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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하늘 / 박두진

by 혜강(惠江) 2020. 3. 5.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론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  

           

                          - (1949)

 

 

<시어 풀이>

 

여릿여릿 : 조용한 움직임의 느낌을 표현한 말(의태어)

머얼리서 : 멀리서(시적 허용)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맑고 푸른 초가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샘솟는 생의 기쁨과 나아가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이루는 경지를 노래하고 있다. 박두진이 노래하는 자연은 다른 청록파 시인들이 추구하는 목가적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종교적 신앙과 일체화된 신성(神性)의 자연이다. 따라서 여기서 하늘은 단순한 자연의 경지를 벗어나 절대 순수. 영혼의 갈증을 채우고, 영혼을 살찌우는 생명의 근원이 되고 있다.

 

 전 7연으로 된 이 시는 연과 연 사이를 꼬리 잇기 형식의 연쇄적 표현 기법을 사용하여 시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정제된 언어로써 깔끔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내용상 2단락으로 나누어지는 이 작품은 첫째 단락(14)에서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가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들어 자연의 넓은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늘과 하나가 된 물아일체(沒我一體)의 경지에서 느끼는 희열감과 함께 자연의 숭고함에 대한 시인의 경건(敬虔)한 자세가 나타나 있다.

 

 둘째 단락(57)에서는 시상이 점차 고조되어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라는 마지막 행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따가운 볕 / 초가을 햇볕으로세속에 물든 자신의 육신을 씻어낸 다음, 그 깨끗해진 가슴에 절대 순수의 하늘을 가득 채워 넣음으로써 마침내 영혼은 빨갛게 익어가는 능금처럼성숙, 결실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늘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시적 자아의 세속화된 영혼을 맑게 씻어줌으로써 그의 삶을 살찌우는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박두진에게 있어 하늘은 경외(敬畏)의 대상인 절대적 하늘로 생명의 근원이며 삶의 주재자로서, 일종의 종교적 구원의 주체라고 볼 수 있다.

 

 

작자 박두진 (1916~1998)

 

 시인. 호는 혜산(兮山). 경기 안성 출신. 박목월·조지훈과 함께 청록파 시인이다. 그리스도교 정신을 바탕으로 초기에는 자연을 읊다가 차츰 사회현실에 대한 의지를 노래했다. 1940 문예지 문장<향현(香峴)>, <묘지송(墓地頌)>, <낙엽송(落葉頌)>, <()>, <들국화> 등  5편으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했다.

 

 

 

<해설>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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