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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767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海風)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은 날은 적지만 기도를 끝낸 다음 더욱 뜨거운 기도의 문이 열리는 그런 영혼을 갖게 하소서.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인고(忍苦)의 물이 수십(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 《겨울 바다》(1967) 물이랑 : 배 따위가 지나는 길에 물결이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일어나는 물결. 인고(忍苦) : 괴로움을 참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소멸과 생성의 공간인 ‘겨울 바다’의 이중적인 이미지와 물과 불의 대립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극.. 2020. 3. 8.
초토(焦土)의 시 8 / 구상 초토(焦土)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 구상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里)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 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2020. 3. 7.
초토(焦土)의 시 1 / 구상 초토(焦土)의 시 1 - 구 상 하꼬방 유리 딱지에 애새끼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 있다. 내려 쪼이던 햇발이 눈부시어 돌아선다. 나도 돌아선다. 울상이 된 그림자 나의 뒤를 따른다. 어느 접어든 골목에서 걸음을 멈춰라. 잿더미가 소복한 울타리에 개나리가 망울졌다. 저기 언덕을 내려 달리는 체니의 미소엔 앞니가 빠져 죄 하나도 없다. 나는 술 취한 듯 흥거러워진다. 그림자 웃으며 앞장을 선다. - 출전 《초토의 시》(1956) 초토(焦土) :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 여기서는 6·25 전쟁 이후의 비극적인 상황 하꼬방 : 일본어 ‘하꼬’(상자)와 ‘방(房)’의 합성어, 상자, 궤짝 등을 잇대어 지은 판잣집 체니 : 처녀 (함경도 방언). 흥거러워진다 : 마음에 여유가 생겨 흥겨워진다. ▲이해.. 2020. 3. 7.
마음의 태양(太陽) / 조지훈 마음의 태양(太陽) - 조지훈 꽃 사이 타오르는 햇살을 향하여 고요히 돌아가는 해바라기처럼 높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맑은 넋을 살게 하라. 가시밭길을 넘어 그윽히 웃는 한 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하노니 깊고 거룩한 세상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肉身)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괴로움에 짐짓 웃을 양이면 슬픔도 오히려 아름다운 것이 고난(苦難)을 사랑하는 이에게만이 마음 나라의 원광(圓光)은 떠오르노라. 푸른 하늘로 푸른 하늘로 항시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같이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받들어 그 속에 높은 넋을 살게 하라. - 《역사 앞에서》(1959) 원광(圓光) : 둥글게 빛나는 빛. 여기서는 ‘기쁨과 영광’을 뜻함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푸르고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며 현실적 고통을 .. 2020. 3. 7.
풀잎 단장(斷章) / 조지훈 풀잎 단장(斷章) -조지훈 무너진 성터 아래 오랜 세월을 풍설(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태초의 생명의 아름다운 분신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조 대고 나직히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 떨기 영혼이여 -《풀잎 단장》(1952) 단장(斷章) : 완전한 체제를 갖추지 못한 문장의 단편. 자신의 시에 대한 겸손의 자세. 풍설(風雪) : 바람과 눈, 눈바람. 조찰히 : 조촐히 아담하고 깨끗하게. 실오리 : 실의 가락. 분신(分身) : 한 주체에서 갈라져 나온 것. ▲이해와 감상 이 시는 1.. 2020. 3. 7.
산상(山上)의 노래 / 조지훈 산상(山上)의 노래 - 조지훈 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古木)에 못 박힌 듯 기대어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 왔는가.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굽이굽이로 사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이제 눈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불로 어둠 속에 나래 떨던 샛별아 숨으라. 환히 트이는 이마 위 떠오르는 햇살은 시월상달의 꿈과 같고나. 메마른 입술에 피가 돌아 오래 잊었던 피리의 가락을 더듬노니 새들 즐거이 구름 끝에 노래 부르고 사슴과 토끼는 한 포기 향기로운 싸릿순을 사양하라. 여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맑은 바람 속에 옷자락을 날리며 내 홀로 서서 무엇을 기다리며 노래하는가. - 출전 《역사 앞에서》(1957) 간구 : 간절히 바람. 시월상달 : ‘시월’.. 2020. 3. 6.
완화삼(조지훈)과 나그네(박목월) A. 완화삼(琓花衫) - 목월(木月)에게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 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 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출전 《상아탑》(1946) B. 나그네 -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출전 《청록집》(1946) A. 의 이해와 감상 시의 제목 ‘완화삼(琓花衫)’은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꽃을 즐겨 구경하는 선비’를 말한다. 그 선비는 구름과 물길처럼 흘러가는 유랑의 삶을.. 2020. 3. 6.
낙화(落花) / 조지훈 낙화(落花) -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섬긴 별이 하나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촟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안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마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출전 《청록집》(1946) 주렴 : 구슬 따위를 꿰어 만든 발. 성긴 : 드문드문한 귀촉도 : 두견새. 우련 : 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저어하노니 : 두려워하니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세상을 피해 은둔하며 살아가는 화자가 떨어지는 꽃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삶의 무상감과 비애, 절망감을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밤→새벽→아침’의 시간의 흐름과 ‘외부→내부’의 시선의 이동에 따라 .. 2020. 3. 5.
승무(僧舞) / 조지훈 승무(僧舞)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출전 《문장》 (1939) 사(紗) : 발이 얇고 성글게 짠 비단 고깔.. 2020. 3. 5.
하늘 / 박두진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론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 - 《해》 (1949) 여릿여릿 : 조용한 움직임의 느낌을 표현한 말(의태어) 머얼리서 : 멀리서(시적 허용)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맑고 푸른 초가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샘솟는 생의 기쁨과 나아가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이루는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박두진이 노래하는 자연은 다른 청록파 시인들이 추구하는 목가적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종교적 신앙과.. 2020. 3. 5.
강(江) 2 / 박두진 강(江) 2 - 박두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강물은 숲에서 나와 흐르리. 비로소 채색되는 유유(悠悠)한 침묵 꽃으로 수장(水葬)하는 내일에의 날개짓 아, 흥건하게 강물은 꽃에 젖어 흐르리 무지개 피에 젖은 아침 숲 짐승 울음 일체의 죽은 것은 떠내려 가리 얼룽대는 배암 비눌 피발톱 독수리의, 이리 떼 비둘기 떼 깃죽지와 울대뼈의 피로 물든 일체는 바다로 가리. 비로소 햇살 아래 옷을 벗는 너의 전신(全身) 강이여. 강이여. 내일에의 피 몸짓 네가 하는 손짓을 잊을 수가 없어 강 흐름 핏무늬길 바다로 간다 - 《거미와 성좌》(1962) 얼룽대는 : ‘얼룽얼룽하다’, 크고 뚜렷한 무늬나 점 따위가 고르게 촘촘하다 죽지 : 새의 날개(깃)가 몸에 붙은 부분, 울대뼈 : 앞 목에 두드러져 나온 .. 2020. 3. 5.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 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 2020. 3. 5.
꽃구름 속에 / 박두진 꽃구름 속에 - 박두진 꽃바람 꽃바람 마을마다 훈훈(薰薰)히 불어오라 복사꽃 살구꽃 화안한 속에 구름처럼 꽃구름 꽃구름 화안한 속에 ​ 꽃가루 흩뿌리어 마을마다 진한 꽃향기 풍기어라 치위와 주림에 시달리어 한겨우내 - 움치고 떨며 살아 나온 사람들…… 서러운 얘기 서러운 얘기 다아 까맣게 잊고 꽃향에 꽃향에 취하여 아득하니 꽃구름 속에 쓸어지게 하여라 나비처럼 쓸어지게 하여라 - 《문장》 (1941) 치위 : ‘추위’의 옛말. 움치고 : ‘움츠리고’의 준말 쓸어지게 : 쓰러지게.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광복이 되기 4년 전인 1941년, 일제 강점기 말 대표적인 문학지였던 《문장》 폐간호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시는 아름다운 봄날의 꽃향기를 맡으면서 지난날의 아픔과 서러움을 잊으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 .. 2020. 3. 4.
도봉(道峯) / 박두진 도봉(道峯) - 박두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 《청록집(靑鹿集》(1946) ▲이해와 감상 1940년 무렵 박두진이 도봉산에 올라 암담한 현실에 대해 느낀 심경을 읊은 서정시로, 1940년 무렵 박두진(朴斗鎭) 시인이 민족적 외로움과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느라 도봉산에 줄곧 다닐 때 지은 10연.. 2020. 3. 4.
청산도(靑山道) / 박두진 청산도(靑山道) - 박두진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 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 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버린 하늘과, 아른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 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 부는 세상에도 벌레 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 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 어릴 볼이 고운 .. 2020. 3. 4.
해 / 박두진 해 -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 산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 2020. 3. 4.
윤사월과 청노루 / 박목월 과 두 작품은 모두 박목월의 초기 작품으로, 정형의 율조에서 오는 음악적인 효과와 토속적인 소재를 바탕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세련된 시어를 사용하여 순수한 산수의 서경과 인간 본연의 근원적 애수를 노래한 목월의 초기시 세계를 대표하는 민요풍의 서정시이다. 또한, 시각과 청각이 잘 조화된 선명한 이미지에 여운이 담긴 시풍을 보인다. 윤사월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 《상아탑》(1946) ► 이해와 감상 7ㆍ5조를 바탕으로 기ㆍ승ㆍ전ㆍ결의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이 시는 어느 산 속의 풍경을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보여 주면서, 그 속에서 눈 먼 처녀의 바깥세상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향토적 색감이 짙은 .. 2020. 3. 4.
하관(下棺) / 박목월 하관(下棺) - 박목월 관(棺)을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알아보고 형(兄)님! 불렀다. 오오냐 나는 전신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 출전 《난(蘭). 기타》(1959)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아우의 장례를 치른 화자가 아우를 잃은 슬픔과 그리움을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절제된 표현을 써서 상.. 2020. 3. 3.
가정(家庭) / 박목월 가정(家庭) -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삼(六文三)의 코가 납작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憐憫)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반(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시집 《청담(晴曇)》(1964) 문수 : 신발의 크.. 2020. 3. 3.
산이 날 에워싸고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고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고 살아라 한다. 어느 산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 - 출전 《청록집》(1946) 들찔레 : 들에 피는 찔레. 사위어지는 : 불이 사그라져서 재가 되는.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의인화하여 ‘산’이 말한 것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여 자신의 소망을 표현한 시로, 화자는 자연 속에서의 소박한 삶을 토대로 현실을 넘어선 초월적이고 달관적인 삶, 즉 자연 속에서의 순수한 삶에 대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산’은 화자가 지향하는 세계다. 그러므로.. 2020. 3. 3.
산도화(山桃花) / 박목월 <출처 : 다음 블로그 '이선생(lby56)'> 산도화(山桃花) - 박목월 산(山)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 《청록집》(1946) <시어 풀이> 산도화 : 산에 피는 복숭아꽃. 복사꽃으로.. 2020. 3. 3.
백자부(白磁賦) / 김상옥 <사진 : 십장생 백자> 백자부(白磁賦) - 김 상 옥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 소리 들리던 날 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 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 2020. 3. 2.
사향(思鄕) / 김상옥 사향(思鄕) - 김상옥 눈을 가만 감으면 굽이 잦은 풀밭 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 숲 사립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러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 .. 2020. 3. 2.
달밤 / 이호우 달밤   - 이호우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 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낯익은 풍경이되 달 아래 고쳐보니 돌아올 기약 없는 먼 길이나 떠나온 듯 뒤지는 들과 산들이 돌아 돌아 뵙니다   아득히 그림 속에 정화(淨化)된 초가집들 할머니 조웅전(趙雄傳)에 잠들던 그날 밤도 할버진 율(律) 지으시고 달이 밝았더이다   미움도 더러움도 아름다운 사랑으로 온 세상 쉬는 숨결 한 갈래로 맑습니다 차라리 외로울망정 이 밤 더디 새소서                                    -출전 《문장》(1940)  시어 풀이> 조웅전(趙雄傳):작가 미상의 한글 군담 소설율(律):한시의 한 형태로, 여덟 구로 이루어져 있는 한시체     .. 2020. 3. 2.
길 / 김기림 길 - 김기림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혼자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 2020. 3. 2.
유리창 / 김기림 유리창 - 김 기 림 여보 내 마음은 유린가 봐, 겨울 한울처럼 이처럼 작은 한숨에도 흐려 버리니…… 만지면 무쇠같이 굳은 체하더니 하로밤 찬 서리에도 금이 갔구료 눈포래 부는 날은 소리치고 우오 밤이 물러간 뒤면 온 뺨에 눈물이 어리오 타지 못하는 정열, 박쥐들의 등대 밤마다 날.. 2020. 3. 2.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출처 : 다음카페 '짧은 사랑 긴이별'>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2020. 3. 1.
팔원(八院) / 백석 팔원(八院) - 서행 시초(西行詩抄) 3 - 백 석 차디찬 아침인데 묘향산행 승합자동차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같이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밭고랑처럼 몹시도 터졌다 계집아이는 자성(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자성은 예서 삼백오십리 묘향산 백오십리 묘향산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얗게 얼은 자동차 유리창 밖에 내지인(內地人) 주재소장 같은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차 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계집아이는 몇 해고 내지인 주재소장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렇게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쳤을 것이다 - 《조선일보》(1939.11.10) 팔원(八院) :.. 2020. 3. 1.
여승(女僧) / 백석 여승(女僧) - 백 석 여승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사슴》(1936) 가지취 : 취나물(산나물)의 일종. 금점판 : 금광의 일터. 섶벌 : 재래종의 꿀벌. 마당귀 : 마당의 한 귀퉁이. 머리오리 : 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 2020. 3. 1.
모닥불 / 백석 모닥불 - 백 석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헝겁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 사위도 갓 사돈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 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시집 《사슴》(1936) 수록 ◎시어풀이 *새끼오리 : 새끼줄. ‘오리’는 ‘올’의 평안도 방언. *갓신창 : 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질긴 끈의 한 종류 또는 가죽으로 만든 신의 창 *개니빠디 : 개의 이빨 *너울쪽 : 널판지 쪽 *닭의 짗 : 닭의 깃털 *재.. 2020.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