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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섬진강 1 / 김용택

by 혜강(惠江) 2020. 5. 2.





섬진강 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들,

숯불 같은 자운영꽃*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을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 섬진강(1985) 수록

 

 시어 풀이

*자운영4~5월에 붉은 빛 꽃을 피우는 콩과의 풀
*꽃등꽃무늬가 그려진 등
*후레자식막되게 자라 교양이나 버릇이 없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섬진강의 모습을 통해 농민들의 소박하고 건강한 삶과 끈질긴 생명력을 맑고 투명하면서도 서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김용택 시인은 섬진강의 시인이다.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아이들을 가르치며 섬진강과 함께 살아왔다. 그의 <섬진강> 연작시는 섬진강 변의 새와 풀꽃과 흙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가득 담고 있다. 그의 <섬진강> 시 속에는 그의 섬진강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곳에 터 잡고 살아가는 건강한 민중의 삶과 생명력을 떠올리고, 이를 찬양하고 있다.

 

 전체 시상의 전개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바라본 풍경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16행까지는 섬진강의 저력과 포용력을, 17행에서 마지막까지는 마르지 않을 섬진강과 민중의 생명력을 표현하고 있다.

 

 그에게 섬진강이라는 공간은 이름 없는 풀꽃과 작은 개울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잘것없는 것 같으나 소박한 공동체적 삶과 저력이 있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을 달아주는 공간이다. ‘어둠으로 표현된 어떤 부정적인 외부의 조건이나 평가도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며, ‘그을린 이마로 상징된 민중의 고단한 삶도 꽃등처럼 환하게 밝혀준다. 그리고 영산강 물줄기를 푸근하게 감싸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에 기대어 돌아 흐른다. 그만큼 섬진강은 포용력을 지닌 강물이다.


 그러므로 섬진강은 남도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몇 놈이나 후레자식들이 섬진강을 위협한다 해도 그 끈질긴 생명력으로 건재할 것임을 주변 지리산과 무등산에 교감하고 정을 나누는 끈끈한 존재인 것이다.

 

 화자의 섬진강에 대한 인식 속에는 현실 비판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 남도는 우리 현대사에서 오랫동안 정치적, 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온 곳이었고, 따라서, 그만큼 민중들에게는 설움이 내면화된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섬진강은 나의 전부로 여기고 섬진강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진 시인으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하였으리라.

 

 이 시는 자연물을 의인화하고 상징의 표현 기법을 통해 주제 의식을 형상화하였으며, ‘따라가며 보라는 명령투의 어조를 반복 사용하여 화자의 강한 자신감으로 남도의 젖줄인 섬진강의 포용력과 생명력을 드러낸 작품이다.

 


작자 김용택(金龍澤, 1948 ~ )


 시인. 전북 임실 출생. 1982창작과 비평 21 신인 작가상-꺼지지 않는 횃불섬진강 18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섬진강연작시로 유명하여 일명 '섬진강 시인'으로 불린다.


 자연을 삶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여 섬세한 시어와 서정적인 가락을 바탕으로 농촌의 현실을 노래하였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아이들과 자연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그들이 자연을 보는 시선과 교감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한편으로 한국 농촌의 황폐함에 주목하여 황량한 농촌 마을, 피폐해진 땅을 갈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쓸쓸한 고향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시집으로 섬진강(1985), 맑은 날, 그리운 꽃 편지(1987), 강 같은 세월(1995), 그 여자네 집(199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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