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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달팽이의 사랑 / 김관규

by 혜강(惠江) 2020. 4. 18.

 

 

 

 

 

달팽이의 사랑

 

 

- 김광규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가
얼굴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 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멀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도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 가쁘게 달려와 그들은
이제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

짤막한 사랑 담아둘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 년을 바둥거린 나에게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은
얼마나 멀고 긴 것일까

   

        - 시집 좀팽이처럼(1991)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달팽이라는 평범한 소재를 사용하여 시련과 역경을 딛고 천천히 사랑을 완성해 가는 삶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이 시는 난해하고 난삽한 언어 대신에 평이하고 단아한 시어가 지닌 선명한 이미지로 삶에 숨겨진 아이러니를 정직하게 드러냄으로써 시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명징함에 도달한다.

 

 그리고 표현의 면에 있어서 달팽이를 의인화하여 달팽이와 화자의 대비된 모습을 통하여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역설법을 사용하여 간절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설의법을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이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서로 얼굴을 비비고 있는 달팽이 두 마리를 발견한다. ‘얼굴을 비비고 있다는 표현의 의인화된 표현으로 천천히 사랑을 완성해 가는 삶의 가치를 환기시킨다.

 

  그 모습을 본 화자는 장독대까지 기어 오는 동안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등 고통과 시련을 겪었을 것을 생각하며, ‘멀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뛰어왔을 것이라 상상한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 무거운 껍데기를 짊어지고 뛰어왔을까? 그리고 들리지 않는 이름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 가쁘게 달려와라는 표현한다. 아주 먼 곳에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최선을 다해 조금씩 움직인 사랑의 시간을 암시함으로써 달팽이의 열정적인 사랑과 간절한 그리움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장독대에 다다른 달팽이는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며 오랜 그리움만큼 길고 진한 열정적인 사랑을 즐기는 모습을 통하여 달팽이의 깊이 있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자는 달팽이의 사랑에 인간의 사랑을 대비시켜 달팽이의 사랑에 대한 감동을 드러낸다. 나는 짤막한 사랑을 담아둘/ 집 한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 년을바둥거리느라 사랑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나의 남루한 사랑에 비하면, 오랜 시간 시련을 극복하고 비로소 완성된 달팽이의 뜨껍고 치열한 사랑은 얼마나 멀고 긴 것인가. 사랑에 관해 가장 느린 것은 완성도가 높아 가장 길고 깊은 것이다.

 

 이 시는 달팽이라는 평범한 소재를 선택하여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삶의 진실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참다운 사랑을 완성해 가는 삶의 깨달음을 드러낸 작품이다.

 

 

작자 김광규(金光圭, 1941 ~ )

 

 

  시인. 서울 출생. 1975문학과 지성<영산>, <유무> 등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그는 4.19 세대로서 그의 시 정신의 밑바닥에는 419 경험이 짙게 깔려 있으며, 일상적 체험을 성찰적인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인간적인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세태 비판과 자연과 생태 문제 등에 관심을 둔 작품들을 많이 씀으로써 생활 세계에 근거한 일상성의 미학이라는 평가받고 있다.

 

그는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을 선보인 뒤 이제까지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3) · 크낙산의 마음(1986) · 좀팽이처럼(1988) · 아니리(1990) · 대장간의 유혹(1991) · 물길(1994) ·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1998)등을 잇달아 펴내고, 시선집 반달곰에게(1981)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1988) 등을 내놓았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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