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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벌레길 / 김신용

by 혜강(惠江) 2020. 4. 29.

 

 

 

 

 

 

벌레길

- 김신용
 

산에 올라 산나물을 따다 보니 알겠네.
저 벌레도 사람살이의 길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명아주 수리취 화살나무 훗잎까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도 먹고 있다는 것을
마치 길라잡이처럼 벌레가 먼저 먹고 있다는 것을
그동안 벌레가 먹은 잎은 벌레를 보듯 모두 버렸었다.
된장 속에서 맛있게 익은 깻잎도 벌레 자국이 있는 것은 먹지 않았다.
그러나 보라, 산그늘 수풀 속에 숨어 있는 이름 모를 잎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벌레가 먼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무슨 징표*처럼, 잠식*과도 같은 자국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산 속 수풀을 헤치며 산나물을 따다 보니 알겠네.
그 이름 모를 풀의 잎에 새겨져 있는 벌레 먹은 자국이
이렇게 사람살이의 지도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지난날
허기에 겨운 보릿고개를 넘을 때, 수풀 속 이름 모를 풀의 잎에 새겨진
그 벌레의 길을 따라 구황*의 세월 견뎌왔으리라는 것을
내 이제야 알겠네.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은 벌레도 먹지 않는다는 것을
길바닥에 깔린 질경이 잎에도 그 벌레의 길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 도장골 시편(2007) 수록

 

 

시어 풀이

 

*징표(徵標) : 어떤 것과 다른 것을 드러내 보이는 뚜렷한 점. 표징

*잠식(蠶食) : 누에가 뽕잎을 먹듯이 조금씩 먹어 들어감. ‘초잠식지(稍蠶食之)’의 준말.

*구황(救荒) : 흉년 때에 굶주린 빈민을 도와줌.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산에 올라 벌레 먹은 산나물을 보며 그것들에 사람살이의 길이 깃들어 있음을 노래한 생태시이다.

 

 이 시는 하찮은 존재로 생각했던 벌레와 벌레가 먹은 잎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드러내고 있는데, ‘벌레가 먹은 것은 사람도 먹을 수 있는 징표라고 제시하면서 이른 통해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공생해 나가야 한다는 삶의 자세를 교훈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화자는 생태주의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도치법과 반복법을 사용하여 주제를 강조하고, 특히, 종결어미 와 조사 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시상을 따라가 보면, 1~9행에서는 산나물을 따러 가서 벌레 먹은 잎을 보고 그것이 사람살이의 길을 가르쳐 주고 있음을 깨닫는다. 10~16행에서는 산나물 잎에 난 벌레의 길은 곧 우리네 사람살이의 지도이며 보릿고개구황의 세월을 견디게 해 준 힘이기도 하다고 말하며 자연과 우주를 아우르는 생명의 통로 또한 그 벌레의 길에서 시작됨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하찮은 미물(微物)에게 배운 삶의 섭리를 담담하게 형상화하여, 벌레 먹은 잎을 통해 본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련성을 노래하고 있다. 벌레와 인간 모두 생태계의 일부라고 보고 이들이 상호 관계 속에서 질서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생태주의 자연관과 일맥상통한다.

 

 

작자 김신용(金信龍, 1945 ~ )

 

 

  시인. 부산 출생. 14세 때부터 부랑생활, 지게꾼 등 온갖 밑바닥 직업을 전전하였고,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6편을 발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첫 시집 버려진 사람들에 나오는 시인의 당시 직업은 공사장 잡부였다.

  충북 충주시 인근의 시골 마을 도장골에 들어가 텃밭을 일궈 먹을거리를 해결하면서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하는 시들을 쓰다가, 지금은 경기도 시흥의 소래벌판에 살면서 시작에 전념하면서 도시 빈민층의 삶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버려진 날의 기록외에 개 같은 날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등이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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