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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산(山) / 김광섭

by 혜강(惠江) 2020.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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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섭 

 

 


 

이상하게도 내가 사는 데서는
새벽녘이면 산들이
학처럼 날개를 쭉 펴고 날아와서는
종일토록 먹도 않고 말도 않고 엎댔다가는
해 질 무렵이면 기러기처럼 날아서
틀만 남겨 놓고 먼 산 속으로 간다  
 
산은 날아도 새둥이나 꽃잎 하나 다치지 않고
짐승들의 굴 속에서도
흙 한 줌 돌 한 개 들성거리지 않는다
새나 벌레나 짐승들이 놀랄까봐
지구처럼 부동의 자세로 떠 간다
그럴 때면 새나 짐승들은
기분 좋게 엎대서
사람처럼 날아가는 꿈을 꾼다  
 
산이 날 것을 미리 알고 사람들이 달아나면
언제나 사람보다 앞서 가다가도
고달프면 쉬란 듯이 정답게 서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 같이 간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산은 한 번 신경질을 되게 내야만
고산(高山)도 되고 명산(名山)도 된다  
 
산은 언제나 기슭에 봄이 먼저 오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여름이 머물고 있어서
한 기슭인데 두 계절을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 

 

 

        - 창작과 비평(1968) 수록

 

 

시어 풀이

 

*엎댔다가는 : 엎드렸다가는. ‘엎대다엎드리다의 평안도 방언

*새둥 : 새둥지

*들성거리지 : 들썩거리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을 인격을 지닌 것처럼 의인화하여 이 지닌 여러 가지 속성을 제시함으로써 바람직한 산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달음을 주고 있는 작품으로, 이러한 산의 속성을 통하여 인간 삶을 반성하고 있다.

 

 모두 9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거의 대부분의 연이 산은 ~ .’라는 구절을 반복하여 일정한 운율을 형성하고 있으며, 산이 지닌 다양한 속성을 나열하고, 시각적 이미지와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대상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의 화자는 긍정적인 자연관을 가지고 을 바라보면서 이 지닌 덕성을 제시하여 에 대한 예찬적 태도를 드러내고, ‘이 지닌 덕성을 배우려고 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은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항상 여유로운 산만은 아니다. 때로는 성내기도 하고 서러워하기도 한다. ''은 아름다움 속에서 등장할 수 있는 인간의 갖가지 양상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6연까지의 ''의 모습은 삶의 지혜를 지닌 스승으로서의 가르침을 주는 모습으로 우리를 다스린다.

 

 1: 침묵하는 산

 2: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산

 3: 배려하는 다정한 산

 4: 너그럽고 신성한 산

 5: 세속적 가치를 거부하는 산

 6: 자연의 순리를 가르쳐 주는 산

 

 특히, 6연에서 자연의 순리를가르쳐 주는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을 통해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길러낼 줄 아는 인내심을,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을 통해서 헛된 욕심과 오만함을 버리는 겸손함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7~8연은 놀라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받아 줄 것으로만 알았던 ''이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신경질'을 낸다. 이때 사람들은 비로소 의 소중함과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러고는 9연에서 다시 '고산(高山)'이요, '명산(名山)'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0연에서는 한 기슭에 두 계절을 / 사이좋게 지니고 산다표현으로 포용력을 지니고 사이 좋게 지내는 의 모습으로 깨달음을 준다.

 

 이 시는 긍정적인 자연관을 가지고 삶과 사람과 자연의 일체감을 그려 내고 있다. 산은 인간과 유리된 찬양과 외경의 대상만이 아니라 늘 인간 가까이서 인간과 함께 지내려는 친한 친구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산은 모든 것을 품 안에서 키우며 따뜻하게 감싸 준다. 그렇지만 산은 무턱대고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은근히 자연의 섭리로 인간을 깨우치려 한다. 때로는 신경질도 부리고 엄한 스승의 모습을 보이면서, 나무를 기르는 인내와 벼랑을 오르는 겸허를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삶의 스승으로서의 산의 모습, 다시 말하면 산의 자세로서 인간의 모습을 바라는 시인의 의지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위대한 인간의 풍모는 어떠한 것이여야 하는가에 대한 시인의 시적 성찰을 보여 주고 있다. , ‘의 속성을 통한 인간 삶의 반성인 동시에 을 통해 배우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작자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 함북 경성 출생. 호는 이산(怡山). 시집으로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反應)(1971), 김광섭 시선집(1974) 등이 있다. 이 중 초기에 속하는 마음(1949), 해바라기(1957)의 시는 주로 민족의식과 조국애가 확대되고 심화된 시편들이 주를 이루었고, 후기의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反應)(1971)의 작품들은 병상에서 터득한 인생·자연·문명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시대적 비리와 산업사회의 모순 등을 드러내고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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