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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생의 감각 / 김광섭

by 혜강(惠江) 2020. 4. 19.

 

 

 

 

 

생의 감각

 

- 김광섭  

 

 

여명(黎明)의 종이 울린다.
새벽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빛은 장마에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성북동비둘기(1969) 수록

 

시어 풀이

*여명(黎明) : 희미하게 밝아 오는 빛. 그런 무렵. 희망의 빛.

*황야(荒野) : 거친 들판. 황원(荒原).

  

 

이해와 감상

  이 시 생의 감각은 생의 자각, 즉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화자는 자신의 병고(病苦) 체험을 바탕으로 강인한 생명력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화자는 1965422일 뇌일혈로 쓰러져 1주일 동안 의식을 잃은 채 사경을 헤메다 깨어난 경험이 있다. 이 시는 투병 생활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이 시의 구성은 역순적(逆順的) 구성으로 되어 있다. 시간적 순서로 볼 때는 연의 순서가 3-4-1-2로 되어야 할 것을 바꾸어 구성하였다.

 

 1연에는 화자는 죽음 직전의 투병에서 깨어난 이후 맞이하는 첫 새벽에 느끼는 생의 감각을 노래하고 있다. 새벽의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생명의 소리인 여명의 종소리가 들리고, 반짝이는 새벽별이 보이고, ‘우는 소리와 개가 짖는소리가 들리고, 거리에는 오고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죽음의 상황에서 소생한 화자가 청각적시각적 심상인 여명의 종소리’, ‘반짝이는 새벽 별’, ‘의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를 통해 생명의 부활을 감각적으로 환기하고 있다.

 

 2연에서 화자는 깨어나서 얻은 깨달음을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내게서 간다라고 표현한다. 내가 생명을 가진 상태로 존재해야 세상이 의미가 있다는 것일 게다. 투병 전에는 그냥 그렇게 지나가던 것들이 투병 이후에는 너무 감사하고 분명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또한, ‘오는 사람가는 사람을 통해 화자가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 함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3연에서는 잠시 돌이켜서 죽기 직전에 이른 절망적 상황을 회상한다. 한 마디로,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라고 한다. 죽음을 마주하였을 때의 캄캄한 절망적 상황을 달리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다행히 회복기에 들어선 때에도 호된 아픔으로 가슴에 뼈가 서지못할 만큼 절망감에 빠져 삶에 대한 희망인 푸른 빛장마에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에 떠서 황야로 갔다.’고 한다. 여기서 장마흐린 강물은 저승으로 가는 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절망적 상황을 의미한다.

 

 4연에서는 다시 절망의 끝에서 일어서려는 극복 의지와 함께 살아 있음에 대한 강렬한 생명 의식이 드러난다. 삶과 죽음의 기로인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는 모습은 이 땅에 홀로 내던져진 존재로서 살다가 홀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단독자(單獨者)로서의 인간 실존에 대한 확인인 것이다. 다만 살아 있음의 시간이란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서 살아 있음을 스스로 확인한 것이다. ‘채송화는 소생과 부활의 생명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 핵심어로서 즉, 장마로 넘실대는 흐린 강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무더기로 핀 채송화를 보고 자포자기 상태에 있던 시적 자아가 생()의 의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고통과 절망으로 이어진 투병 체험 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된 생명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가 시인의 개인적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보편적 정서로 확대하여 독자들에게 공감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죽음 이후에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다는 깨달음으로 삶이 힘들고 극한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발랄한 생명체인 채송화를 보며 참고 버텨야 한다.

 

 

작자 김광섭(金珖燮, 1905~1977)

  

 시인. 함북 경성 출생. 호는 이산(怡山). 시집으로 동경(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反應)(1971), 김광섭 시선집(1974) 등이 있다. 이 중 초기에 속하는 마음(1949), 해바라기(1957)의 시는 주로 민족의식과 조국애가 확대되고 심화된 시편들이 주를 이루었고, 후기의 성북동 비둘기(1969), 반응(反應)(1971)의 작품들은 병상에서 터득한 인생·자연·문명에 대한 통찰과 아울러 시대적 비리와 산업사회의 모순 등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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