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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북 / 김영랑

by 혜강(惠江) 2020. 4. 30.




 

-김영랑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몰아*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아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닥타요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요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 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

 

            - 영랑시선(1946)수록

 

 

시어 풀이

*자네 : 듣는 이가 친구나 아랫사람인 경우, 그 사람을 대우하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하게할 자리에 사용.

*진양조 : 가장 느린 장단. 극적 전개가 느슨하고 서정적인 대목에 쓰임

*중모리 : 중간 빠르기. 연을 담담히 서술하는 대목이나 서정적 대목에서 쓰임
*중중모리 : 흥취를 돋우며 우아한 맛이 있다. 춤추는 대목, 활보하는 대목, 통곡하는 대목에서 쓰임

*엇모리 : 평조음으로 평화스럽고 경쾌함

*자진모리 : 섬세하면서도 명랑하고 차분. 어떤 일이 차례로 벌어지거나 여러 사건을 늘어놓는 대목, 격동하는 대목에서 쓰임.
*휘모리 : 가장 빠른 장단. 어떤 일이 매우 빠르게 벌어지는 대목에서 쓰임
*만갑(萬甲): 조선 시대의 명창인 송만갑을 이르는 말.

*연창(演唱) : 두 사람이 함께 노래함.

*컨닥타(conductor) : 지휘자

*명고(名鼓) : 이름난 북.

*정중동(動中靜) : 움직임(분주함) 가운데에서의 고요함.

 

 

이해와 감상

 

 판소리는 ()’이 완벽한 조화를 이룰 대 비로소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 이 작품은 북과 창 사이의 심적 일체감을 통하여 예술적 완결을 추구하는 판소리 예술의 특성을 간결한 표현 속에 효과적으로 드러내어 판소리를 통한 예술과 인생의 조화를 노래하고 있다. .

 

 영랑은 전남 강진 출생으로, 남도 창의 애청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그는 호남 지방에서 발생한 판소리나 민요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성악을 공부하려 했던 적이 있는 것을 보면 소리(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김영랑의 시가 음악성을 중시했다는 점은 이와 같은 배경으로 볼 때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인다.

 

 이 시는 소재 면에서 전통성을, 표현에서는 음악성을 중시한 작품이다. 그 중 음악성을 보면, 3음보와 4음보의 적절한 조화와 변화와 각 행과 연의 끝에 부드러운 음의 사용으로 음악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대화체를 통하여 대상과의 친밀감을 드러내고, 수미 상관의 구조를 이루어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고수(鼓手), 즉 북 치는 사람이다. 고수는 판소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 시의 화자는 1연을 한 행으로 처리하여 창자(唱者) 즉 소리하는 사람과 고수가 어울려야만 비로소 하나의 조화가 이루어짐을 드러낸다.


 이어 2연에서는 창과 고수의 이 조화를 이루어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는 판소리 장단으로 느린 것에서 빠른 순서로 놓아, 빨라지는 호흡을 따라 휘몰아치는 맛을 풀어 놓았다. 3연은 명창과 명고가 서로 조화를 이루는, 호흡의 일치야말로 인생에서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시원한 일인가. 이런 일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4연에서 환자는 소리가 없다면 북은 가죽일 뿐, 북을 헛 때리면판소리 명창 송만갑(1865-1939)도 박자를 놓칠 수밖에 없으니 은 소리가 있어야 가치가 있는 것이라한다. 그런데 5연에서는 장단(長短)을 친다는 말이 모자라오/ 연창(演唱)을 살리는 반주(伴奏)쯤은 지나고/ 북은 오히려 컨닥타요라며 북이 소리를 이끄는 것임을 말한다. 이는 장단을 친다는 말로는 을 치는 것의 의미를 모두 표현할 수 없고, 또 연창을 살리는 반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은 노래의 귀를 잡고 노래의 신명을 돋우며 노래의 자리를 잡아주는 지휘자라며, 고수 역할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5연에서는 과 소리의 조화라는 예술과 인생의 조화를 노래한다.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는 명창을 지휘하는 명고가 짧고 빠른 가락은 연주하지 않고 그저 넘겨버린다는 뜻으로, 이는 굳이 눈앞의 북을 두드리지 않아도 신명이 이어지는 몰입(沒入)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떡궁! 동중정(動中靜)이오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떡 궁’, 한번 치니 고요 속에 움직임이 일어나고 소란 속에 고요가 파묻히듯, 북과 소리가 하나 되어 예술적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렇듯 인생의 일도 조화를 이룰 때 성숙한 경지에 도달함을 일깨워 준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고수와 창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듯이, 자아와 타자 사이의 완전한 조화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초월의 경지를, 전통적인 예술 행위를 소재로 하여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작자 김영랑(永郞, 1903~1950)

 

 시인. 전남 강진 출생. 본명 윤식(允植). 1930년 박용철, 정지용 등과 함께 시 문학을 간행, 시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며 순수 서정시 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잘 다듬어진 언어로 섬세하고 영롱한 순수 서정을 노래함으로써 한국 순수시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후기 시에서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불행한 시대 상황에 맞서서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불행한 삶을 노래했다.

 

 시집으로 영랑 시집(1935), 영랑 시선(1939) 등이 있고, 1981년 문학세계사에서 그의 시와 산문을 모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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