니와 소가 동반자적 관계에 있으며, 그러기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끼는 처지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는 할머니의 마음뿐, 자세한 삶의 내용은 모두 생략되어 여백의 미를 남겨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는 쓸쓸한 할머니의 고달픈 삶을 조명하기도 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에 건네는 연민과 애정을 조명하고 있기도 하며, 누구에게도 해당 되는 삶에 관한 비관적인 인식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는 이 시의 여백이 주는 효과라고 볼 수 있다. .

 

 김종삼은 시 형식에 있어 생략의 기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말이 끊어진 채 끝맺는 불완전한 구문 처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의 막막함을 반영하고, 여러 비극적인 정조를 화자의 내면의 정서로 환기하는 기법이다.

 

 

작자 김종삼(金宗三, 1921~1984)

 

 

 시인. 황해도 은율 출생. 1951년 대구에서 시 <원정(園丁)>, <돌각담> 등을 발표하여 시단에 얼굴을 내밀었다. 초기에는 어구의 비약적 연결과 시어에 담긴 음악의 경지를 추구하는 순수시의 경향을 나타내는 시를 썼으나, 이후 점차 현대인의 절망 의식을 상징하는 정신적 방황의 세계를 추구하였으며, 과감한 생략을 통한 여백의 미를 중시하였다. 시집으로 십이음계(1962), 시인 학교(1977), 북 치는 소년(197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등이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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