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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밤나무들의 소망 / 김윤배

by 혜강(惠江) 2020. 5. 3.

 

 

 

 

 

 

밤나무들의 소망

 

 

   -김윤배

 

 

다 절딴낭규 지난번 바람에두 많이 상했는디 이번에는 아주 절딴나구 말었슈 왼케 바람이 쎄니께 말두 못해유 그럼유 다 쏟아지구 말었슈 퍼렇게 쏟아진 풋밤송이를 보구 있을라문 억장이 무너져유 온 산이 퍼렁규 가쟁이두 모두 찢어지구유 뿌리째 뽑힌 낭구도 수월찮유 지난 해에두 밤농사는 거의 망했었슈 올해는 좀 괜찮을라나 했쥬 그런디 그 오살을 할 놈의 태풍 십사홍가 멍가 하는, 하기사 삿짜 들어가서 안 죽을 눔 없능규 서울 사는 말이유, 아이구 말두 말어유 월급쟁이 갈급쟁이라구 지살기두 빠듯해유 멀 도와유 내가 밤 내서 돈좀 올려보내 줄라구 그랜는디 이 모양이 됐으니 갸두 큰 일이쥬 손자녀석 가에비래두 보탤라구 했는디 에릴적 부텀 꼬부랑 말하구 꼼푸터하고 가르쳐야 한다구 즈 에미가 안달이라구유 밤농사가 거덜이 났으니 이제 어쩔뀨 증말이지 억장이 무너져유 날씨 원망하기는유 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어쩐대유 하늘만 올려다볼 뿐이쥬 대책은 무신 대책이 있겄슈 허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능규 산엘 올라야쥬 찢어진 밤낭구를 돌바야쥬 내보다 더 억장이 무너지는 눔이 밤낭구들 아니겄슈 탱글탱글한 밤알 하나 보름달빛 속으로 툭 소리내며 떨어뜨려보는게 밤나무들의 소망아니겄슈

 

지금은 라디오 시대, 최유라는 웃지 않았다. 이종환이도 잠시 침묵했다.

 

          - 시집 부론에서 길을 잃다(2001) 수록

 

 

이해와 감상

 

 

<밤나무의 소망>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여 밤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고단한 삶을 헤쳐나가는 가족에 대한 노인의 사랑을 보여준다. 라디오 프로그램 인터뷰 장면을 그대로 제시하여, 태풍으로 인해 밤나무 농사를 망친 어느 노인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온 노인의 사연을 안타까움이 가득한 심정으로 전하고 있다. 사투리의 사용으로 인물의 순박함과 향토적인 느낌을 자아내고 있으며, 대화체 구성을 통해 사실성을 확득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밤농사를 짓는 농민이다. 그런데 지난번 태풍으로 밤나무가 아주 절딴이 나서 밤나무가 다 상하고 풋밤송이는 퍼렇게 쏟아져 버렸다. 보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온 산이 퍼렇게 된 풍경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본다. 가지도 모두 찢어지고 뿌리째 뽑힌 나무도 적지 않다. 지난해 밤농사도 거의 망해서 올해는 괜찮으려나 기대를 했건만, 태풍으로 인해 올해도 농사를 망치고 만 것이다.

 

사정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월급쟁이로 살고 있는 맏이에게 돈을 좀 보내주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손자 녀석들 학원비라고 보태려고 했건만 이 모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날씨를 원망하지도 손 놓고 주저앉지도 않는다. 산에 올라가 상한 밤나무를 돌보겠다고 한다. 게다가 시적 화자는 자신보다 밤나무들이 더 억장이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탱글탱글한 밤알 하나툭 떨어뜨려 보는 것이 밤나무의 소망 아니겠냐는 것이다.

   밤나무 농사를 짓는 농민의 하소연이 이어지고 이것이 라디오에 보내진 사연이었음이 마지막 연에서 가서야 밝혀진다. 유쾌한 사연을 소개하며 웃음을 전달하던 진행자들은 이번 사연에는 웃지 않는다. 심각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다시 밤나무를 돌보며 삶을 이어나가는 강인한 자세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의 연민과 공감이 이루어진 것이다.

 

김윤배는 이를 통해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밤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시적 화자의 강인함을 유비적으로 연결한다. 자식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과 밤알을 영글고 싶어 하는 밤나무의 소망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시에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걱정과 사랑이라는 주제가 함축되어 있다. 밤나무를 인간에 빗대면, 바로 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식을 걱정하는 노인일 것이다. 결국, 맏아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노인처럼 밤나무는 탱글탱글한 밤알 하나맺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참조 :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권영민 교수>

 

 

작자 김윤배(1944 ~ )

 

 

시인, 충북 청주 출생. 1986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겨울 숲에서(1986), 떠돌이의 노래(1990), 강 깊은 당신 편지(1991), 굴욕은 아름답다(1994), 따뜻한 말속에 욕망이 숨어 있다)(1997), 부론에서 길을 잃다(2001), 바람의 등을 보았다(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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