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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시인(詩人) / 김광섭

by 혜강(惠江) 2020. 4. 20.

 

 

<사진 : 생전에 시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시인> 

 

 

 

시인(詩人)

 



-김광섭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 팍 안아 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2천 원 아니면 3천 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시집 성북동 비둘기(1969) 수록

 

 

시어 풀이

 

*천직(天職) : 타고난 직업이나 직분.

*어릿궂은 : ‘어리궂은의 잘못. 매우 어리광스러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40년이 넘는 세월을 두고 감성과 올곧은  의지로 시를 써 온 노경의 (老境)의 시인이, 시인의 세계와 그 일생을 진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시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족하지 못한 고독의 길이지만, 정신적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지키려는 시인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1연에서, 화자는 물질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시인의 숙명을 이야기한다. 화자가 생각하는 시인이란 존재는 사랑으로 대유된 아름다움과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보통 사람들은 부귀영화에 대해 온몸을 내던지지만, 시인은 오직 시 한 편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해서 탄생시킨 시 한 편의 고료는 겨우 2, 3천 원에 불과할 뿐이다. 세상의 부귀와는 분명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天職)’을 가진 것이 시인이라고 한다. ‘천직이라는 시어를 쓴 것을 보면, 생 시를 써온 자신의 직업에 대해 물질적으로 비록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연은, 시 쓰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시인은 정열을 아껴서 늙어서까지일견 어리석고 궂은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 대한 순수한 사랑을 노래하면서 멀고 험한 고독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때로는 술 한 잔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인생의 긴 여정을 쓸쓸히 가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시인이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이다.

 

 이어 3연은 신명이 나지 않을 때는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도, ‘쌀알 만한가치라도 있는 글감이라고 생각하면 놓치지 않고 그것을 작품화한다. 그러기에 4연에서는 혼신의 노력으로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키는 시인의 열정을 노래한다. 어떤 소재를 선택하든지 시인은 형상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불어넣음으로써 마침내 그것을 살아 번득이는 하나의 위대한 예술품으로 만들어 낸다.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이 흘러가도 시인의 정신은 한 편의 시로 남아 있음에 비해, 시인의 육신은 타는 놀에 가고 없다.’고 한다. 시를 남기고 예술혼을 불사른 시인은 떠난다.

 

 이 시는 세속적이며 물질적 가치와는 멀리, 오직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천직으로 알고 고독을 감내하며 살아온 김광섭 시인의 삶이 투영된 작품으로, 시인이 그렇게 살아왔듯이 모든 시인은 고독의 깊은 늪에서 평생을 자신과 싸우며 오직 시 한 편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는 거룩한 존재임을 밝히고 있다.

  

   

작자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 함북 경성 출생. 호는 이산(怡山). 시집으로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反應)(1971), 김광섭 시선집(1974) 등이 있다. 이 중 초기에 속하는 마음(1949), 해바라기(1957)의 시는 주로 민족의식과 조국애가 확대되고 심화된 시편들이 주를 이루었고, 후기의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反應)(1971)의 작품들은 병상에서 터득한 인생·자연·문명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시대적 비리와 산업사회의 모순 등을 드러내고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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