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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독(毒)을 차고 / 김영랑

by 혜강(惠江) 2020. 4. 29.

 

 

<사진 : 김영랑 시인의 생전 모습>

 

 

()을 차고

 

 

- 김영랑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 문장(1939) 수록

 

 

시어 풀이

 

*모지라져 : 닳아 없어져

*허무(虛無)한듸 : ‘허무하다의 전라도 말

*승냥이 : 이리와 비슷한 동물. 성질이 사나우며 초식성 동물을 잡아먹음.

*막음 날 : 죽는 날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제 말기(1939)에 발표된 것으로, 이 시인의 역사의식이 뚜렷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영랑은 초기시에서 잘 다듬어진 언어로 순수 서정의 세계를 감각적으로 노래하였다. , 그는 순수한 서정과 미를 추구함으로써 갈등의 세계를 배제하려 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의 새로운 변모를 보이는 작품으로, 식민지라는 극한 상황에서 타협하지 않는 순결한 삶을 향한 의지와 강한 대결 의식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시 <독을 차고>에서 화자는 내 가슴에 독을 찬 지 오래라고 한다. 여기서 ''이란 그의 마음속에서 현실에 저항하려는 극단적 대결 의지나 매서운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것이다. ‘으로 상징된, 현실에 순응하는 인물들은 세월이 지나면 허무한 세상에서 독한 의지를 갖는 것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며 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화자는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량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 내 산체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항퀴우라 내맡긴 신세라며, 타협과 굴복을 요구하는 위중한 외적 상황을 드러낸다. 여기서 '이리, 승냥이', ’짐승은 일제의 간악한 모습을 상징한다.

 

 이런 상황에서 화자는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라며 결의를 다짐한다. 그 이유는 막음 날 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즉 삶이 끝나는 날, 외롭지만 순수하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고귀한 정신 때문이다. 이 시인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대결의 무기이자 자아의 순결함을 지키는 갑옷을 독으로 표현하여, 죽는 날까지 지조를 지키고자 결의를 다지고 있다.

 

 김영랑 시인은 초기에 현실 세계에 대하여 침묵하며, 순수 시인으로서 시 창작에만 몰두해 왔다. 그런 그가 태도를 바꾸어 시적인 변화를 일으킨 데에는 일제 말 그들의 발악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원망스러운 세상에 태어나 내면의 세계에 침잠하여 마음의 평화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던 그러한 삶마저도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소위 조선어 말살 정책을 강제하는 것은 생명을 끊는 것에 다름없었다. 그리하여 시인은 의연하게 대결의 길로 나선다. 그것이 결국 죽음으로 끝나더라도, 맹수 같은 불의의 세력에 무기력하게 생명을 잃어버리고 덧없이 소멸하는 외로움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러기에 김영랑 시인은 일제 말기 집요하게 강요한 창씨개명(創氏改名)과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거부하고 지조를 지켰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린 시를 주로 썼던 영랑이 1938년부터 1940년까지 을 품은 시어로 일제의 탄압에 맞서서 <독을 차고>, <거문고>, <두견>, <춘향> 등 비장하고 결연한 작품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리고, 한국어 사용이 전면 금지됐던 1941년부터 광복 전까지는 아예 붓을 놓았다. 그 어느 때보다 처절한 시대였던 만큼 애국을 노래했던 시인들마저 속속 변절의 길로 돌아섰지만, 우리말을 쓰는 것 자체가 죄인 시대에 그는 일어로 된 단 한 줄의 글도 남기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친일을 하지 않았던몇 안 되는 문인들 중 한 명으로, 뼈 있는 지성인으로 남았다. 이렇게 자신의 시 세계와는 달리 저항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작자 김영랑(永郞, 1903~1950)

 

 

 시인. 전남 강진 출생. 본명 윤식(允植). 1930년 박용철, 정지용 등과 함께 시 문학을 간행,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순수 서정시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순수 서정을 노래함으로써 한국 순수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시집으로 영랑 시집(1935), 영랑 시선(1939) 등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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