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道峯)
- 박두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인 곳
홀로 앉은
가을 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 《청록집(靑鹿集》(1946)
▲이해와 감상
1940년 무렵 박두진이 도봉산에 올라 암담한 현실에 대해 느낀 심경을 읊은 서정시로, 1940년 무렵 박두진(朴斗鎭) 시인이 민족적 외로움과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느라 도봉산에 줄곧 다닐 때 지은 10연(聯)의 시이다.
이 시는 박두진의 초기 시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절망적인 민족적 현실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어스름 →황혼→밤’으로 이어지는 시상에 따라 화자의 정서도 ‘고독→쓸쓸함→슬픔, 그리움’으로 심화된다. 도봉산의 풍경 묘사는 원경에서 근경으로 이동하고 있다.
총 10연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시는 크게 가을 산의 적막한 공간적 배경 묘사(1~3연), 화자의 외로운 심정(4~8연), 그대를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9~10연)을 노래하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3연은 산새도 구름도 보이지 않으며 사람의 자취도 끊어진 가을 산의 저녁 무렵을 배경으로 하여 쓸쓸하고 적막한 가을 산의 어스름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적적한 풍경을 배경으로, 4~5연에서는 시적 화자인 ‘나’는 대답할 사람도 없는데 소리 높여 누군가를 부르고, 그 소리는 헛되이 빈 골짜기들을 울리고 되돌아온다. 누군가를 헛되이 불러 보는 ‘나’의 행동은 화자의 외로움을 암시하며 허전한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호오이 호오이’는 음성 상징어로 화자의 고독한 정서를 심화하고 있다.
6~8연에서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라는 황혼과 더불어 찾아오는 밤에 의해 화자의 절망감은 더욱 심화한다. ‘생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이라고 하여 삶과 기다림은 괴로움만 더해 줄 뿐 허망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절망 상황 속에서 시인에게 한 가닥 희망과 의지를 주는 것은 별이다. 어둠 속에도 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시인에게 슬픔을 딛고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마지막 부분인 9~10연에서는 화자가 이 긴 밤과 슬픔을 갖는 것이 그대를 위한 것임이 드러나면서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라고 하여 ‘그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9연의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에서 ‘이’를 앞 행 끝에 갖다 놓아 의도적으로 행 갈이를 한 것은 뒤에 오는 ‘긴 밤’이 주는 우울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화자는 인적 없는 가을 도봉산에 홀로 앉아 삶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끼며, 그러한 외로움의 극복과 구원을 갈망하는 것이다. 시인이 가을의 적막한 도봉산을 바라보는 사색적인 태도는 인생을 관조하고자 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지만, 그것이 결코 현실 도피의 관념적인 폐쇄성을 보여 주지 않고 풍요롭고 희망적인 세계를 바라는 개방적인 태도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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