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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by 혜강(惠江) 2020. 3. 5.

 

 

 

 

 

어서 너는 오너라

 

- 박두진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 오래 정들이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레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서른 가락도 너는 못 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어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나던,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늴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뒹굴어 보자.

 

                                          - 출전 청록집(1946)

    

 

<시어 풀이>

 

복사꽃 : 복숭아꽃.
앵도꽃 : 앵두나무꽃.
오얏꽃 : 자두나무꽃.
서른 : 서러운.
붕새춤 : 붕새가 추는 춤. ‘붕새는 하루에 구 만 리를 날아간다는, 매우 큰 상상의 새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일제 말기 암흑기의 상황에서 조국의 광복을 예감하고 부른 노래로, 삶의 터전을 떠나 뿔뿔이 흩어진 동포의 귀환을 소망하면서 평화로운 과거의 삶을 회복할 것을 힘찬 어조로 노래한 산문시이다.


  이 시는 민족이 다시 만날 공간을 제시한 후, 그곳으로 돌아올 것을 재촉하는 방식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종결 어미가 ‘~일러라, ~오너라의 명령형과 보자의 청유형으로 연결되면서, 회자는 흩어진 동포들에게 해방이 됨을 알려 그들이 돌아오기를 열망하고 옛날처럼 모두 함께 모여 지내기를 바라고 있다. , 행의 구분이 없는 산문적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같은 문장 구조와 어구의 반복으로 리듬감을 살리며 주제를 강조하고,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하여 생동감과 운율감을 살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쉼표를 자주 사용하여 산문 율조의 긴 호흡을 차단해 자칫 늘어지기 쉬운 흐름에 긴장감을 주고 ', , , '과 같은 유음과 비음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운율감을 드러내고 있다.

  1연은 조국 광복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조국 광복은 일제강점기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이었고 실지(失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짓밟힌 울타리는 일제에 의해 빼앗긴 조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땅에 복사꽃, 살구꽃, 앵도꽃, 오얏꽃이 피어 벌 나비 날고 소쩍새가 운다고 한다. 조국이 광복을 맞이했다는 뜻이다. 특히 복사꽃은 무릉도원이라고 하는 이상향과 관계되므로 화자는 조국의 광복을 이상적인 삶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2연은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난 동포에 대해 기다림을 표현하고 있다. ‘다섯 뭍과, 여섯 바다는 지구상의 오대양(五大洋) 육대주(六大洲)를 말하는 것이나, 여기에서는 일제에 의해 쫓겨난 우리 민족이 흩어져 살던 여러 곳을 의미하며, 이 시에서 로 불리는 철이어느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일제의 억압을 피해 조국을 떠나 유랑하는 우리 동포, 즉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을 의미한다.

 

 3연은 떠난 동포를 찾는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달밤에 부는 내 피리 소리도, 산 위에 올라 외치는 내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멀리 떨어져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이어지는 4, 5연은 이미 돌아온 동포와의 만남을 노래하면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의 귀환을 다시 한번 열망한다.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이 헤어졌다 돌아오는 날, ‘형과 아우, 네 순이와 누이, 막쇠, 돌이, 복술이도 돌아왔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형제를 위하여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 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라고 외쳐본다.


  마지막 6연은 민족 공동체가 누리게 될 평화로운 삶의 모습을 나타내고, 광복을 맞은 우리 국토에서 다시 옛날과 같은 공동체적 삶을 회복하자는 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갖가지 꽃 피고, 남풍이 불고, 종달새 울 때 화자는 향기로운 언덕 푸른 잔디밭에 누워 너와 내가 하나 되어 가락 맞춰 풀피리 불고, 두둥실 춤추고, 평화롭던 시절처럼 뒹굴자고 한다.

 

 조국 해방의 참모습은 단순히 국토를 회복하는 것만이다. 일제 탄압으로 유랑하던 동포들이 온전히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와 다시 옛날과 같은 공동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광복의 참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복사꽃이 핀 고향 마을로 어서 오라고 호소하고 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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